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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天徳)꾸러기로 살고 싶어라
신아연 2015년 05월 20일 (수) 02:59:34

“선배, 요즘 특별히 힘든 일 있수?”
“아니, 왜?”
“지난번 글에 ‘장자’를 인용한 걸 보니.”
“장자가 어때서?”
“무릇 세속에 시달리면 장자를 찾게 되는 법이잖유.”

그랬나 봅니다. 요즘 제가 장자와 연애를 하다시피 하는 이유가 그거였던가 봅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중매를 서지 않는다’는 장자의 말을 빗대어, 치이고 지친 마음에 쉼을 얻고 싶었던 차에, 대학 후배가 저의 그런 속내를 알아챈 것입니다.

후배의 말이 아니라 해도 저는 요즘 장자에 ‘꽂혀’ 있습니다.’ 솔직히 ‘양다리, 세다리 걸치기’도 서슴지 않습니다. 장자뿐 아니라 예수도 사귀고 동시에 붓다도 만나는 거지요.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의 비루하고 처절한 백성의 삶에 비하자면 ‘요강깨는 호강’이지만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으니 우리 시대도 장자의 위로를 받을 만합니다. <장자>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 본성에 기인한 삶의 양태를 관통하는 사상이기에 2,300년이 지난 지금의 사람살이에도 '훈수'를 둘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아 밖에 놓인 일체의 ‘타자’와 이른바 ‘밀당’을 해야 하는 것이 생명 현상의 본질이니, 나의 욕망과 타자의 그것이 충돌하는 가없는 갈등 속에 우리 모두는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언제나 제자리걸음 아니면, 한 발 나갔나 싶으면 두 발 뒤로 가 있고, 안 하니만 못한 ‘빽 도’를 하질 않나, 속된 말로 ‘죽어라, 죽어라’하는 사람들, ‘언제 출발이나 해 봤어야지 돌아갈 초심이라도 있지.’ 할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는 말, 귀어초심(歸於初心), 즉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하는 수 없이 쓰게 되는 ‘페르소나’라는 것, 이런저런 가면들이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상대도 나 못지 않은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기에 서로의 민낯을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제 경우, 먹고 살려고 발버둥 치느라 속칭 ‘이미지 관리’라는 것에 매달려, 일이 성사되지 않았을 땐 매우 ‘쪽 팔리곤' 하니 그럴 때의 참담함이라니…

어느 순간 가면과 이미지를 벗어야 할 때, 쓸려나가 너덜거리는 피부처럼 아린 비애와 몰려오는 자괴감 또한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동안 좌절과 쓰라림을 맛본 후 견딜 만해지면 그것을 또 뒤집어쓰고 ‘저잣거리’를 헤맵니다. 그렇다고 참람스러운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니, 가히 전국시대 사람들만 살기 힘든 건 아니라고 할 밖에요.

장자는 이럴 때 ‘귀어초심’과 유사한 말로 ‘천성’으로 돌아갈 것을 권합니다.

오늘날의 ‘이미지’를 장자 식으로 말하면 ‘인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자는 ‘소와 말에 각기 네 개의 발이 있는 것, 이것을 천성이라 하고 말 머리에 고삐를 달고 소의 코에 코뚜레를 하는 것을 인위’라고 설명합니다. 장자는 인위로 천성을 가리지 말며, 허명을 얻기 위해 타고난 덕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해도 잡아 늘이면 괴로워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더라도 잘라주면 아픔이 된다고 말하며 자연스러운 것을 인위적으로 왜곡할 때 본성이 훼손되어 고통이 따른다고 강조했습니다. <장자>뿐 아니라 <노자>에서도 “발뒤꿈치를 들고 있는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보폭을 넓게 하면 오래 걷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국시대 사람들이 ‘인위’에 얽매여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나, 현대인들이 ‘이미지에 목숨 거느라’ 자신의 본성을 잃고 작위적인 삶 속에 밀랍처럼 갇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문명화되면 될수록 인간은 자연과 멀어져 본성을 거스르는 인위 속에서, 허우적대는 줄도 모르고 허우적댑니다.

