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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의 운명
신아연 2016년 03월 22일 (화) 00:01:55

지인들과 만나 담소하는 중에 돈 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물질 소유 서열 상위10%가 국민 전체 소득의 45%를 독식한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지인 중 하나는 자기가 옆에서 본 어떤 부자는 100평 아파트에 살면서 밤이면 밤마다 룸살롱에서 5백만~천만 원을 술값과 접대비로 쓴다고 했습니다. 그쯤되면 ‘돈을 물 쓰듯’ 하는 게 아니라, ‘물을 돈 쓰듯’하는 사람일 텐데 한 끼 밥값으로 쳐서 그 정도를 쓸 수 있으려면 재산이 한 5천억 원쯤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옆 자리의 다른 지인이 거듭니다.
 
단순 계산하여 총 자산이 5억원인 사람이 5천 원 짜리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그보다 자산이 천 배 많은 사람이 한 끼에 5백 만 원 짜리 밥을 먹는다 한들 ‘분수’에 어긋나는 짓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돈도 없는 주제에 ‘5천 원 짜리씩이나’ 먹는 것이야말로 분수 모르는 짓이자 경우에 따라 ‘호화사치’를 누리는 일이 될 겁니다. 또 다른 예로 보통 사람이 형편보다 조금 무리해서 20만 원 짜리 핸드백을 샀다면 5천 억 재산가 역시 천 배에 해당하는 2억원 짜리 가방을 ‘큰 맘 먹고’ 샀다고 해서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니라는 거지요. 분수에 넘치기로 치자면 둘 다 비난을 받거나 아님 둘 다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겁니다. 
 
마치 ‘제논의 역설’을 떠올리게 하는 궤변 같지만 그렇다고 돈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의도나, 분배의 불균형을 개탄하며 사회 정의를 부르짖고자 모인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국의 천박한 부자들의 실상과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돈이 많다고 특별히 행복한 것도 아닌 것이, 예로 든 그 부자는 돈문제로 인해 일생 두통에 시달린 탓에 진통제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고, 술과 여자 외에는 안식을 취할 곳이 없다고 하니까요. 왜냐하면 자기만 보면 죄다 돈을 뜯어가려 하니 주변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고, 본인 스스로도 다가오는 사람마다 돈을 노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 소리가 제게는 마치 중증 비만에 걸린 사람, 너무나 뚱뚱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럼에도 온종일 오직 게걸스레 먹을 궁리만 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즉, ‘돈만 있는사람’이란, 마치 비정상적 몸집 비대로 대사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정상적인 인간관계나 평범한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매우 불행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공평한 거지요.”
 
모임 자리의 마지막 말을 귓등에 얹고, 지인의 계산법대로라면 ‘분수에 넘치게 사치스러운’ 4.5평 내 집(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늘 곁에 두고 읽는 동양 철학자 박희채의 <장자의 생명적 사유>를 떠들어 보며 장자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부모인들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바랐겠는가?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줌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어줌이 없으니 하늘과 땅인들 어찌 사사로이 나를 가난하게 하겠는가? 그래서 나를 이렇게 만든 존재를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내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운명일 것이다. “
 
장자는 빈곤의 원인을 사회적 관계에서 찾으면서도 일종의 명(命)으로 보았던가 봅니다. 속된 말로 장자 자신도 ‘찢어지게’ 곤궁한 처지에서 내린 결론이니만큼 그 말이 제게는 ‘죽고 사는 것이 인간의 소관이 아니듯 빈곤과 부귀도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로 들립니다. 장자의 말대로 지금 내가 왜 이렇게 궁핍에 처하게 되었는지 까닭도 모른 채 그러니까 그렇다라고 할 밖에요. 같은 말을 하룻밤에 천만 원을 쓰는 사람에게 묻는다 해도 자기가 왜 그렇게 돈이 많은지 잘 모르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많으니까 많다고 하겠지요.
 
남보다 딱히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지만 어떤 사람은 부자로 살고 어떤 사람은 일생이 가난합니다. 흔히 부자라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둥, 가난하다고 행복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말 따위가 제게는 그저 허허롭게 들립니다. 그런 말은 여전히 부(富)와 천(賤)이 인간의 어떤 할 탓에 있다는 인식, 말하자면 ‘명’이 아닌 인간의 영역이라는 사고 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마음의 반영이니까요. 현실에는 행복한 부자도 있고 안 행복한 부자도 있고, 행복한 빈자도 있고 안 행복한 빈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가지고 못 가진 것에 행복이라는 명패를 갖다 붙인 자체가 그릇됐다는 것이 요즘 드는 제 생각입니다. 행복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라고.
 
장자는 오늘도 저를 다독거리며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운명일 거라고, 가난하니까 가난한 거라고, 그러니 그냥 순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속박과 갈등과 질곡과 근심을 벗고 자유로워지라고. 그저 물 흘러가듯 살며 안시처순(安時處順)하라고.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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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 (211.XXX.XXX.199)
모두가 잘 산다고 나라에서는 떠드는데 왜 노숙인은 항상있는지, 단지 분배가 되지않아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않았어요. <"땅에는 언제나 가난한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신명기 15:11> 세상 끝날까지도 가난한자가 있을수밖에없다는것과 조금 더 넉넉한자가 베풀어야하다는 성경적 근거로 받아들입니다. 정신적인문제이든 육신적인 문제이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수없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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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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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 (211.XXX.XXX.141)
행간에 스미는 아스라한 인간적 슬픔이 느껴집니다. 부자로 사는 것과 가난하게 사는 것의 차이는 행복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부자로 살면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린 시절 농촌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기억은 있지만 불행하게 살았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오히려 가난했던 그때가 부자인 지금보다 더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에는 문제를 인간적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요즈음은 문제를 물질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합니다. 모든 가치의 기준을 물질에 두는 것 같아 가끔은 두렵기도 합니다. 물질을 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목숨까지도 가볍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 작가님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큰 것은 당연하겠지요. 누구 탓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라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평하고 불만을 갖는 것보다는 자신의 결핍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 남이 위로하는 어떤 말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 아닌가 합니다. 가난으로 인한 불편함에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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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22: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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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61.XXX.XXX.177)
모처럼 들렸는데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너무 짠하네요.
부디 용기를 잃지 말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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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18: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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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bluedot (120.XXX.XXX.24)
모든 것은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혼자만 놓고 보자면 부자와 가난이란 기준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대사회가 상대적 빈곤을 느끼도록 계속 비교질하게 시키는 것이 문제 같습니다.
저들 속에서 비교하지 말고 걸어나와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영성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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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17: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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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121.XXX.XXX.50)
가난도 운명, 생명도 운명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단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이 운명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지요.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살까, 운명에? 그런다 한들 편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난, 불편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맞아요. 그렇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잠 23 : 4) 다만 가난해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추신 : 신아연 님, 제 핸폰의 정보가 날아갔습니다. 연락 한 번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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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13:3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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