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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百想)탄생 100주년과 한국일보
임종건 2016년 04월 27일 (수) 01:56:20

오는 5월 2일은 한국 언론의 거목으로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을 창업한 백상(百想) 장기영(張基榮)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입니다. 4월 28일 서울경제신문 주최 기념 세미나에서는 언론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체육 등 다방면에서 큰 족적을 남긴 백상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생애가 우리 시대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깁니다.

백상은 39년 전인 1977년 4월11일 61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필자가 1974년 1월 4일 견습 29기 기자로 한국일보사에 입사한 지 3년 되던 기자 초년병 시절이었습니다. 입사 후 상견례를 빼곤 백상을 직접 대면할 기회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백상에 대한 전설 같은 일화들은 그의 사후 기록들과 선배들로부터 전해들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에겐 백상으로부터 듣고 싶은 답변이 있었습니다. 입사 당시 편집국으로 가는 계단 벽에 백상의 어록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였는데 어느 날 그 자리에 ‘신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라는 정반대의 어록이 걸린 것입니다.

저는 이 극적인 반전의 배경이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전자는 신문과 권력 간의 관계, 후자는 신문과 독자와의 관계를 상정한 말이 아닐까하는 추측만 했을 뿐입니다. 백상은 저에게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고 홀연히 세상을 떴습니다. 저 스스로 답변을 찾아야 할 숙제지만 아직껏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첫번째 꼽을 것은 치열한 새로움의 추구로 일관된 삶입니다. 반세기도 전에 그가 생각했던 것들은 대부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제도가 되었습니다. 1954년 6월9일의 한국일보 창간은 많은 신문 가운데 하나가 더 늘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존 신문들과는 다른 신문의 탄생이었습니다.

백상은 ‘한국일보는 상업지’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의 모든 신문들은 계몽지를 표방했습니다. 고담준론의 논평이 언론의 본령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 때에 유익하고 재미있는 기사로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신문, 그래서 광고와 판매를 통해 영업적으로 수지를 맞추는 신문을 지향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신문의 보편적인 존재양식입니다.

둘째는 1960년 8월1일 서울경제신문의 창간입니다. 경제지의 개념이 없던 시대에 나라 발전이 기업옹호에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예견이라도 했듯이 창간 직후 박정희 정부의 개발연대가 시작됨으로써 서울경제신문은 그 후 20년 동안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을 했습니다.

   

셋째는 수습기자제도의 도입입니다. 당시만 해도 신문사들은 도제식의 알음알음으로 기자를 채용했습니다. 수습기자제도는 기자 채용에 자유경쟁원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유능한 대학생들이 구름처럼 지원했습니다. 젊은 기자들의 열정과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제작된 젊은 신문 한국일보였습니다. 가장 잘 팔리는 신문이 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한국일보는 ‘기자사관학교’라는 별칭까지 얻게 됐습니다.

넷째는 학력철폐를 꼽을 수 있습니다. 견습기자 지원자격을 고졸 이상으로 했습니다. 선린상업 졸업이 최종학력이었던 백상은 박사 부럽지 않은 학식을 갖추었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 중에도 자신처럼 유능한 인재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한국일보는 백상 사후 이 제도를 바꿔 지원자격을 다른 신문과 같이 대졸자로 했습니다. 오늘날 학력차별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한국일보가 그분의 뜻을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다섯째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입니다. 자매지 코리아타임스 부국장까지 지내다 퇴직한 분 가운데 선천적 왜소증을 타고난 분이 있었습니다.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분이었는데 서울대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그분을 발견하고 특채했습니다.

여섯째는 여성에 대한 배려입니다. 필자가 입사한 이듬해 197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였는데 백상은 이 해 견습기자로 여기자만 뽑도록 했습니다. 6명의 여기자를 ‘무더기’ 채용한 것도 언론사상 처음이었습니다. 훗날 장명수 칼럼으로 유명한 여기자 장명수 씨가 한국일보 사장이 됐는데, 최초의 여성 신문사 사장이 한국일보에서 나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일곱째는 한국일보의 제호를 독립신문처럼 한글로 한 것입니다. 한문이 대세를 이루던 그 시절 한글 제호는 한글 전용시대를 미리 내다본 선견지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보편화한 신문 제호의 가로쓰기 또한 ‘서울經濟新聞’이 최초입니다. 창간 때는 세로였다가 1년 뒤부터 가로 제호로 바꿨습니다.

이상은 필자가 백상에 대해 개인적으로 품어왔던 단상들입니다.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으나 백상의 그런 착상이 신선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1950~60년대에 이미 반세기 후의 한국의 미래상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신문을 경영한 백상이었습니다.

백상이 이 시대에 주는 교훈도 있습니다. 사람을 아끼는 정신과 소통의 리더십입니다. 낙종한 기자에게 ‘월급도둑’이라고 호통을 쳤지만, 한국일보를 떠나는 사원에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언제든지 오라’였습니다.

매주 화요일 편집국에서 기자들과 신문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던 ‘화요회’는 요즘 말하는 소통의 리더십의 전형이자, 한국일보 활력의 원천이었습니다. 사람 자르기를 능사로 여기는 기업풍토나, 불통의 리더십이 국민의 심판을 받는 정치풍토에도 백상정신은 유효합니다.

한국일보는 파란곡절을 거쳐 새로운 주인을 맞았습니다. 백상정신은 한국일보의 주인이 누구냐에 관계없이 계승돼야 할 정신이라고 봅니다. 한국일보와 백상 탄생 100주년은 나로하여금 염량(炎凉)과 협량(狹量)의 세태를 생각하게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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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견 (222.XXX.XXX.109)
임종건 칼럼에서도 비쳤듯이 왕년의 언론사관학교출신들은 '왕초'를 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1968년 푸에불로 사건때 깜빡 낙종했을때, 왕초의 마이크소리..'편집국장! 저 봉두완일놈, 당장 파면이라고
써 붙여! 의원면직이라면 어데가서 또 신문 다 망칠 놈이니까...!

앞에 앉았던 봉두완, 큰소리로 '누구 마음대로!?"

왕초" 저것이, 저것이....' 잠시후 '그 다음 뭐야...오늘 일면 톱 기사 꺼리는..."

편집국 '와...!' 장내 폭소'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국회에서 의사진행하듯이 지나가고...

그게 왕초 장기영기자, 그게 당시의 한국일보...

이상.

봉두완 외신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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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7 09:42:53
2 0
조병세 (149.XXX.XXX.166)
'시대의 선구자' 백상 장기영선생이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을 창업하고 "깊고 열린 생각(百想)"과 남다른 의지로 주요 언론사로 발전시켜, 국가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신데 대해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백상선생 탄생100주년기념행사가 모두 성황리에 개최되길 빕니다.

임종건 사장님, 오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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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7 09:26:34
2 0
꼰남 (112.XXX.XXX.25)
백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일보의 심기일전을 빌겠습니다.
저는 <한국일보 주최 미쓰코리아 대회>와 <주간한국>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일보 하면 문화 예술 쪽 기사 비중과 행사가 많았던 기억도 잇고요.
답변달기
2016-04-27 09:00:15
1 0
장영채 (221.XXX.XXX.244)
벌써...39년 백상의 정신이 지금도 통합니다.
답변달기
2016-04-27 07:40:27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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