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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심'은 천심
신아연 2016년 01월 04일 (월) 03:23:00

새해 첫글을 씁니다. 마치 한 해의 첫 파종을 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올해의 ‘글 씨’를 뿌립니다. ‘2016년 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정갈한 아침 기도도 올렸습니다. 올해도 큰 변동이 없다면 한 해를 글로 열고 글로 닫게 될 것입니다. 한 달 한 달이 글로 새고 글로 저물며, 하루의 일과가 글로 시작 되고 글로 마감될 것입니다.
 
쌀농사를 지으려면 88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지요. 쌀 ‘미(米)’ 자를 풀면 팔십팔(八十八)이니, 88세를 일컫는 미수(米壽)에 쌀 ‘미’자를 쓰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쌀 농사를 지을 때 매년 들어가는 88번의 정성을 88년 동안 드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천수에 해당하는 88성상을 지나며 결코 녹록했을 리 없는 삶의 ‘애면글면’을 ‘쌀 미’자로 형상화, 상징화한 것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정성과 수고의 은유가 담긴 ‘쌀 미’자에 빗대어 제가 짓는 글 농사를 생각해 봅니다. 매 글마다 88번을 만지고, 다듬고, 돌아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나브로 농부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감히 ‘농심’을 안다고 말하는 자체가 불경스럽다면, 농심 가운데 적어도 ‘정직’은 배우고 있다고 바꿔 말하겠습니다. 한 해의 소출을 얻기 위해 1년 내내 정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농심처럼, 글을 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글 쓰는 자세와 태도에서 정직하고 착하지 않을 수 없기에 말입니다.
 
‘정직하고 착하다’는 말은 ‘천심’을 떠오르게 합니다. ‘농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을 겁니다. 또한 천심이 베풀어주지 않으면 제 아무리 애를 써도 쭉정이 밖에 쥘 것이 없다는 뜻도 담았을 것입니다. 세상 다른 일에 비해 농삿일이란 특별히 하늘 ‘빽’과 하늘 ‘연줄’이 닿아야만 풀린다는 함의로도 들립니다. 무엇보다 그 말에는 ‘한 그릇’ 이상, ‘일용할 양식’ 이상을 요구하면 그마저 빼앗을 것 같은 엄중함과, 동시에 들의 꽃도 입히고 공중 나는 새도 먹이시는 기독교 하나님의 자상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농심이 천심’이라는 말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허기심 실기복(虛其心 實其腹)’과도 닿아있습니다. 욕심과 현혹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을 비우고 다만 배를 채우라는 노자의 지혜가, 더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오직 배’만’ 채우라는 가르침으로 제게는 다가옵니다. 글을 통해 허기진 배 대신 영예나 인정 욕구 등 허기진 마음을 채우려는 순간, 천심이 저를 저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글심'은 천심인 것입니다.
 
저처럼 ‘글 밥’ 먹는 사람 중 하나인 시인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은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이 시는 약 15년 전에 발간된 그의 시집에 들어 있으니 ‘긍정적인 밥’은 그 전에 쓰여졌을 것입니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글을 써서 받는 돈은 들인 공에 비해 박하고, 헐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물게 시 쓰는 것 말고 다른 직업이 없는 전업시인’이라는 함 시인과 저의 직업이 '전업 글쟁이'로서 동일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함 시인도, 저도 '배를 채우기' 위해 올 한 해 부지런히 글 농사를 지어야할 것입니다. 함 시인은 어떨지 또 모르긴 몰라도 저는 오직 배’만’ 채우겠습니다.

제 주먹크기만 한 위장을 채우기 위해 정직한 글의 씨앗을 오늘 뿌렸습니다. 부디 천심이 저를 버리지 않아 제 글이 제 배를 채울 수 있기를, 오직 제 배만 채울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글심은 천심'이라고 다짐하듯 되뇌이면서.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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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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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92.XXX.XXX.82)
신아연선생님,
오랜만에, 그리고 올해 처음 쓰신 글을 읽게 되어 기쁩니다.
겸손하고 당당한 글에 힘을 얻고 갑니다. 감사드려요.
농사와 같이 글쓰는 일도 상당한 육체노동이니, 부디 올해 건강하시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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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9 04:11:00
0 0
신아연 (210.XXX.XXX.197)
원글보다 덧글이 감동적일 때가 많은데 오늘 선생님의 덧글도 그렇군요.

겸손하고 당당한 글- 과분하지만 참 마음에 드는 표현입니다.

님도 늘 건강하시고 그리고 행복하게 사세요. 꼭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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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9 09:27:24
0 0
김선주 (78.XXX.XXX.95)
예에~ :)) 행복하고 싶어요-옹.
저는 올해 저에게 제일 정직하고 핑계만들지 않고 부지런히 즐기는 그림쟁이로 거듭나 양지로 가슴펴고 걸어다니고 싶어요.
선생님 글이 좋은 동행이 되어 주리라 신나 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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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1 09:32:19
0 0
김작가 (39.XXX.XXX.153)
신작가님
제발 글 좀 자주 올려주십시요.
신작가님 글 기다리다가 눈알이 빠져 코에 걸려 있고 목이 빠져 허리춤에 걸려 있습니다ㅜㅜ.
방금에서야 겨우 눈과 목이 돌아와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다음 글을 언제 올려주시냐에 따라서 눈알이 빠져 가슴에 걸릴지 아예 빠져 바닥에 나뒹굴지 신작가님의 의지와 은총에 달려 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이 불쌍한 중생 몸이라도 성하게 해주소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고지혈증 쾌유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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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2:15:19
0 0
신아연 (121.XXX.XXX.49)
저를 격려해 주시려고 자신의 몸을 받쳐 이렇게까지. ㅎㅎㅎㅎ

제 고지혈증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아마 저의 옛 블로그를 기억하고 계시나 봅니다.

