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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과 윤리지능
안진의 2015년 06월 30일 (화) 01:48:13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을까요?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말 중에는 ‘새빨간 거짓말’이 있고,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진 ‘하얀 거짓말’이 있습니다. 더욱이 색을 입힌다는 것이 포장의 성격을 갖기도 하고, 거짓말이라는 것이 은폐의 성격을 띠고 있는바, 거짓말에 색깔이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 속,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 귀도는 어린 아들 조슈아가 놀랄까봐 자신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합니다. “이건 게임이야. 우리가 참고 견뎌서 1등을 하면 탱크를 받을 수 있어.” 그리고 사형을 당하러 가는 마지막 길에서도 아들을 궤짝에 숨기면서 "오늘 하루가 지나면 우리가 1등이야. 오늘 하루가 잠잠해질 때까지 절대로 나오면 안 돼.”라며 아이를 보호합니다.

이처럼 하얀 거짓말은 선의를 위해 사용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입니다. 하얀색이 빛과 착함과 시작을 의미하는 것처럼,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닌, 긍정의 마인드를 유도하는, 이런 종류의 거짓말은 인간관계에 약이 된다고들 믿습니다.

반면에 까만 거짓말은 죄가 되는 거짓말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거짓말을 말합니다. 블랙 메일(blackmail)이 ‘공갈’이라는 뜻을 갖고, 블랙리스트(Blacklist)가 ‘요주의자 명단’이란 말처럼, 검정은 부정의 색이고 사랑의 반대인 미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검은색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와 연동되어 까만 거짓말이라 하면 더욱 악의적인 의미로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검은 것과 흰 것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 또는 평가는 인종주의적 편견도 가세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백인 위주의 규정이라는 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60년대 말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은 이런 인종주의적 사고를 깨기 위해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노란 거짓말은 판단력이 흐린 어린아이들의 귀엽고 앙증맞은 거짓말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노랑이 겁쟁이를 표현하기도 하고 영어로 'Yellow'가 비겁하다는 뜻을 갖기도 하며, 프랑스인들이 불안한 웃음을 노란 웃음이라고 하듯이, 노랑은 무언가 강력하지 않은, 미온의 부정과 거짓과 불신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것과 통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란 의도이든 아니든, 사실이든 허구든, 완벽한 속임입니다. 동기가 악한 거짓말에 피해를 보는 경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를 외치며 억울함을 호소하다보면, 종종 목에 핏대가 서거나 충혈된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게도 되지요. 새빨간 거짓말에는 빈번히 격한 분노가 수반됩니다.

독일에는 "이성을 잃은 사람은 빨강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어 'Rotsehen'에서 'Rot'가 'Red', 'Sehen'이 'See'를 의미하기에 ‘See Red’ 즉 빨간색을 보다는 말에 ‘격노하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투우사의 빨간색 천이 휘날릴 때 소가 흥분한다고 믿었던 것과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실제로 소는 색맹이라 빨간색을 보고 흥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빨강은 투우를 바라보는 관객의 흥분을 고조시키는 색입니다.

빨강은 격앙과 흥분 증오의 색으로 사용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빨간 거짓말을 ‘Red Lie’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노골적인 거짓말, ‘Outright Lie’ 또는 완벽한 속임수, ‘Perfect Fake’라고 합니다. 거짓말을 색과 연관 짓는 것은 언어의 의미 전이 현상일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얗든 빨갛든 검든, 매일 다채로운 거짓말을 큰 심리적 부담 없이 하고 삽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사람이 하루 2백 번 정도의 거짓말을 한다 하고, 독일의 기자 위르겐 슈미더는 ‘거짓말하지 않고 40일 동안 살아보기’에 도전하며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과시를 위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각양각색의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하얀 거짓말 역시 거짓말이기는 매한가지라는 점입니다. 하얀 거짓말의 반복이 진실을 덮고 본질을 가리다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는 선의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현실은 도리어 그 거짓말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중병에 걸린 상대에게 별 거 아니라고, 거짓으로 안심을 시키는 바람에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뺏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이롭게 하는 빨간 거짓말, 남을 해치는 까만 거짓말이 아닌, 남을 위해서라는 하얀 거짓말이라도 윤리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처합니다.

윤리전문가로 알려진 브루스 와인스타인은 가치의 기준이 애매할 때 현명한 선택과 행동을 하게 해주는 윤리지능의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윤리 지능은 보기에는 문제가 없거나 선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과연 그럴까 하는 질문을 치밀하게 밀고 나가는 능력입니다.

누가 봐도 악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의도가 선하다고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긴장감 높게 의식하는 생각의 힘은 일상에서의 꾸준한 훈련이 없으면 쉽게 가질 수 없습니다. 거짓말의 윤리에 둔감한 개인과 사회는 바로 이러한 윤리지능의 수준이 낮은 단계에 있는, 이를 테면 윤리적 색맹 상태에 있는 셈입니다.

거짓말의 색깔은 잘 구별하는 듯하지만, 윤리지능 지수가 떨어진다면 그건 결국 흰 것을 검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린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일까요? “자, 여기 거짓말의 다양한 색깔이 있어요. 무슨 색깔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그때마다 맞춤으로 해드립니다. 아무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답니다.”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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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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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봉 (203.XXX.XXX.22)
색갈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재밌고 여운이 남는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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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2 10:34:32
0 0
강기리 (121.XXX.XXX.238)
나를 위해서 하는 거짓말과
상대를 위해 듣기 좋아라고 하는 거짓말
흰색이든 새빨간 색이든 아예 거짓말은 하지 않는게 정상이겠지요.

하지만 상대에게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 어떠하든
바른말, 정직한 말만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일이 겠지요.

전문가답게 거짓말에 색을 입혀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답변달기
2015-06-30 18:40:16
0 0
꼰남 (112.XXX.XXX.25)
참 재미있는 글이로군요. 색깔과 거짓말.... 색의 말과 느낌이 거짓말과 결합할 때의 경우 같은데
한편으론 색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게 될까 조심스러워지네요.
답변달기
2015-06-30 08: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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