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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여전히 불편한 진실인가?
정달호 2015년 11월 16일 (월) 02:14:12
4.3,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숫자요 날짜입니다. 새 천년으로 접어들어 이 사건을 전면적, 공식적으로 다루기 위한 4.3 특별법이 제정, 시행되면서 3년 후인 2003년에 진상보고서가 발표되었고 작년부터는 그날을 국가 기념일(4.3 희생자추념일)로 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제주 바깥에서는 그날과 그 숫자를 입에 올리는 것이 여전히 불편한 모양새입니다. 추념일로 정한 당사자인 대통령도 제주인의 여망을 껴안지 못한 채 지난 4월 3일 결국 그 자리에 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특별법이 시행된 지 15년, 이제는 이 ‘불편한 진실’을 편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의 바닥에는 크게 두 가지의 진실이 놓여 있다고 봅니다. 첫째, 1948년 4월 3일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 세력의 무장 봉기로 12개의 경찰지서가 동시에 습격을 받았습니다. 국가가 그 불법적인 날을 기린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기에 그날을 정당화하는 어떤 시도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둘째, 1948년 4월 3일의 사태로 촉발되어 1954년 종료될 때까지 2만5천 내지 3만의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4.3 사건으로 부르게 된 이 어두운 시간 속에서 당시 제주도 사람 아홉 중 하나가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아직도 끊이지 않는 4.3에 대한 논란은 첫 번째의 진실에서 서로 갈등합니다. 한쪽에서는 반국가적 사건이 일어난 그런 날을 왜 기념해야 하는가, 고 반발하며 다른 쪽에서는 무려 6년 간 지속된 거대한 상잔(相殘)의 참극이 그날 이래의 무장 봉기를 과잉 진압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맞섭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6.25 전쟁 이래 가장 많은 죽음을 가져온 이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몇 마디로 단순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첫 번째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논란은 역사에 맡기고 두 번째의 불편한 진실과 진정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2만5천 내지 3만이라는 인명, 그것도 군경과 무장 봉기 세력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양민인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불편하게 생각해야 할 진실인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첫 번째 진실 논란의 와중에 두 번째의 진실을 깊이 새겨볼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60, 70년이 지난 지금은 사고로 인해 그 천분의 일인 25, 30명이 희생되어도 나라가 흔들릴 만큼 난리법석을 겪습니다.

오래전에 일어났기에, 또 언젠가 잊혀질 일이기에 그 많은 인명의 살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억울함이 남은 죽음이라면 이를 밝혀주고 그 넋을 위로해 주는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직도 희생자들을 가슴속에 담고 있는 유족이나 친지들에게 그 이상의 슬픔과 아픔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4.3을 보이지 않는 곳에 밀쳐 두어야 할 숫자로 보거나 더더욱 이념이라는 이미 탈색된 잣대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50년이 지나 뒤늦게나마 정부가 나서서 4.3 특별법을 만든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4.3 추모공원이 생기고, 4.3 평화재단이 설립되어 이런 일을 실제로 맡아 해오고 있지만 이젠 이를 제주의 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희생자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대통령이 4.3 희생자 추념일(追念日)에 오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6년 전 제주에 정착한 필자도 ‘외지인’으로서 4.3 사건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피상적인 알음만 가져서, 처음에는 그 사건을 접하면 일단 부정적인 반응이 일었던 게 사실입니다. 4.3이 제주에서는 아직도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응어리진 아픔이란 걸 체감하고 또 틈틈이 찾아본 기록들을 보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보편적인 명제 아래, 스러져간 그 많은 생명들이 유족들뿐 아니라 우리의 가족이고 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승화할 것인가가 남은 과제입니다.