장자를 만난 이후 제 천성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장자의 가르침대로 천덕(天徳)을 잃지 않는 가운데 생업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천덕’을 지키는 ‘천덕꾸러기’로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유지하고 싶은 천성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솔직담백함’이라는 자신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너무 홀딱 벗어서’ 상대가 당황스러울 정도의 천성적 솔직함을 버리지 않고도, 밥을 굶지 않고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 하필 그러고 싶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다시금 장자 식으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렇다.’라고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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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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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내 (218.XXX.XXX.180)
신아연 작가님의 글을 읽노라면 꼭 댓글을 달고 싶어집니다. 저는 소위 공돌이라 글쟁이와는 거리가 멀지만 감히 글을 쓰고 싶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감을 하면서도 간혹 공감할 수 없는 대목들이 나와 자극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솔직하게 살면 그렇게 힘드는지요? 오히려 솔직하지 않게 사는 것이 힘들 것 같습니다. 또 천성대로 사는 것이 천덕(天德)을 잃지 않는 것처럼 표현한 것 같은데 (제 이해가 부족했다면 죄송) 천덕을 잃지 않는 삶을 살려고 ‘천덕꾸러기’로 살고 싶다는 것도 제게는 수긍이 안 가는 표현입니다.

솔직하려면 군더더기가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이 맞는다면 군더더기를 안 붙이는 것이 붙이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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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21:36:47
1 0
신아연 (183.XXX.XXX.92)
첫 문장을 읽고 저는 제 글을 칭찬하시는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ㅎㅎ

님께서 제 글을 이해를 못하셨다면 순전히 제 불찰입니다. 장자가 말했듯이요. 청자가 이해를 못한다면 화자의 책임이라고.

저는 반어적으로 글을 쓰는 습성이 있습니다. 실은 푸른내님의 댓글 내용 그대로를 제 딴엔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천덕꾸러기'도 '천덕, 천성을 지키는 이'라는 뜻을 '천덕꾸러기'라는 말에 담아 해학적으로 해보려고 했던 것인데,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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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2 08:24:30
0 0
푸른내 (218.XXX.XXX.180)
칭찬할 실력이 되나요?
반어적 표현이라는 것은 물론 알았습니다. 그러나 논리상 수긍이 안가는 표현이 단계적으로 발전하여 결국 천덕꾸러기로 가는 동안 자극이 싸였다고 할까요? 그리고 제 수준에 천덕꾸러기는 역시 반어로 멋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수준 탓이니 괘념 하시지 마십시요.
괞스리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 보려는 생각에서 이렇게 토를 달아보는 것입니다. 주제넘은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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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3 10:05:42
0 1
김종우 (121.XXX.XXX.56)
그 때는 '인위'에 지금은 '이미지 관리'에 목매어 사는 인생들 속에서 자연산 그대로 산다는 것,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부러워하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삽니다. 사실 자가 자신과의 싸움보다 더 힘든 생존과의 싸움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칠하고 꾸미기에 익숙해진 사람들 속에서 민낯을 보이며 산다는 것,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씩은 쉬워지는 나이에 접어드는 듯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제는 꾸며봤자 거기서 거기다 싶은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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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12:21:41
0 0
신아연 (183.XXX.XXX.92)
사람이 살려면 먹어야 하니 모든 문제에는 결국 생존의 문제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겠습니다. 하지만 좀 덜 먹기로 결심한다면 조금씩 인위의 가면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되는 것도 같지만 역시나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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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2 08:31:27
0 0
pl5155 (220.XXX.XXX.129)
단양(丹陽)휴게소 2015. 5. 19.


