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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어의 운명
김수종 2016년 01월 27일 (수) 04:31:36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시버(錫伯)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중국을 거의 3백년간 지배했던 청조(淸朝)의 뿌리는 만주족입니다. 오늘날 중국을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로 넓혀놓은 주인공이 만주족입니다. 서역의 사나운 유목 민족들과의 끊임없는 대결을 펼치면서 변방의 땅을 평정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과업이었습니다.
 
1764년 건륭제는 만주족의 일파인 시버(錫伯)족 팔기군 군사 수천 명을 소집하여 카자흐스탄 접경지역에 둔전병으로 파견했습니다. 이들은 가족과 마소를 이끌고 18개월이나 걸려 중앙아시아의 이리 강가 차부차얼(察布査爾) 지역에 병영을 설치했습니다. 모두들 지독한 향수병에 걸려 하루빨리 고향 만주로 돌아갈 날만 고대했습니다. 평정 작전이 끝나면 황제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손들은 이곳을 고향으로 생각하며 250년을 살았습니다. 한때 변방 유목민의 공격을 받아 떼죽음을 당해 인구가 1만여 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3만여 명이 넘습니다. 시버족은 중국 56개 민족의 하나이고, 그들이 사는 곳은 행정구역상 자치현(自治縣)이 되었습니다. 시버족은 샤머니즘과 조상을 숭배하는 종교적 전통, 활쏘기와 가무를 좋아하는 관습, 쌀밥과 김치 종류를 담가 먹는 식생활 전통을 그대로 간직했습니다.
 
시버족이 보유한 값진 문화적 유산의 하나가 만주어입니다. 시버족 자치현에서는 가족끼리 만주어를 쓰고, 초등학교에서 만주어를 가르칩니다. 격주간 만주어 신문도 발행합니다. 팔기군의 후손인 이들은 청조에 대한 충성심과 기마민족의 자존심이 강해서 주변이 카자흐족, 터키족, 타타르족, 몽고족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통혼을 별로 하지 않아 독자적 언어를 나름 잘 지켰습니다. 주변의 러시아어, 위구르어, 타타르어, 몽골어 등에서 명사(名詞)를 많이 빌려왔지만 고유한 문자와 언어구조를 유지했습니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시버족의 언어는 한국어, 카자흐어, 몽골어와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따라서 시버족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 음가의 다양성 덕택에 다른 나라의 말을 쉽게 발음할 수 있습니다. 소수민족이면서도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지도층에게는 이들의 언어능력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1940년대 젊은 시버족 청년들은 러시아어를 배우도록 북으로 보내졌고, 이들은 훗날 득세한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통역자로서 중국 지도부에 활용되었습니다.
 
만주어를 하는 시버족은 이제 보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광범하게 흩어진 청조의 문서를 판독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만주에는 약 1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만주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어에 동화되어 버렸고, 만주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사라졌습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만주 연구부 책임자는 동북 삼성 출신의 만주인이 아니라 바로 1970년대 베이징으로 불려온 시버족 출신 학자입니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만주어를 연구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청나라 문서를 해독하기 위해 서역의 구석에 사는 이 만주족 후손들에게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나 시버족이 사용하는 만주어의 운명도 비관적으로 보입니다. 시버족이 사는 차부차얼 자치현도 옛날의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서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만주어를 더 깊이 배울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글자가 사라지고 종국에는 말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한 학술 조사에 의하면 중국에는 현재 약 300종류의 언어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 중국어가 이들 언어를 잡아 삼키고 있어, 약 20개 언어는 사용자가 1,000명도 채 못 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만주어를 쓰는 시버족 3만 명은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만주어는 기가 막힌 소멸의 운명을 걷고 있습니다. 광대한 만주 벌판을 휘젓고 다녔던 만주족은 중원을 정복하고 대청제국을 세우고 3백년 왕조를 유지했습니다. 만주어는 청조의 공식 언어였습니다.
청 왕조가 망한 것은 1912년이니 고작 100년 남짓 된 시간에 세계를 호령하던 언어가 없어진 것입니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존재의 수단이라고 말하는 시버족 교사의 말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중국의 산업과 기술문명이 발전할수록 문화와 언어의 다양성은 파괴될 것이고 만주어의 소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 물론 다른 소수민족 언어도 없어질 것입니다.
 
만주어 이야기를 읽은 느낌은 복합적입니다. 슬픈 역사의 한 토막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한 언어의 흥망성쇠 이야기 같기도 하고, 세상만사 영속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교훈 같기도 했습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영어도 1,000년 전 과연 어떤 존재였는가를 생각하면, 앞으로 500년 후, 또는 1,000년 후 세상의 모든 언어들이 흥망성쇠의 길을 갈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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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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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권 (124.XXX.XXX.180)
한민족과 역사적으로 무한한 갈등을 겪었던 여진족의 후손 만주족,
그들이 사라지고 있다니 착잡합니다.
저는 거의 매일 아침 석촌호수에서 여진족 누르하치 아들 홍타이지에게
머리를 땅에박고 항복한 인조가 세운 삼전도비를 봅니다.
그들은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의 항복을 받아내고 명나라를 무너뜨렸지만
결국은 거대한 중국에 흡수되고 말과 글이 사라지는 운명이군요.
한민족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배신과 전쟁의 반복으로 역사를 만든 중국에 영원한 동맹은 없습니다.
북한이 혈맹이라는 중국에 가장 우려하는 대목입니다.
한민족의 통일과 강성은 이래서 더욱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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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 1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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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갑 (116.XXX.XXX.136)
저는 1986년 만주어를 1년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6개 반이었는데 학생은 저를 빼고 몽땅 북경에 사는 만족이었습니다. 6개 반의 강사는 모두 시버족이었고. 현재 시버족은 17.3만 명이고 신강 伊犁지역 차부차얼 시버족 자치현에 사는 시버족 인구는 3만명이 아니라 10만명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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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 11:38:56
0 0
diamond1516 (211.XXX.XXX.81)
만주족과 만주어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계시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차부차얼 시버족 자친현 인구는 10만명 넘지만
만주족은 3만명이라고 보도된 내용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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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00:30:40
0 0
꼰남 (112.XXX.XXX.25)
언어유전이로군요.
요즘 같은 외래어 남용이 우리 말 글의 운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행복한 한해 되세요>....
어느새 어법이 이렇게 영문법 쪽으로 기울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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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7 09:03:1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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