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를 뛰어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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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를 뛰어넘자

방석순

2015년 08월 14일 (금) 01:02:46

내일은 광복 70주년입니다. 일본에서는 종전(終戰) 기념일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패전을 인정하고 항복을 선언한 지 70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들의 항복 선언이 늦어졌다면 우리의 광복의 기쁨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내일 우리는 나라 찾은 기쁨을 되새기겠지만 그들은 패전과 항복의 참담함을 되씹게 될 것입니다.

광복절을 즈음해 갖가지 경축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피겨 스타 김연아, 가수 이승철과 이선희, 남성그룹 god와 EXO 등이 이끄는 합창단이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로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는 국민대합창을 펼칩니다. 항도 부산에서는 희망과 기쁨을 싣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던 귀국선 장면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밖에 여러 곳에서 독립운동 체험 행사나 축하 예술제, 전시회 등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어떨까요? 지난 6일 히로시마(廣島), 9일 나가사키(長崎), 두 원폭 투하 도시에서 잇달아 원폭 피해의 참상을 되새기며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가사키에서는 다우에 도미히사(田上富久) 시장이 영원히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나가사키평화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다우에 시장은 전쟁을 위해 개발된 원폭의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으로 일시에 수십만 명이 살상되었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당수 피폭자들이 고통 받고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안보 관련 법안이 70년 전 마음에 새긴 맹세를, 평화 헌법의 정신을 흔들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나가사키와 일본은 물론 세계의 안녕을 위해 평화의 이념이 영원히 변치 않도록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습니다.

이제 종전 기념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차례가 남아 있습니다. 하루 전인 14일에 발표될 것으로 알려진 그의 담화에 일본 국민은 물론 일제 침략의 피해국인 한국, 중국과 그밖에 많은 나라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뜻이 담길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입니다. 이미 고노(河野) 담화, 무라야마(村山) 담화에서 밝힌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과 반성 의지를 그가 거듭 부정하는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입니다.

왜 일본은 똑같이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같은 참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바르샤바 유태인 위령탑 앞에 무릎 꿇은 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와 731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 엄지를 치켜든 아베를 대비하기도 합니다.

독일과 일본의 다른 모습을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독일 국민은 그들 스스로가 나치 전범의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국민은 전시 천황, 군대와의 일체감 속에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연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아시히신문 칼럼 천성인어(天声人語)에 소개된 ‘옥음방송(玉音放送)’의 현장 묘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후 독일은 나치와는 단절된 세력, 오히려 전쟁 반대로 곤욕을 치르거나 피해를 입은 인물들이 이끌어왔습니다. 일본 정권, 특히 현 아베 정권은 과거 전범의 후손, 또는 그 지원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독일 지도자들은 나치 전범의 지속적인 추적과 단죄로 국민과 주변국의 신뢰를 얻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현 일본 지도자들 중 일부는 오히려 군국주의 일본의 위세, 식민시대의 영화를 상기시키며 옛 영광을 재현하자는 감언으로 국민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의 역사 문제가 풀리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요.

종전일은 승전국이나 그에 힘입은 독립국에게는 경축일이지만 패전국에게는 고통의 날입니다. 매년 그날을 맞이하는 일본 국민의 감정이나 집권자들의 고민이 어떠할지 짐작되기도 합니다. 과연 아베는 천황과 선조들이 내세웠던 대동아 공영의 거짓된 명분을 폐기하고 진정을 담아 그들의 전과(前過)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용기를 보일 수 있을까요. 혹시 과거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못한 채 종전일, 패망일을 가슴에 새기고 곱씹는 고통이 그를 더욱 엇나가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아베는 도쿠가와(德川) 막부를 무너뜨리고 명치유신에 앞장섰던 옛 조슈 한(長州藩; 현 야마구치 현)의 후예입니다. 명치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8)은 국가 발전을 위해 군사침략도 불사해야 한다며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조슈의 하기(萩)에 쇼카손수쿠(松下村塾)을 열고 제자들에게 국력을 길러 치기 쉬운 조선, 만주부터 정복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조선과 대륙 침공에 앞장선 것이 초대 총리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한일병합 당시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의 야망이 연합국의 반격에 꺾여 패망하던 날 일왕 히로히토(裕仁)는 제국 신민을 향해 소위 ‘옥음방송’, 곧 ‘종전(終戰)의 조칙(詔勅)’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이 가관입니다. “세계만방과 공영의 즐거움을 함께 하고 동아시아 안정을 바랐기 때문에 美·英에 선전포고했던 것이지,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내 뜻이 아니다. 육해군 장병의 용맹과 문무백관의 근면 등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황을 돌이킬 수 없고, 적이 새로 잔혹한 폭탄으로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고 참담한 피해를 입혀 우리 민족의 멸망은 물론 인류의 문명마저 파기할 것이 염려되기 때문에 항복하고자 한다.”

