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징비록 관련 책(‘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송복 지음)을 읽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징비록 같은 역사적 일들을 교과서에 실린 한두 줄을 읽은 것으로 마치 그 역사를 아는 척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게 어쩌면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문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 내 개인 문제일지 모릅니다. 몇 년 전 하얼빈에 가서 안중근 의사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아차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산 책, 우리나라에 돌아와 구한 책 서너 권을 읽은 뒤에야 안중근 의사의 삶과 사상(특히 동양평화론)을 조금 이해하게 된 일과도 맥이 통합니다. 우리가 가진 역사 지식은 얇디얇아서 책에서 배운 몇 줄로 뭘 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분량에 한계도 있고, 어떤 것은 역사적 사실을 확정하기 어려운 것도 있기 때문이죠. 위 책을 읽고 징비록의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느꼈습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기록에서 우리나라 역사가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한다는 반성을 담은 것이라 합니다. 구한말 일제에게 나라가 통째로 넘어간 것도 그 뿌리는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는지 제대로 반성하지 못한 것과 이어진다는 해석에는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잘못된 일을 겪을 수 있지만, 그 일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그런 일은 되풀이됩니다. 역사는 자기를 지키지 않는 나라를 지켜주지 않는다, 역사는 결코 자비롭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은 지식재산시대입니다. 지식재산권이 가치를 만들어내기에 기업이나 국가의 국제 경쟁력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지식재산 경쟁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식재산분야 현안과 중요성을 자주 얘기합니다(우리나라는어떨까요?).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특허법원을 만든 우리나라를 부러워했습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해서, 특허침해사건의 관할을 집중했고, 변리사에게 침해소송대리권을 주도록 제도를 고쳤습니다. 중국은 특허전담법원을 설치하는 결정에서 설치까지 무척 빨리 해결합니다. 작년에 북경을 시작으로 상해, 광주까지 설치하는 데 개략 1년 동안에 해결했나 봅니다. 우리가 특허법원을 설치하기로 결정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비교됩니다. 또, 유럽연합은 유럽 전체에서 통하는 통합특허제도를 만들었으며, 특허침해사건을 담당할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을 이르면 2016년에 출범할 것 같다고 합니다. 유럽통합법원에서는 특허침해사건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주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것이 세계의 움직임입니다.
지식재산권의 경쟁력은 우수한 지식재산을 만들고, 이를 보호 활용하는 것에따라 결정됩니다. 우리의 지식재산 창출은 (특허신청 건수를 기준으로) 이미 세계 5대강국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과 기업(!)이 만들어낸 대단한 성적표입니다.
지식재산을 보호하려면 전문가제도가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1961년에 제정된 변리사법은 '특허에 관한 소송'에 소송대리권을 변리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유독 '침해사건'에서 소송대리권을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인 변리사 자격을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주는 문제도 남아있습니다. 두 가지 병폐를 고치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말로 흐지부지되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허법원이 있음에도 특허침해사건을 일반 법원에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전문법원을 만드는데 우리는 있는 전문법원도 활용하지 못합니다. 21세기 지식재산시대를 맞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징비록에서 ‘자강’을 가장 강조합니다. 자기 스스로 힘을 키워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을 당한 다음에도 우리는 자강을 준비하지 못해했고, 결국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과 기업은 세계특허 5대강국에들도록 ‘자강’했습니다. 국민과 기업이 만든 5대강국을 지키려면 전문가제도와 사법제도가 ‘자강’해야 합니다.
작은 밥그릇 때문에 머뭇거리며 자강할 때를 놓치고 있을 것인가요? 지식재산분야가 ‘자강’할 때를 놓쳐도 역사는 자비로울까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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