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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램의 웃음
양혜은 2016년 02월 01일 (월) 02:49:22

한 가지 고백을 하겠습니다. 저는 웃고 살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자취하며 지내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으로서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웃음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용돈을 마련하고 자잘한 생필품들을 구매할 수 있지만 웃음은 좀처럼 마련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취를 하며 소홀해진 끼니 덕분에 TV만 틀면 나오는 맛있는 밥으로 시선을 빼앗기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리운 것은 가족끼리 나누던 맛있는 웃음입니다. 배를 움켜쥐고 고개를 젖히는 박장대소도, 한숨으로 끝나버릴 실소도 아닌 미소를 띤 자연스러운 웃음이 그립습니다.
 
저를 비롯한 젊은이들에게는 웃을 일이 없습니다. 청년실업률 9.2%, 체감실업률 20%를 넘어선 취업난에 청년들의 웃음기는 사라졌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취업에 필요한 스펙, 계속되는 탈락의 고배에 취업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년이 많습니다. 15~29세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중은 64%에 달했고 성인 남녀 10명 중 8명은 ‘헬조선’을 떠나 이민을 갈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성인 남녀 1,655명을 대상으로 '이민 의향'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이민을 가고자 하는 이유는 삶의 여유를 위해, 근로조건이 열악해서, 소득불평등 문제가 심해서 등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웃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웃을 일 없는 세상에는 웃음이 넘치고 있습니다. 지하철 속의 스마트폰 사용자들만 해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피식피식 웃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어폰과 전자기기를 통해 웃음을 제공받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짤막한 메인영상을 시청하면서 혹은 개그맨들의 분장사진, 방송내용을 캡처한 사진을 보며 우리들은 열심히 웃음을 소모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미난 글이나 영상 밑에는 웃음기 가득한 댓글들이 넘쳐납니다. 참 행복한 세상입니다. 우울한 현실을 살면서도 손쉽게 ‘무한 웃음’을 제공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삭막한 사회상을 반영하듯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TV 속 가상세계는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은 젊은이들의 도피처이자 웃음을 갈망하는 청년들이 만들어낸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유행하는 말투를 쓰며 서로를 비방하는 개그를 좋아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자극적인 웃음 코드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타자를 깎아내리며 웃을 수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타인의 불행에 무뎌진, 경쟁우위를 독점하려는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TV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개그맨들이 만들어준 웃음이 가슴까지 와 닿은 적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5분이 지나면 기억에 남지도 않을 비방과 말장난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할 거리가 넘쳐나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피곤함에서 탈피하고자 예능 프로그램을 봅니다. 하지만 생각하면서 웃고 노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생각해봅니다.
 
웃음기 없는 대한민국의 아우라가 젊은이들의 활기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웃을 거리를 찾아 우리들은 인터넷 공간을 부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커다란 고시원이 우리를 정숙한 사람으로 만들고 상대평가에 따라 일직선의 줄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헬조선’과 ‘흙수저’를 자칭하며 한숨을 쉬고 냉소적인 대응으로 저항해서는 안 됩니다. 웃어야 합니다. 누군가 만들어낸 일방향적인 자극이 아닌 관계와 대화 속에서 생기는 웃음을 지켜야 합니다. 웃음은 영혼만큼이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암울한 현실에서야말로 당당하게 웃으며 저항하는 패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본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웃음소리가 생각날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그 무게를 잴 수 있다면 1그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웃음소리에 무게를 싣고 싶습니다. 허공으로 사라질 웃음이 아닌 오랜 추억으로 기억될 웃음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양혜은

한양대 국문학과 4학년

[출처] ###대학생칼럼 (비공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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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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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용 (59.XXX.XXX.230)
양혜은양 장하다 어린나이에 그렇게 의연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니.
거기다 이런 공공매체에 올리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탠ㄷ데...혜은양은 어론이이 될 기질이 있어보인다 분발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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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21:24:58
0 0
양혜은 (59.XXX.XXX.248)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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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16:50:36
0 0
차덕희 (121.XXX.XXX.179)
반듯한 가치관을 지닌 양혜은님이 새삼 귀하게 보여짐니다.
외길로 가는 시간 속에서 미래는 불투명하게 보일지라도 순간의 판단들이 모여 어떤 결과를 이룹니다.
순수함을 잊지 않고 더욱 성장하기를 바람니다.
신은 순수함을 무척 좋아하시며 기다려 주시기도 하지요.
매일 매일을 젊음의 특권인 순수함과 열정으로 잘 갈무리 하길 바람니다.응원의 미소를 짓게하니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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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07:10:11
0 0
양혜은 (59.XXX.XXX.248)
감사한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젊은이다운 순수와 열정으로 시련들을 이겨내겠습니다. 힘내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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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16: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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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25.XXX.XXX.239)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진정어린 단 1그램의 웃음도 쉽지 않은 세상이군요. 하지만 저는 양혜은님의 글을 읽으며 모처럼 대견하고 진실된 젊은이를 만나게 된 것에 미소를 크게 짓습니다. 부디 용기를 가지고 어려운 점들을 잘 헤쳐나가기 바랍니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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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06:45:41
1 0
양혜은 (59.XXX.XXX.248)
글에 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야말로 자유칼럼그룹 필진분들의 글을 읽으며 기성세대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밝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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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17: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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