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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쥐도 자연친화적 환경 탓?
신아연 2007년 11월 08일 (목) 03:33:13

깜깜한 빈집에 혼자 돌아와 스위치를 더듬어 어둠을 밀어낸 순간,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검은 물체가 발밑으로 지나가는 섬뜩함을 경험해 보셨는지요.
그것의 정체는 결국 ‘하찮은 생쥐’ 에 불과했지만, 그 날 저는 어둠과 버무려진 오소소한 공포와 그 자체의 불결감과, 어찌 해 볼 수 없는 무력감에 마치 미로에 갇힌 듯 전신의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싶었습니다. 조금 지나서야 새앙쥐 한마리에 그렇게까지 휘둘린 자신의 열박한 ‘감정 오바’의 롤러 코스터에서 하차하게 되면서 현실감각이 되돌아 왔습니다.

지난 달 ‘새앙쥐와의 조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밤 집에 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나날의 생활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항상 발밑을 예의 주시하느라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도 의자에 당그라니 올라앉았고 혹시 침대에서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될까 두려워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쥐를 잡을 엄두를 내기는커녕 외출에서 돌아오면 그저 마주치지나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현관에서부터 일부러 발을 쾅쾅 구르고 헛기침을 하면서 이제 그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며칠 간은 아무 기척이 없는 듯도 하여 혹시 제풀에 사라졌나 싶기도 했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녁밥을 짓고 있는데 불쑥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놀라 내지르는 제 소리에 녀석은 더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났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기로 한 평화조약 (?)을 깬 녀석을 더는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각오로 쥐약을 놓은 지가 열흘 쯤 전이었는데, 그 날 이후 아직까지는 녀석과 마주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보니 쥐가 드나들 정도로 제 집이 지저분할 것으로 상상 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집에 쥐가 있는 것은 보통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호주 가정 모두가 불결하다고 생각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연친화적 환경’ 때문이라고 하면 적절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호주에는 쥐 뿐만 아니라 개미도 많고, 새도 많고, 다람쥐도 많고, 캥거루도 많고 , 뱀과 악어도 많습니다. 물론 그 밖에 다른 동물도 많지만, 지금 열거한 것들은 제가 이번에 곤혹을 치룬 쥐만큼이나 사람과 연(?)을 맺는 일을 일상사로 벌입니다.
물놀이를 하다 악어의 습격을 받는 일이 익사사고 만큼 흔하게 보도되고 , 차도로 뛰어들거나 집안마당까지 진출하는 캥거루로 인해 교통사고나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달리는 차량에 깔리거나 부딪혀 죽은 새들의 잔해로 주택가 도로는 지저분합니다.

그런가 하면 산란기를 맞은 새들이 알을 보호하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죄없는 이마나 뒤통수를 쪼아대기도 하고, 흰개미로 인해 나무 울타리 몇 조각 쯤은 며칠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가옥의 골격을 갉아 먹히기 시작하면 집 전체가 풀썩 주저앉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마구잡이로 잡거나 없앨 수는 없습니다. 동물 보호법에 따라 나름의 분류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인데 그러다 보면 인간 쪽에서 ‘골탕’을 먹거나 아니면 ‘양보’를 해야 하는 경우가 거의 반반입니다.

몇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밤만 되면 천정에서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나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나 쥐의 소행이려니 하고 처리업체에 의뢰를 했습니다. 진단 결과 쥐의 소행이라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만약 야생 다람쥐 종류가 침입한 경우라면 함부로 잡아서는 안되며, 바깥으로 유도한 후 반드시 살려서 내 보내야 하는 것이 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무턱대고 천정에 쥐약이나 쥐덫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내린 처방이래야 지붕 높이까지 웃자란 사방의 나뭇가지를 잘라주어 야생 다람쥐가 더 이상은 지붕으로 기어올라 천정과의 틈으로 침입해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예방 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연 친화적 환경에서 오는 일상 중의 ‘성가심’ 을 지속적으로 겪다 보면 사람이 당연 우선이라는 생각도 점차 들지 않게 됩니다.

무소불위의 착각에 빠져 사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계랄 지, 단순하게는 사람도 동물처럼 자연의 일부라는 자각이랄 지, 그런 것들이 일상 속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며칠 깊은 연을 맺었던 새앙쥐로 인해 거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와 인간 존재의 낮아짐을 깨닫는 성찰의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그다지 과장은 아닌 듯 합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블로그 http://biog.naver.com/ayoun63 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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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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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co (211.XXX.XXX.129)
나름대로 재미가 있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곤혹을 치룬--->곤욕을 치른
경계랄 지...자각이랄 지--->경계랄지, 자각이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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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8 17: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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