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여다본 아침 방송에서 정말 멋진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서른 나이에 학교를 다니며 돈을 벌어 매년 수억 원씩을 기부한다는 장한 젊은이였습니다. ‘청년 기부왕’ 박철상. 방송에선 그렇게 소개됐지만 그 자신은 결코 그런 호칭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얘기로는 한사코 출연을 마다하는 그를 기필코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기어이 끌어냈다고 합니다.
놀라운 건 그가 해온 선행이 아니라 그가 내보인 순수한 마음과 정신세계였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일반의 선입견과 예상을 뒤엎는 것이어서 스릴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우선 방송 출연을 꺼린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운 좋게 돈을 모아 기부까지 하게 됐으니 남들에겐 성공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그런데 실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일하며 공부하며 산다. 내 얘기가 오히려 그들 가슴에 상처를 줄까 염려스럽다.”
물론 그가 운이 좋아서만 오늘과 같은 성공과 선행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된 건 아닌 듯했습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성을 쏟았기에 오늘과 같은 성취를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역사의 시작은 중3 때 아버지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0원짜리’ 주식통장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뜻에 따라 그는 돈 한 푼 없이 통장을 주무르며 주식의 이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학 수능시험을 치른 후에는 과외 지도로 번 돈을 알뜰히 모아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모의투자도 해서 익힌 지식 덕분에, 아니 그의 말대로라면 운이 좋아서,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 쌓였습니다. 6~7년 만에 10억 원이 넘었을 정도로.
‘아마도 아버지가 대단한 금융 전문가인가 보다’ 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합니다. 숫자 개념도 별로 없는. ‘그럼 주식 관련 책 덕분일까.’ 실제로 그는 책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어느 순간 눈에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통찰력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와서는 한 해 대략 1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답니다. 본격적인 주식 투자를 하면서부터는 여러 분야의 다양한 책들을 130권 넘게 보았답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읽지 않는 분야가 재(財)테크와 자기 개발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좋은(적절한?) 책도 없고 그런 책을 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여기기 때문이랍니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불우한 환경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또래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많은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가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능력만 닿으면 그들을 돕고 싶다, 그들이 사회를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보고 남에게 관대한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바꾸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 군 복무 기간 그는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펼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복학 후 지도 교수의 도움을 받아 계획의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그는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위해 연간 3억여 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4억여 원, 총 8억 원이 넘는 장학금과 기부금을 출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김밥을 팔아 먹는 데 입는 데 쓸 돈 안 쓰고 아껴서 대학에 기증하는 할머니들 이야기를 들으면 남는 돈을 기부하는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 가치의 설명은 너무도 명쾌했습니다. “쓰고 남은 돈을 은행에 맡겨 놓으면 그건 그냥 종이에 불과하다. 내가 애써 번 돈을 그렇게 무가치하게 둔다면 억울한 일 아니냐. 그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에게 쓰인다면 수백 배의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돕는 기준도 솔직하고 명확합니다. 우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고, 그다음 주위를 살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기부나 자선은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한 위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꿈도 야무졌습니다. “나 하나의 나눔으로 시작해서 그로 인해 성공한 사람들이 또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남과 나눈다면 이런 일이 나뭇가지처럼 크게 뻗어 나가지 않겠느냐.” 그래서 장학금 수혜자도 여러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재정, 열정, 인성을 엄격히 평가해 결정합니다. 밑 빠진 독에다 물 붓는 짓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방송 내내 이제 겨우 30대에 이른 그의 말에서 무엇 하나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었습니다. 주위를 의식한 정치인의 모범답안처럼 빈틈이 없었지만 스스로 도덕적 결벽증을 가졌다는 그의 진정성에 한 가닥 의심도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저런 젊은이가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슴이 벅찼을 뿐입니다.
방송 진행자나 도우미들은 이구동성으로 통 큰 자선사업으로 소문난 거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을 보는 것 같다며 칭찬했습니다. 제 눈엔 그 젊은이가 그보다 훨씬 더 큰 산으로 비쳤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구만리 같은 그의 장래 모습이 어떠할지, 그가 심은 나무가 얼마나 크게 자랄지 가슴이 설렜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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