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김영환 사에라
     
꿈꾸는 아라뱃길
김영환 2015년 11월 25일 (수) 06:17:08

젊은이들에게 열정의 주말이라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우리 부부에겐 손녀를 맡는 날입니다. 손자는커녕 마흔 넘도록 결혼을 안 해 자식 걱정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한데 며느리는 예쁜 손녀를 두 명 안겨주었으니 손녀 돌보는 것이 의무라고 여깁니다.

초가을의 어느 금요일, 손녀들에게 바람을 쏘여주자는 아내의 말에 차를 아라뱃길로 돌렸습니다. 한참 응석 부릴 세 살 배기를 좀 컸다고 엄마가 요즘 다시 일을 시작해 아침에 아파트 어린이집에 맡기면 오후 너덧 시 할머니가 데리러 갈 때까지 매여 있는 일상이죠.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떼도 쓰는데 때로 해방감을 줘서 이런 생활에 길이 들게 해야 한다고 아내는 말합니다.

아라뱃길(경인운하) 공원에 닿자마자 손녀들은 용수철처럼 튀어나갔습니다. 풀 섶에 앉은 잠자리도 맨손으로 잡으려 안간힘 쓰고 나무 계단도 위태롭게 뛰어내려 물가의 목책을 넘어가려 들었죠. 공원에는 딱히 장난감이라고 할 게 없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놀이도구였습니다.

김포에서 인천 정서진(正西津)까지 약 18킬로미터의 아라뱃길 옆으로 펼쳐지는 찻길은 돌로 만든 과속 방지턱이 워낙 많은 탓인지 평일엔 꽤 한적합니다. 그래서 나는 강화도로 이어지는 조용한 이 길을 자주 오가는데 운하 개통하고 3년이 지나도록 손녀들을 유람선에 태워 보여준다는 계획만 갖고 있다가 유람선이 어느새 사라져 버려 나 역시 늘 지나가기만 했던 아라뱃길을 손녀들과 함께 보겠다고 온 것입니다.

아라뱃길은 13세기 고려 고종 때의 실력자 최우가 처음 구상했답니다. 그는 변변한 도로도 운송수단도 없던 항몽전쟁의 무력한 시대에 물길에서 돛을 올리면 사람과 물자를 쉽게 빨리 나를 수 있음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최우는 삼남의 세곡을 천 섬이나 싣는 조운선들이 물살이 거센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염하(鹽河)로 한참 올라가지 않고 인천에서 곧장 물길을 파는 게 경창(京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았다고 운하를 건설한 케이워터는 소개합니다. 당시 발달했던 고려의 조운선은 여러 지자체에서 복원해 놓았다고 하니 가봐야겠습니다.

부평 원통이 고개 돌산에서 접었던 최우의 꿈이 나와 손녀들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세 살 터울의 큰손녀에게 말했습니다. “이 물은 배가 빨리 다니도록 일부러 땅을 파서 한강물이 바다로 흐르게 한 거야. 수백 년 전 고려라는 우리 옛 나라가 있었는데 최우라는 사람이 생각했던 걸 지금 만든 거야. 이런 걸 운하라고 해.” “강물은 전부 바다로 흘러가지요?”라고 물었던 손녀니 운하의 개념은 잘 알았겠죠.

김포공항으로 착륙하는 거대한 여객기가 쉴 새 없이 아라뱃길 위로 우람한 동체를 드러내며 고도를 낮추고 있었습니다. 작은손녀는 눈이 부신 줄도 모르고 “비행기, 비행기” 하면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눈에 움직이는 신기한 것들은 모두 로망으로 자리 잡나봅니다. 나 역시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미군 헬리콥터를 보려고 몇 킬로미터를 가슴이 터지도록 뛰어 공원으로 올라가서 보고야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저 배 뭐야?” 배는 없고 비행기와 자전거만 자주 지나가는데 물길에서 배를 처음 본 작은손녀가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강물이 졸려 하니까 눈 비벼 주는 거야’라고 하려다가 환경탐사선 같아서 “강물이 더러운가 알아보는 거야”라고 대답해주었죠. 손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운하를 만드는 데 조 단위로 들인 돈과 ‘위대한 항해의 출발’ 혹은 좀 부풀려진 ‘천년의 숙원’이라는 구호는 때를 잘못 만났는지 아라뱃길은 우리들의 전용처럼 한가로워 안쓰러웠습니다. 논란을 딛고 1천년 조상의 꿈을 이룬 것이라면 마땅히 잘 활용해야 하건만 물길은 놀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만드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의 목적이 꼭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우가 이 쓸쓸한 물길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씁쓸했습니다. 관광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아라뱃길을 따라 ‘커낼워크’를 잘 조성하고 수상 혹은 수변시장이라도 열면 창조적인 풍광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요즘 시대에 무슨 느림보 배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속도만 중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만든 올레길이니 둘레길을 찾아 걷는 사람이 많다는 데서 드러납니다. 우리라도 아라뱃길 곁에 더 자주 오자고 공원 매점에서 고객 쿠폰을 만들고 도장도 받았습니다.

아라뱃길 꿈은 길고 긴 호흡의 대물림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조인(鳥人) 꿈은 사백 년 뒤의 라이트 형제를 기다렸습니다. 어린 손녀들은 뭐가 될지, 그들의 꿈은 내가 아무리 궁금해 한들 안갯속이죠. 그러나 ‘꿈은 크게 꾸어야 해. 아라뱃길도 봤으니까!’ 나는 운하로 자극을 조금이라도 받았을까 궁금해하면서 가까이 서 있는 작은손녀를 번쩍 안고 통통하고 뽀얀 두 볼에 기습적인 뽀뽀를 가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3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필자 (106.XXX.XXX.238)
최석권 님, 꼰남 님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답변달기
2015-11-25 13:54:46
1 0
최석권 (124.XXX.XXX.180)
Bravo 선생님,
손녀들이 훌륭하게 자라서
대한민국의 멋진 주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5-11-25 09:32:27
1 0
꼰남 (112.XXX.XXX.25)
김 필자님의 이런 면모를 보니 전에 읽은 글들이 더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내유외강? ㅎㅎㅎ
답변달기
2015-11-25 08:56:31
1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