몸과 마음 쉬게 해 주게
차 한잔 편안할 시공(時空)도 찾지 못하네 그려

산너머 산 산너머 산
짙푸른 생명력 가득 차 오르네
“ 그 속에도 흥망성쇠가 맹렬하다네 ”

자동차 속에서 손쉽게 오르니
산 산 산 산 이 다 자네 발 아래 있는가 자네 것 같은가
저 산 봉우리 저 골짜기
사람의 발길 닿지 않았던 곳 없을 것 같은가

저 산들 솟은 후 사람도 짐승도
한번도 밟지 못한 비탈 수두룩 하다네
비바람 햇빛만이 찾아 간 왕좌(王座)가 헤아릴 수 없네

조선(朝鮮)의 척추(脊椎) , 한국(韓國)의 대간(大幹)을
지나가고 있는가
휴게소에서 잠시 머무는 선남선녀들에게
귀찮은 질문은 하지 말아 주게
그냥 내버려 두게

작은 산토끼 되어
작은 토끼굴에 숨어
말갛고 붉은 두 눈 껌벅거리며
한 이삼일 잘 쉬었다 가게


( 마침 )


박연철 ,
마르코글방 회원입니다.
몇일전 끄적거린 것인데
제 경우도 몹시 불편, 불안하게 지냅니다만,
그냥 보냅니다
'천덕꾸러기'가 반어적 조어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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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10:44:51
0 0
신아연 (183.XXX.XXX.92)
'귀찮은 질문은 하지 말아 주게'라고 하셨으니 더 이상 여쭙지는 않겠습니다.^^ 허령한 마음으로 쓰신 글이라는 것만 짐작합니다.

천덕대로, 천성대로, 본성대로, 본래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쓰신 글로 읽힙니다.

제 이해가 맞는지요?

네, '천덕꾸러기'는 반어적 표현인데, 위에 댓글 올리신 다른 분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해 진짜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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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2 08:39:23
1 0
차덕희 (121.XXX.XXX.131)
ㅎㅎㅎ
장자를 제대로 읽으시고 계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젊은이에게는 겉 멋이 들까봐 좋은 책으로 권면하지 못하였는데 아연님의 글이 멋스럽게 표현되었으니 이젠 천덕꾸러기의 초로의 어르신이 된듯, 미소가 번지네요.
장자는 진짜 어른들이 읽는 글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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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19:44:31
0 0
시드니 맨 (121.XXX.XXX.49)
동양철학의 진수를 보는듯합니다. 철학을 공부하신 분이라서... 저는 장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바가없지만, 임종을 맞을때 제자들에게 했다는 말씀이 어렴풋이 스칩니다. 장자는 장자답죠. ㅎㅎ 어쨌든 호주에서도 비싼 관은 벌레가 들어가지 못한다고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나마 크리스챤은 사후의 세계를 믿기에... 좀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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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14:32:33
0 0
dada (112.XXX.XXX.115)
<<장자>>에는 시.공간을 관통하는 보편적 인간애가 스며있기에 2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장자는 분명 언어의 마술사입니다. 신아연 작가님의 글을 읽다보면 글이 참 맛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마다 쓴 이의 마음 맛이 스며있기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여하튼 독특한 무늬와 결이 느껴집니다. 마치 장자의 글 처럼, 그리고 발가벗은 사람이 쓰고 있는 투명한 페르소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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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9:01:22
0 0
이영재 (223.XXX.XXX.91)
오늘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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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8:46:25
0 0
박종문 (121.XXX.XXX.59)
솔직담백이라.... 저는 너무 벗어서 아내에게 손쭐이 나곤 합니다. 그러나 천성이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제가 그런 저를 '천방지축'이라고 하니가 어느 지인은 듣기 좋게 '천의무봉'이라고 합디다. 그러나 솔직담백이 저의 인생철학이자 제 살아가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때론 거짓말을 하여도 속아 넘어가니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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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0 08:14:0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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