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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인 듯 '노자' 아닌
신아연 2015년 11월 24일 (화) 02:11:29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지난 2일자에 쓴, 노자에 대한 제 글을 읽은 분으로부터 어느 분야나 ‘무림의 고수’들이 있는 법이거늘 감히 무람없이 입을 놀렸다는 투의 힐난을 받았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맞아 노자의 무위자연을 떠올리며 쓴 제 글이 그렇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다만 그분의 생각이 나와 다르구나 하고 마음의 별 동요 없이 넘겼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었던 8명 가운데 지인도 있었지만 초면이 대부분인 데다 제 글을 핀잔한 그분도 그날 처음 만났습니다. 일단 활자화된 글은 독자들의 몫이니만큼 칭찬에도 비난에도 들뜨지 않는 훈련은 되어 있는 편이라 기분이 나쁘거나 감정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무림의 고수’란 표현에서 노자에 대한 본인의 이해가, 어쭙잖은 저의 그것보다 월등하다는 뜻으로 들렸고, 그러니 속된 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고 세탁기 앞에서 빨래하냐.”는 빈정거림인데, 그분의 그러한 태도는 노자 말씀과는 사뭇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 노자를 안다면 저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제가 아는 ‘노자’였기에 그분의 ‘지적질’이 놀라웠던 것입니다.     


오강남의 <도덕경>에는 도를 아는 사람은 머뭇거림, 주춤거림, 어려워함, 맺힘이 없음, 소박함, 트임 등의 모습을 특징적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도인은 예의 바른 교양인의 단계를 넘어선 사람이기에 보기에 뭔가 어색하고 모자란 듯 보이며 어느 한 가지만을 딱 부러지게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열린 마음 때문에 “글쎄요.”하는 정도로만 대답 하니 끊고 맺는 데가 없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나사가 좀 풀린 사람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서 저는 그중 어떠한 모습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그분 자신의 생각처럼 노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남성다움을 알면서 여성다움을 유지하고, 흰 것을 지탱하며 검은 것을 인정하는, 영광을 취하면서 오욕의 자리에도 설 수 있는 양가적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런저런 분별이나 타박을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노자를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노자를 안다’고 말하는 순간 실은 ‘노자를 모르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라"고한 도덕경 1장의 말씀처럼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저도 똑같이 그분을 ‘지적질’하고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것도 7, 8명의 밥상 머리가 아닌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말이 아닌 영원히 남게 될 글로 하고 있으니 저는 더 한심하고 악질적인 ‘반노자, 비노자’적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늘 이른바 식자들의 ‘앎’ 앞에 매복되어 있는 스스로 파 놓은 함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토회를 이끄는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을 통해 ‘밀착법문, 맞춤설법’을 전하며 ‘지혜의 지식화’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지식화’란 흔한 말로 ‘머리로만 아는 것’입니다. 지식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으로 얻어지며 지혜는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에서 얻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혜를 지식화한다면 ‘덜어냄을 쌓아두는 것’이니 그 자체로 뒤죽박죽일뿐더러 막상 실생활에 적용하면 바로 오작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그분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알아서, 알려고 해서 탈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식과 지혜를 혼동해서 큰일입니다. 쌓아야 할 것과 덜어내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함에도 모두 쌓아두려고 하는 것에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도 현실의 삶은 도무지 변화되지 않고 죄다 과녁을 빗나가 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노자'를 아는 것을 두고 '무림의 고수' 운운하는 것이 바로 '지식적 노자'에 갇혀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그래서 노자도 도덕경 78장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겠지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것, 세상 사람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 못한다.”고.
 

“지식은 가깝고 지혜는 멀다.”고 해야 할까요? 하물며 노자는 자기를 아는 것에 대해서는 지혜라는 말로도 부족해 ‘명(明)’이라고 했습니다. 명이란 그대로, 한순간에, 직관적으로, 통찰적으로 환하고 밝게 보이는 것이지요. 마치 깜깜한 방에 전깃불을 켜는 순간 어둠이 순식간에 물러가는 것처럼요. 결국 자기를 제대로 알면 다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수행과 수련은 ‘자기 알기’에 궁극 지점이 있듯이요.  
 

