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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를 대비하는 중년 남성들에게
신아연 2015년 08월 06일 (목) 06:46:53
이번 주부터 한 주간신문에 새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신문의 주 독자층은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중장년 남성들로서, 편집자는 제게 그들을 응원, 격려, 배려, 지지하여 자존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써달라고 주문했습니다.

100세까지 살 확률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높은데 굳이 남성 독자층을 겨냥한 이유는 재취업과 창업 등, 은퇴 후 경제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 위주로 꾸리는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민간 기업의 실제 퇴직연령을 53세로 잡았을 때 퇴직 후 처음 1~3개월은 재취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낙관적 시기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다 3~8개월에 접어들면 가족간의 문제, 구체적으로 부부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의기소침해지는 시기가 된답니다. 아울러 높은 구직 경쟁률과 반복되는 구직 실패로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면서 8개월 이후에는 초조와 불안으로 취업에 대한 희망을 점차 잃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듭니다. 그 상태에서 1년이 지나도록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이전 직장과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며 좌절하고 절망하는 단계에 접어든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일자리를 잃고 낙관과 분노 사이, 의기소침과 불안 초조의 단계에 있는 중년 남성들을 글로 위로하고 아픔과 고민을 공감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실상 그 신문의 주 독자와 저의 공감대는 중년이라는 나이 외에는 없습니다. 저는 여자이고 정년이라는 금이 그어진 일자리를 가진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중년의 몸집을 한국에서 불린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제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다시금 밥벌이가 절실하다는 분들 앞에서 입만 나불거리고 원고료나 챙기는 꼴이 될까 몹시 저어됩니다. 마치 시집도 안 가 본 사람이 결혼 생활의 지난함을 논한다거나 자식도 없는 사람이 애는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가르치라 할 때의 공허함과 맹랑함이라고 할까요. 밥 없으면 빵 먹으라는 식의 말은 더더구나 가당치 않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첫 글을 앞두고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글보다 진실해야 한다는 각오가 앞섰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찾는 데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낙담과 절망에 겨워 분노까지 스멀스멀 가슴 한편에서 피어오른다는 통계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가 집단적 조급증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습니다. 단순 이직이나 첫 구직에도 그렇게 ‘졸갑증’을 낼 필요가 없는 1년이라는 시간을, 은퇴 후 판을 바꿔 새로운 경제 활동을 하려는 상황에서 그 정도는 인내하며 기다리고 견딜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21년을 호주에서 살면서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우리말에 있는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거기 살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다시 오니 비교적 제 자신이 제법 느긋한 편에 속하더라는 거지요.

이제 생의 반환점을 막 돈 중년은 달려가던 곳의 이면, 가던 곳의 반대 방향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성적과 관계없이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는 휴식 시간이 주어지듯이,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생의 뒷면 내지는 전모를 살피며 새로운 50년을 뛰려면 땀을 닦고 신발 끈도 다시 조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당장 돈이 없어서 밥을 굶는 사람은 이제 우리 사회에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좀 기다리는 훈련을 했으면 합니다. 기다리면서 이런 것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저는 그 신문에 썼습니다.

내가 도무지 내 인생을 산 것 같지가 않고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준 느낌, 남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남들처럼 사느라, 남의 옷인 줄도 모르고 평생 껴입고 다니며 때로는 원래 내 것인 양, 때로는 불편하기 짝이 없어 당장 벗어 던지고 싶었던 순간들, 내가 가고 싶었던 길, 그래서 지금이라도 되돌아가고 싶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간절함과 맞닥뜨리게 되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자고 말입니다.

자기기만을 떨치고 허영과 허세를 줄일 수 있다면 중년은 가장 빛나는 시기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년 남성의 진정한 자존감과 매력은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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