네이버에 '신아연'을 검색하시면 새 블로그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가 나옵니다. 요즘은 거기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거기서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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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4:08:43
0 0
김작가 (121.XXX.XXX.225)
앗 그렇습니까?
올해의 가장 따끈하고 소중한 정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ktx타고 잽싸게 블로그를 방문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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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15:13:18
0 0
아나니아 (14.XXX.XXX.154)
글과 밥, 생각해보면 글을 쓴다는건 땀과 피같은, 사상과 철학 모든것이 농축되어진 결과일텐데 현실은 그리 어렵다면 어떻게 해석해야될지 먹먹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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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08:03:12
0 0
시드니 맨 (14.XXX.XXX.154)
농민이나 글쓰시는 분들은 공통적으로 겸손한가 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튼실한 알곡을 거둘 수 없으니까요. "글심은 천심"이라 하시는 표현이 크게 공감이 됩니다. 2016년 첫글 감사하구요, 저도 한 해 겸손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사실은 제가 겸손하지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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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20:08:23
0 0
초롱이 (120.XXX.XXX.25)
신아연씨하고 친한 친구 중에 한 사람으로서 아연씨의 맘을 많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천상 글쟁이 아연씨가 글만 써서 생활이 되는 올 한 해가 되길...함께 맘을 모아봅니다.
화이팅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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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9:02:50
0 0
신아연 (14.XXX.XXX.154)
친한 친구, 뉘기요? ^^

내가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어야 친구들의 주머니가 덜 털릴텐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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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20:40:22
0 0
김종우 (121.XXX.XXX.50)
아프지만 사실이고 아파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기에 자존심과 겸손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때로는 그마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함민복 님의 '긍정적인 밥'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네요.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로 아픔을 딛고 억울함을 이겨내며 하루하루를 다듬고 살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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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2:49:41
0 0
신아연 (14.XXX.XXX.154)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기쁜 나날입니다.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기에, 생명을 주신 그분께 기도합니다. 생명이란 천명을 기르는 일, 명을 살아내는 일일진대, 그것을 주신 분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요.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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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20:38:14
0 0
최석권 (124.XXX.XXX.180)
부디 배도 실하게 채우시고,
선생님 곳간도 가득 채우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저의 어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씀 중 하나,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부디 가득 채운 곳간에서 멋진 인심 한번 내시기 부탁드립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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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2:31:04
0 0
신아연 (14.XXX.XXX.154)
제 배를 채우고도 남으면 나머지는 주위에 흘려보내겠습니다. 그러겠다고 천지신명께, 부처님께, 하나님께, 알라께 맹세했습니다.

선생님 어머님께도 그렇게 맹세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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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20:34:36
0 0
신동진 (14.XXX.XXX.154)
새해에도 좋은 글 부탁드리며 “신아연” 선생님의 배를 채우시는 글은 물론이고 선생님의 좋은 “글” 의 양식으로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배를 채워서 서로 상생 하며 살 수 있는 더불어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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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0:46:01
0 0
신아연 (14.XXX.XXX.154)
제가 그렇게 많은 소출을 낼 수 있을까요? 국민 모두의 배를 불릴 정도로요? 감격의 말씀을 복된 격려로 받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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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20:32:37
0 0
dada (211.XXX.XXX.141)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가꾸듯이 글밭을 잘 가꾸시기 바랍니다. 신아연 님의 글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비극미가 느껴집니다. 마치 '회사후소'의 하얀 바탕의 속을 보는 듯 합니다. 칠하지 않은 흰 바탕이기에 어떤 색을 칠해도 그 색이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 살아날 수 있는 순수함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방이 텅 비어 있어 햇빛이 굴절되지 않고 가득 담기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더 많은 위안과 공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건강하신 가운데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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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0:37:33
0 0
신아연 (14.XXX.XXX.154)
과분하고 가슴 벅찬 댓글에 어떻게 답글을 드려야 할지 몰라 글을 썼다 지웠다 하고 있는 중입니다.^^ 장자의 햇빛 가득한 그 빈 방으로 저를 묘사해 주셨습니다. 언감생심, 제가 그 빈 방이 되어 다사롭고 환한 빛을 머금고, 말갛고 흰 마음으로 독자들을 만나면 되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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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20:30:30
0 0
꼰남 (112.XXX.XXX.25)
농심은 천심
글심도 천심
하지만
심성은 같을지 모르나
대상이 다르지요.
전자는 땅이고
후자는 사람이라...

오늘 뿌린 글 씨앗이
올해 필자님의 배를 책임지게
싹 내고, 순 내고, 꽃 피고, 열매 잘 맺기를
함께 빌고 바라겠습니다.
답변달기
2016-01-04 10:16:12
0 0
신아연 (14.XXX.XXX.154)
그러기에 제 주위 분들이 부디 천심을 내셔서 저를 도와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지요.^^
답변달기
2016-01-04 20:27:1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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