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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1) -율리우스 카이사르
방석순 2007년 10월 15일 (월) 08:31:28
나라의 명운을 가릴 대선이 코앞인데도 ‘신정아 파문’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은 시들 줄 모릅니다. 학교와 문화축제의 자리싸움에서 불거진 ‘학위위조 사건’이 미술관 지원금 횡령, 특정 사찰에 대한 국고 편법 지원 시비를 거쳐 청와대 실세와 가짜 여박사의 비뚤어진 사랑, 조계종과 언론사의 기 싸움, 불교계의 자정운동, 전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으로 화제를 부풀려 나가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말장난으로 사회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대통령, 한심스러운 대권 후보 경쟁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신정아-변양균 콤비가 빚어내는 사련(邪戀)의 이중주로 국민들의 눈길을 돌리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성(性)을 무기로 들고 나오면 세상은 시끄러워지게 마련입니다. 성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떤 옹벽도 뚫어내는 침투력을 가졌습니다. 고하를 불문하고 사람을 마비시키는 마력이 있습니다. 버나드 쇼(시저와 클레오파트라)나 셰익스피어(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 소재가 된 클레오파트라가 그 분야의 대표선수 격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잘 알려진 것처럼 지금부터 2천여년전 고대 이집트왕국을 마지막으로 다스린 여왕입니다. 비운으로 끝났지만 이 요염하고도 큰 욕망을 가진 여왕은 타고난 미모와 뛰어난 기지로 고대 유럽 문명사회를 뒤흔들어 길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원래 여왕의 선조 프톨레마이오스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부장이었습니다. 기원전 332년 대왕이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이집트를 정복하고 동방원정 도중 숨지자 프톨레마이오스는 그곳에 자신의 왕조를 세웠습니다. 기원전 3천여년전에 처음 통일국가를 이룩해 찬란한 문명을 구가하던 이집트가 결국 그리스혈통에 의해 마지막 왕조를 열게 된 것입니다.

갈리아(프랑스)와 브리타니아(영국)를 정복하고 로마제국의 기초를 닦은 영웅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희대의 난봉꾼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로마로 개선할 때면 부하들이 “시민들이여, 아내를 감춰라! 대머리 난봉꾼이 돌아온다!”고 외쳤다는 겁니다. 로마 연구에 몰두했던 18세기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증언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귀족들과 원로원의 시기질투는 그의 재능과 성공 때문만이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런 카이사르가 귀여운 연인 클레오파트라를 로마로 불러들였을 때 그의 네 번째 부인 칼푸르니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답니다.

역사 무대의 두 주인공,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는 만남도 극적이었습니다. 로마의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도망쳐오자 겁먹은 이집트의 어린 왕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총신인 내시 포티누스는 폼페이우스의 목을 잘라 카이사르에게 받쳤습니다.

한발 늦게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한 카이사르는 선심 쓰듯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누이 클레오파트라 7세의 화해를 주선하고 나섰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열세 살의 어린 왕과 일곱 살 연상의 누이 클레오파트라가 막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던 때였습니다. 부왕이 관습에 따라 누이와 결혼해서 나라를 공동 통치하도록 유언했지만 동생은 부하들과 함께 성가신 누이를 국외로 쫓아내 버렸던 것입니다.

그녀의 복귀를 막기 위해 왕의 삼엄한 경비망이 펼쳐져 있던 어느 심야에 작은 배 한 척이 알렉산드리아 선착장에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융단을 둘둘 말아 어깨에 짊어지고 배에서 내린 사내가 경비병들에게 카이사르에게 건네줄 선물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카이사르 앞에 무사히 다다른 사내는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전하는 선물이라며 융단을 펼쳐 보입니다. 그 속에서 스무 살의 귀여운 여인이 미소를 머금은 채 카이사르를 향해 팔을 벌렸습니다. 전장을 누비며 오랫동안 성에 굶주렸던 카이사르에게는 더할 수 없는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저항하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일파를 숙청한 후 클레오파트라를 열 살이나 더 어린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결혼시켰습니다. 여왕과의 애정행각을 숨기기 위한 허수아비를 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람둥이 카이사르는 뜨거운 사랑을 얻었고, 욕망의 덩어리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통치권을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로마에 돌아와 전례 없는 최고의 권력을 독점하게 된 카이사르는 지체 않고 연인 클레오파트라를 불러들였습니다. 부인 칼푸르니아의 집이 멀지 않은 대저택에서 카이사르는 매일 클레오파트라와 뜨거운 밤을 보냈습니다.

에스파냐에서 반란을 일으킨 폼페이우스 잔당과의 일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로마를 떠나면서 카이사르는 절대 사고치지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부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클레오파트라의 보호를 부탁합니다. 그로서는 미래에 펼쳐질 ‘클레오파트라의 열애극 2탄’을 상상조차 못했을 겁니다.

반란군을 제압한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이라는 직책에 오릅니다. 그의 권세는 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를수록 위험도 커지는 법입니다. 그의 공훈을 시기하는 무리들뿐 아니라 공화정의 종말을 우려하는 자들에게 카이사르는 타도 대상이었습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절대 권력자였던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장에서 카시우스, 브루투스 등 공화주의자들과 원로원의 추종세력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는 과거 폼페이우스파였지만 카이사르의 특별사면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더욱이 브루투스는 바람쟁이 카이사르의 옛 애인 세르빌리아의 몸에서 태어나 카이사르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습니다. 로마 역사는 이렇게 해서 또 다시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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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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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211.XXX.XXX.4)
연우포럼에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다가 오늘은 직접 사이트에 방문해서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매일경제에서 인터넷분야를 담당(국장)하는 신진호라고 합니다. 몇회에 걸쳐 연재가 될지 잘 모르지만 기대가 됩니다.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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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6 08: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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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두 (24.XXX.XXX.106)
흥미진진합니다.ㅎㅎㅎ
그동안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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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5 19: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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