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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와 일본 아베 총리
황경춘 2016년 01월 13일 (수) 05:37:57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수교(修交) 50주년의 해를 넘기기 전에, 말썽 많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단 한 번밖에 갖지 못하게 할 정도로 껄끄러운 문제가 바로 이 전시 일본군을 위한 위안부 문제였습니다.
 
두 정부끼리의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이에 대한 나라 안팎의 찬반 여론은 천차만별(千差萬別)입니다.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와 그들을 지원하던 사회단체는 한결같이 불만입니다. 일본의 극우(極右) 세력과 재미(在美) 교포 일부는 각각 다른 이유로 이번 합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의 긴밀한 우호관계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양국의 우방인 미국이 강력하게 주선하여 이루어진 이 합의로 이번 북한 핵실험에서 오는 위기의 신속한 대처에 큰 도움이 된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이번 위안부 문제 합의서는 피해자인 한국보다 가해자인 일본에게 더 유리했다는 것이 반대론자 대부분의 소리인 듯합니다. 그러나 어느 외교협상에서도 일방적인 유·불리는 없으며 어느 선에서의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외교 당사자나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여론을 무시하고, 안보관련 특별법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아베 총리에게는 이번 여름에 양원 선거를 치르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지지기반의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던 극우(極右) 세력과 결별하는 대담한 결단이 이 위안부 문제 타결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인종차별론자까지 포함하는 이 극우 세력과 언제까지 우군(友軍)관계를 유지하느냐가 아베 정권의 오랜 정치숙제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시 위안부와 일본군과의 관련을 증명하는 기록이나 증언이 많고, 위안부를 지지하는 지식인이나 인권단체가 국내외의 주류를 이루는 현실도, 아베 총리에게는 큰 정치적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일본에는 윤락(淪落)산업이 발달했으며, 5세기 전의 전국(戰國)시대부터 이에 관한 문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간부로 있을 때에, 한국의 기생문화가 위안부의 자연발생적 분위기를 조성하였지 않았을까 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일본의 어느 인터넷 매체가 보도했습니다. 반정부적 기사도 서슴없이 보도하는 ‘리테라(Litera)'라는 이 매체는 아베가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이라는 당내 학습그룹의 사무국장이었던 1997년 4월에 이러한 발언을 하고, 고노(河野)담화의 수정을 시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황진이(黃眞伊)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기생문화를 곡해한 것입니다. 이는 마침 일본 전통문화 보존 대상인 교토(京都)의 ‘마이코(舞妓)'를 전전(戰前)까지 성행했던 일본 유곽(遊廓)의 '유조(遊女)'와 혼동하는 잘못과 같습니다. 위안부를 기생과 연결시키는 억지 논리는 일부 일본 보수 정치가들이 흔히 쓴 수법입니다.
 
그가 2006년에 처음으로 총리로 취임한 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협의(狹義)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발언을 하여, 고노담화의 수정을 시사하고 워싱턴에 갔을 때, 부시 대통령 이하 많은 미국정부 고위인사의 질책을 받자, ‘동정과 사과’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2012년 9월에 그가 다시 자민당 총재로 출마하면서 고노담화를 대신할 "새로운 담화를 낼 필요가 있다. 자자손손에 불명예를 대물림할 수 없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총리로 취임한 뒤, 교과서 수정 등으로 위안부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아베 총리가 안보 특별법안을 강행 통과시킨 뒤, 약간 리버럴한 발언으로 여론조사의 지지도 회복 징조가 보이자, 미국의 압력으로 극우와 결별하고 위안부문제의 해결로 한·미·일 안보 태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고, 앞에서 인용한 ‘리테라’지가 보도했습니다.
 
국가안전보장 국장 야우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씨가 한국과의 교섭에 나서고, 내각관방 부장관보(副長官補) 가네하라 노부카쓰(兼原信克) 씨가 합의문안 작성을 담담했다고 ‘리테라’는 전했습니다.
 