야마구치 현 출신인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는 전시 내각에 봉공한 죄로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수감됐다 풀려났습니다. 그 역시 “대동아전쟁은 결코 일본의 침략전쟁이 아니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전범 7명의 사형에 대해 “사실을 왜곡한 일방적 편견에 가득 찬 재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군신(君臣)의 언급 어디에서도 잘못을 인정하는 대목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시 노부스케는 철저한 실용주의자였습니다. 전후 일본의 경제 발전은 그에 힘입은 바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57년 총리에 취임해 1960년 격렬한 반대시위를 무릅쓰고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해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확고히 했습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1965년 막후 영향력으로 한일 국교정상화를 지원했습니다. 아베는 어린 시절 바로 그런 외조부의 보살핌 속에 자라난 것입니다.

그런 성장 배경에 남다른 정치 외교적 감각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 아베. 그의 언행에서 어떻게 진정성을 찾을 수 있을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가 던지는 수사에 일희일비하는 쪽이 오히려 더 어리숙해 보이지 않을까요.

역사 문제에 관한 한 일본 집권세력에 어느 정도의 외교적 압박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매번 일본 총리의 입만 쳐다보고 귀 기울여 시비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베의 입담쯤은 뛰어넘어서 보다 실질적인 국익을 위해 그들과 밀고 당기는 외교력, 협상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선제적으로 생각하고 방향을 설정해 필요한 협상 테이블을 펼치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국정 과제의 하나가 평화통일 기반 구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튼튼한 안보와 함께 북한 및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 신뢰 강화가 필수적입니다. 지금은 관계 개선의 돌파구도 찾지 못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대로는 한반도 평화 정착도 통일의 선결 요건인 동북아의 이해와 협력 증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외 문제의 해결에 좀 더 의연하고 대범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꼰남 (112.XXX.XXX.25)

<세계만방과 공영의 즐거움을 함께 하고 동아시아 안정을 바랐기 때문에 美·英에 선전포고했던 것이지,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내 뜻이 아니다.> 정말 가관이로군요. 일왕과 일본국민은 이 말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DI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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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7 09: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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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내 (218.XXX.XXX.180)

정말이지 이미 그의 속이 다 노출됐는데 그가 무슨말을 하든 무슨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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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21: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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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58.XXX.XXX.251)

대외문제^특히 일본에 대해 대범하고 의연한 자세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겠는지? 좀 제시해주세요^근본적으로 반성하는, 조상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죄악을 인식하지 못하는 저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의연한 자세를 취해야 될지를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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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7: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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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순 (58.XXX.XXX.58)

아베 총리가 한 번 우리에게 듣기 좋은 말을 했다고 해서 한일 관계를 낙관하는 것도, 듣기 싫은 말을 했다고 해서 비관하는 것도 우리 자신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한일 간에는 안보, 경제 협력, 문화 관광의 교류, 재일 한인들의 법적 지위와 안전한 일상 등 숱한 현안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양국 간 필요 이상의 적대감이 고조되면서 모든 분야의 협력과 교류가 위축되거나 기대이하의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이웃과 부딪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 사이가 나빠졌을 때 겪는 불편도 어느 한쪽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 집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든 관계를 단절한다면 그런 불편을 해소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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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11: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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