그때 그분, 면전에서 제 글에 싫은 소리를 했지만 제가 샐쭉하지 않았듯이 오늘 제 글에도 고까워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날 그분의 말씀 속에서 제가 배울 것을 갈무리했습니다. 하나의 '지혜' 경험이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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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183.XXX.XXX.236)
명에 대한설명 잘 읽었읍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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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3 21:07:07
0 0
우천산풍 (61.XXX.XXX.175)
좀 거시기하기는 한데...
공자의 눈으로 노자를 보시는 건 아닌지~

묵묵히 글을 읽고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음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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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6 14:51:23
0 0
김종우 (59.XXX.XXX.90)
아는듯 모르겠고 모르는듯 알겠습니다.
지식은 쌓는 것이요, 지혜는 덜어내는 것 - 이해가 됩니다.
쌓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겠습니다.
옛 선현의 번뜩이는 지혜를 느낍니다.
쉽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전도서 9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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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19:05:55
0 0
신아연 (125.XXX.XXX.72)
저도 모르는 소리를 나열해 놓고 부끄러움의 반성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격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이메일이 변경되어 보내주시는 글들을 못 보고 있습니다.

jinwonkyuwon@naver.com으로 글을 계속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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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23:21:25
0 0
시드니 맨 (125.XXX.XXX.33)
'지혜의 지식화'란 말씀에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오늘날 모든 지식을 남에게 적용하는 시대이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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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14:28:15
0 0
시리우스 (125.XXX.XXX.33)
도인은 예의 바른 교양인의 단계를 넘어선 사람이기에 보기에 뭔가 어색하고 모자란 듯 보이며 어느 한 가지만을 딱 부러지게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열린 마음 때문에 “글쎄요.”하는 정도로만 대답 하니 끊고 맺는 데가 없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나사가 좀 풀린 사람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럴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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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14:27:46
0 0
생각 (211.XXX.XXX.225)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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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9:04:26
0 0
신아연 (125.XXX.XXX.72)
역시 노자에 있는 말이지요. 저는 결국 알지 못하는 자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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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23:22:20
0 0
몽촌 (119.XXX.XXX.63)
다양한 모습이 좋은 것이 아닌가요.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세상사를 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잘못이 아닌 것이죠. 도덕경은 100인 보면 100인의 색이죠. 글 잘 읽었습니다. 내 생각이 바른 것 처럼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문화가 아직도 많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건필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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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14:05:38
1 0
신아연 (125.XXX.XXX.33)
고맙습니다. 저도 몽촌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노자처럼 '열린 글'은 그래서 역동적이며 영원히 살아있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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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8:31:47
0 0
김유성 (210.XXX.XXX.50)
노자 아닌 듯 노자 같은, 쉬운 글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식은 있는 듯하나, 지혜는 없음이 확실한 저로서는 살짝 덜어낼 수 있는 정보를 얻은 것 같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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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12:04:23
0 0
신아연 (125.XXX.XXX.33)
필자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 주는 아주 '지혜로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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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8:32:40
0 0
꼰남 (112.XXX.XXX.25)
그대로 베껴 쓰서 죄송합니다.
"댓글은, 인터넷 시대 사람이 사람에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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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09:53:09
0 0
신아연 (125.XXX.XXX.33)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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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8:32:59
0 0
이정원 (211.XXX.XXX.19)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지요?
"다른 사람의 지식으로 지식인이 될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지혜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수는 없다."라고.
글 잘 읽었습니다.
도덕경 산다고 하시더니 많이 읽으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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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08:56:51
0 0
신아연 (125.XXX.XXX.33)
몽테뉴의 말이 참 절묘합니다. 지식이 없으면 좀 불편하지만 지혜가 없으면 삶이 망가지는 경험을 뼈저리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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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8:34:05
0 0
가곡 (94.XXX.XXX.134)
전후의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어떤 사람이 남의 글에 대하여 농담이 아닌 말투로 '무림의 고수' 운운 했다면 그 사람은 신 선생님의 이 글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식은 쌓는 것에서 얻어지고 지혜는 덜어 내는 것에서 얻어진다는 정의 혹은 가설도 다 부질없는 말의 잔치입니다. 그러나 부질없는 것이라도 자꾸 만들어 내보는 것이 인간사이고 그러다 보면 정말로 귀중한 것도 발견을 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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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4 03:45:50
1 0
신아연 (125.XXX.XXX.33)
가곡님의 말씀에 움찔합니다.

부질없는 것이라도 자꾸 만들어 내보는 것이 인간사이고 그러다 보면 정말로 귀중한 것도 발견을 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말씀에 마음이 가 크게 부딪힙니다. '지혜'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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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08: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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