일본 극우파로 SNS에 답글을 올리는 극렬분자를 일본어 줄인 말로 ‘네토우요(넷트 우익)’라 합니다. 이들이 올린 댓글 중에는 ‘사기꾼, 매국 아베, 일본에서 나가라’ ‘국적, 아베 당장 죽어라’ 등의 과격한 말도 들어 있다고 ‘리테라’는 보도했습니다. 반면 전통 언론의 주류인 신문과 방송은 대체적으로 양국 합의를 환영하였습니다.
 
60만 재일교포를 대표하는 ‘민단’은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합의에 대한 내부분열보다는 ‘대승적 견지에서’ 수용할 것을 본국 국민에 호소하였습니다. ‘민단’은 도쿄에서의 ‘혐한(嫌韓)’운동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합의로 앞으로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미국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운동을 전개해 온 단체에서는 이번 합의를 ‘모욕적’이라 표현하고, 일본의 전시 위안부 문제를 성토하는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대표 한 사람인 LA 거주 김영주(46) 씨가 말했다고, 영문지 코리아 타임스가 전했습니다.
 
양국 정부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둘러싼 묵계가 있었는지에 관한 궁금증이 많습니다. 이 의문을 양국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위안부 문제 해결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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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권 (124.XXX.XXX.180)
2004년 북한 위안부 리상옥 할머니 서울회견(한국일보 기사)

리할머니가 위한부로 끌려간 것은 열 일곱 살 나던 1943년.
고향인 황해도 신평군에서 다섯 식구가 단란하게 살던 중
어머니가 병으로 죽고,
아버지 마저 일본군에 끌려가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리할머니도 어쩔수 없이 남의 집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하루는 한 일본인이 자기와 함께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리할머니는 돈이 있으면 가족들을 다시 만날수있겠다 싶어 따라 나섰다.
"일본인을 따라 트럭에 올라타니 15명의 여성이 있었어요,
도중에 12명을 내려 놓은 뒤 3명을 태우고 밤새 산속을 달려
외딴곳 어느집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곳이 바로 위안소였지요"

리 할머니는 그곳에서 1년여 동안 지옥같은 성노예생활을 했다.
일본군인들이 떼로 몰려와 강제로 관계를 맺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카락을 몽땅 자르고 온몸을 때리며 심지어 담배불로 지지는 등의
잔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리할머니의 왼쪽 팔과 다리에는 아직도 그때 입은 흉터가 남아있다.
고통스런 나날이 이어졌다.


어느날 위안부였던 한 처녀가 일본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하는 것을 목겼했다.
머리 속에는 '이대로 있다가는 나도 저처럼 죽겠구나'하는 생각 뿐이었다.
리 할머니는 다른 처녀와 야밤에 탈출을 시도했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리할머니가 입은 상처는 결코치유되지 않았다.
"위안부생활 이후 남자를 상대하지 못해 여태껏 혼자 살았어요.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아들딸 낳고 편하게 잘 살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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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3 12:11:51
1 0
최석권 (124.XXX.XXX.180)
저는 위안부 소녀상 철거는 반대입니다.
그리고 위안부의 유네스코 전시역사기록물 등재 또한
이번 합의와 별개사항으로 진행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기록물 등재는 재발 방지를 위한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일본인들이 진정 사죄하고 과거의 참혹한 만행을 뉘우친다면
한국인으로부터 진정한 용서를 받을 때까지 자숙하고
참회를 해야 할 것입니다.
사죄하는 자가 이것 때문에 안하고, 저것 때문에 하고
하는 등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진정한 사죄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답변달기
2016-01-13 11:13:04
3 0
꼰남 (112.XXX.XXX.25)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각성 없이
남의 질타와 주선으로 이루어진 화해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화해한 걸로 하고
서로 존중하고 노력하는 게 능사일까요?
남의 눈, 외교를 위해서
치욕도 안으로만 삼켜야 하는 걸까요?
답변달기
2016-01-13 09:14:55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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