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서울광장을 도심공원으로

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홈 > 연재칼럼 | 방석순 프리즘

광화문·서울광장을 도심공원으로

방석순

2015년 11월 10일 (화) 00:45:18

혹시 이런 느낌 가져 보신 적 없습니까? 저는 서울시청 앞을 지날 때마다,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여기가, 이곳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얼굴인가. 전후좌우 조화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형적 조형에 메마르고 살벌한 분위기. 게다가 거의 날마다 예외 없이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푸닥거리. 시민들의 발이라는 버스길조차 막아놓고 펼쳐지는 장터. 꼭 누군가에게 도시의 얼굴을, 우리의 안마당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심미안을 갖지 못한 탓일까요. 새 청사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서울시청 신·구관의 괴이한 부조화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저 역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꼽지만 지금처럼 돌바닥 위 높은 단에 올려 앉히고 세운 대왕과 장군의 동상은 어쩐지 허허롭고 아득한 느낌마저 듭니다. 예전 작은 체구의 플라이급 복싱 선수에게 무지막지하게 큰 챔피언 트로피를 안기고 벨트를 매어주던 것과 같은 부조화와 허세를 느끼기도 합니다.

어느 날 헐리지 않고 남아 있는 시청 구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의외로 깔끔한 실내에 많은 장서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길을 오가다 들르는 시민 누구라도 잠시 짬을 내어 계단식 열람실에서 편안히 책을 읽을 수 있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도서관입니다. 외관이야 어찌 됐든 서울의 모든 공공도서관을 총괄 지원하고 320여 개 도서관의 소장 자료를 한 곳에서 검색할 수 있다니 참으로 유용한 시설입니다.

안타까운 건 도서관 바로 앞 서울광장과 대로에서 거의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소음입니다. 마침 그날엔 광장에 큼직한 무대가 설치되어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둘레에는 길게 천막을 쳐 각종 물건을 파는 가게가 늘어섰습니다. 어느 기관에선가 벌이는 그 행사 참여자들로 광장은 장날처럼 붐비고 있었습니다. 더러는 한낮에 벌써 지쳤는지 잔디밭에 길게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시청 청사 왼쪽 인권위원회를 마주 보는 인도에서는 어느 회사 노조원들인지 빨간 휘장을 쳐놓고 노동가요를 틀어놓은 채 회사 측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덕수궁 돌담을 낀 청사 오른쪽 대로변에는 길게 줄지어 선 관광버스들이 정류장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일반버스 이용 승객들은 아슬아슬 안쪽 차선까지 들어가 버스에 오르내렸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 광화문광장도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앞은 시민들 대상으로 무슨 홍보대회인가로 시끄러웠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은 꽤 오래전부터 세월호 유족들의 천막이 점령한 상태입니다. 지난해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정부의 조사보고가 미덥지 않아 특조위가 가동 중이라는데 그것도 못 믿겠다는 것인지 그 오랜 세월 유족들이 직접 저렇게 길바닥을 거처 삼아 농성 중이니 안쓰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모든 야단법석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기인한 게 아닌가 싶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흉물스럽던 청계천 고가를 허물어 지금처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도심 하천공원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인지 아닌지 몰라도 대권 도전에도 성공했습니다. 분명 그 바람에 후임들이 너도나도 도시를 뜯어고치거나 행사판을 벌여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 드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누구는 광화문광장에 돌바닥을 깔아 놀이터로 만들고, 누구는 거기다 천막촌을 세우고. 앞으로 광화문광장을 더 넓혀 보행자 천국을 만들 계획이라는데 그게 정말 시민의 일상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걱정스럽습니다.

1997년, 그러니까 조순 시장 시절이던가요. 허허벌판이던 여의도광장에 공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군중집회 아니면 몇몇이 땡볕에 자전거나 타던 그곳이 지금은 전통 숲, 잔디마당, 문화마당, 자연생태의 숲을 갖춘 도심 공원이 되었습니다. 서울을 더욱 푸르고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로? 물론 좋습니다. 그런 역동성이 오늘과 같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꼭 수도 서울의 심장에다 천막을 치고 장을 펼쳐야 역동성을 자랑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중집회나 단체응원은 운동장, 체육관, 그 밖에 합당한 다른 열린 공간에서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말 장터도 이미 서울의 20여개 구청 안팎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습니다.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은 오히려 아담한 정원으로 꾸며 도시민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심의 직장인들도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도 분주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머리를 식히고 쉬어갈 수 있는 정서적인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도심의 작은 ‘숨주머니’로, 시민들의 달콤한 휴식처로 사랑받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소중한 공간을 그 주인의 품에 온전히 돌려주는 일이 아닐까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오마리 (24.XXX.XXX.229)

깊은 공감을 합니다. 도서관은 가보지 않았어도 지난번 서울 갔을 때 광화문 광장이 너무 삭막하고 덩그랗고 거기에 집회 장터등이 서는 걸 보곤 실망을 한참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도가 아직도.... 자유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고 이해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명색이 대한민국의 얼굴이며 대표 마당인 곳에서 천막치고 하는 모습이 미국 도시마다 있는 플리 마켓(벼룩시장 )같아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이런 모습을 유도하는 사람들이 서울시와 정치에 몸담고 있으니 이 세대들이 빨리 떠나야 할것입니다. 아마 20-30년 세월이 필요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