지난 월말 4.3 평화재단이 다섯 해째 개최한 평화포럼의 한 주제가 '4.3, 문화로 소통하다'였습니다. 포럼의 기조강연 또한 문화를 통한 슬픔과 아픔의 승화를 내용으로 하였는데, 강연자는 “이 슬픔은 (중략) 인간 생명의 존엄성 위에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우리 모두에게 연결된 것”이라고 하면서 “제주의 넓은 초원에서, 평화로운 오름의 기슭에서 제주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진혼과 화해의 음악을 유사한 아픔을 겪은 난징, 대만, 오키나와 그리고 세계에서 오는 청중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화만큼 공감과 소통을 통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활동이 제주에서 이미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전국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격려하고 보다 많은 사람이 제주로 와서 같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진혼곡(鎭魂曲)과 같은 음악뿐만 아니라 아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제주 곳곳에 미술, 설치, 무용, 뮤지컬, 연극, 영화 등을 통한 창작과 표현의 무대를 펼치는 것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좋은 수단이 될 것입니다.

최근에 4.3의 비극을 깊이 겪은 제주 어느 작은 마을에 '4.3길'이란 길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억눌려 온 4.3이란 말이 이처럼 보다 쉽게 우리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앞으로 새로 생기는 제주의 큰 도로에 4.3이란 이름을 붙여 이 길을 자주 다니면서 가슴에 담아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4.3은 더 이상 불편한 진실이 아닌 일상의 진실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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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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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유 (58.XXX.XXX.27)
제주에 제주4.3평화공원과 4.3기념관이 있습니다. 한번 들러 보면 4.3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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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09:50:44
0 0
송봉현 (119.XXX.XXX.179)
많은 국민들이 거창양민 사건은 알랑도 4.3의 실상을 잘 모르는 편일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4.3 이란 글자를 이념을 떠나 추모의 편한 맘으로 대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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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08:43:40
0 0
정달호 (175.XXX.XXX.174)
여러 선생님들의 좋은 말씀들 감사드립니다.
격려의 말씀으로 알고 좋은 글 쓰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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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20:47:31
0 0
OK (223.XXX.XXX.15)
정대사 작품은 항상 편안하고 설득력이 있네요.
이젠 확실한 제주도민다움이 보입니다.
제주를 대변하는 객관적인 역할해주기바랍니다.
정말 제주에서 꼭필요한 지성인이 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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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16:44:49
0 0
이정원 (211.XXX.XXX.19)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주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4.3을 어떻게 볼것인가는 객관적인 최대공약수가
도출된 다음에나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정해졌으니
불편한 진실인 채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만 이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여기까지만 논하는게 바람직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긁어서 자꾸 상처를 키워서는 안되지만 낫지 않는 상처를 강제로 아물게
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역사는 역사만이 인식하고 해석하겠지요.
좋은 글 잘 읽엇습니다. 제주 나이 더 들기 전에 한번 더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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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15:29:29
0 0
최석권 (124.XXX.XXX.180)
한 나라의 지도자의 결단력은 후손에 끼치는 영향력에 있어
참으로 크고 중요합니다.
당시 김대중대통령이나 노무현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하여
4.3으로 이념과는 관계 없이 살상된 주민의 마음이라도
달래 주었더라면 지금 쯤 많은 부분이 주민과 정부간
화합이 이루어 져있을터인데요, 아쉽습니다.


이제 박근혜대통령께서라도 제주주민을 찾아 만나 그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해주셨으면합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은 따지지말고
그저 국민의 따뜻한 지도자로서
영문도 모른채 유명을 달리한 제주도민전체와
화합을 바라는 전국민을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4.3 당시 총알에 입술이 날아간 제주 아주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TV에서 시청하고 밤잠을 설친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 지금도 잘 살아계시기를 기원합니다.
후에 어느 의사가 입술을 새로 달아주었다고 듣기는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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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11:05:25
0 0
박연철 (220.XXX.XXX.129)
잘 읽었습니다. 응어리, 그림자, 분한이 가시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지난 일들이요, 현재와 미래가 그위에 층층이 나날이 쌓이고 있습니다. 과거를 확인하는 새로운 인식과 지식이 증가하였지만, 현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의무도 있다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해명하기 어려운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박 연 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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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10:09:15
1 0
꼰남 (112.XXX.XXX.25)
그 4.3길이 제주의 '주홍글씨'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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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09:19:0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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