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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슈타트의 암염광과 후추
허찬국 2007년 10월 30일 (화) 10:43:14
지난 여름 오스트리아를 1주일가량 여행했습니다. 미국의 대학에 재학중인 딸 아이가 한 학기동안 파리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학기말에 맞추어 오스트리아에서 만나 이루어진 여행이었습니다. 미국 생활을 꽤 오래 했지만 캐나다나 멕시코도 못 가봤던 탓에 유럽은 무척 더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여행은 오스트리아 서북부 잘츠부르크에서 시작했는데 한마디로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곳의 조그만 공항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공항으로 명명된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8세기 중반 그곳에서 태어난 모차르트의 도시입니다. 또 반세기 전 할리우드 제작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전설적인 영화가 되다시피 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트랍일가(Trapp family)의 이야기와 음악도 많은 방문객을 끕니다. 유서도 깊지만 알프스 산맥의 북단 언저리에 위치해 도시 주변의 자연경관도 일품이었습니다.

동쪽에 위치한 비엔나로 가기 전에 기차로 할슈타트(Halsttat)라는 그림 같은 호숫가 휴양지에 들렀습니다. 알프스 산맥의 험산 준령에 둘러싸여 있는 곳인데, 실제로 할슈타트 경관은 오스트리아 관광 포스터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 마을 주위로는 1000m를 육박하는 산봉우리들이 이어져 있고 그 산 밑에 매장된 암염맥(巖鹽脈)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것이 지금도 그 지역의 주요한 산업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잘츠부르크라는 이름 자체가 ‘Salt'에서 유래된 지명이며 선사시대 때부터 그 곳에서 암염을 채취했던 유물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암염 역시 바다가 말라 생긴 소금입니다. 수억 년 전 지구표면의 활발한 지각활동으로 바다였던 곳이 솟아 내해가 생기고 그것이 마른 뒤 퇴적물이 쌓이며 암염층이 암반 깊숙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급경사를 오르내리는 전차를 타고 올라가 암염광을 구경했습니다. 과거에는 석탄 캐듯이 덩어리를 채취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물을 주입하여 액화시킨 후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파이프로 빼낸다고 합니다. 소금이 녹아 없어지면서 생긴 동굴이 그럴듯한 장관을 이루어 관광 상품으로도 개발되었습니다.

암염광을 둘러본 후 할슈타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야외 식탁에는 흔히 볼 수 있듯이 소금과 후추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내륙에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은 이 높은 지역까지 와서 원시적인 도구로 소금을 채취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후추는 거의 지구의 반대편인 인도와 동남아 일대에서 나는 향신료입니다.

따라서 유럽 내륙 사람들이 후추를 접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입니다. 유럽 사람들이 400여 년 전에 배를 타고 험한 바다를 건너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항해한 중요한 이유가 후추를 구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인체에 필수적인 소금과 달리 전적으로 음식 맛을 내는데 쓰이는 후추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기호식품 획득이 세계사를 바꾸는 계기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경제활동의 좋은 예입니다. 모든 경제활동의 근저에는 구체적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원하는 욕구가 존재합니다. 왜 그것을 원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으로 그 당시를 볼 수는 없지만 400년 전 잘츠부르크에서 인체에 필수적인 소금은 매우 싼 반면, 없어도 생존하는 데 지장이 없는 후추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데 물건이 매우 드물고 적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후추가 당시 사람들이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활발한 동서양의 상거래와 교류가 있었기에 500년이 지난 후 동방의 한 나라와 미 대륙에서 건너와 만난 부녀 나그네가 할슈타트 암염광 근처에 앉아 알프스 풍광을 음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불어로 수업을 듣느라 녹초가 된 딸아이는 아빠의 장광설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필자에게는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허찬국(許贊國):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및 경제연구본부 본부장. 1989년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Barbar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1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급준비은행 조사부와 연방지급준비제도 이사회(FRB) 국제부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국내에서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과 아주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과 금융감독원 거시금융감독포럼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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