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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세례자 요한 신부님
박상도 2016년 05월 04일 (수) 02:23:58

‘저 신부님 꽤 까칠하신데?’ 첫 대면 때의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당신이 계셨던 성당과 지금 부임하신 성당을 가감없이 비교하는 것을 보며, 지나친 솔직함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필자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 중에는 흔히 괴짜라고 불리는 분들도 종종 계십니다만, “전에 있던 성당은 이러저러해서 참 좋았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네요.”라는 말씀은 자칫 우열을 가리는 듯하게 비칠 수 있고 또, 현 부임지의 신자들에게 다소 섭섭함 마음이 들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지극히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그다지 잘 맞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부님의 성격이 까칠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부님을 차츰 알아가게 되면서 선입견은 역시 틀린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솔직함은 그 속에 아무런 의도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분에 대한 약간의 부정적인 생각이 말끔히 해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바라면서 하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줍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시종일관 유지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법률에서 말하는 ‘선의(善意)’와 ‘악의(惡意)’의 개념은 상식적인 해석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법률에서 선의는 좋은 뜻, 좋은 의도가 아니며 악의 역시 나쁜 뜻, 나쁜 의도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법률에서 선의란 어떤 사정이나,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고 악의란 어떤 사정과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가 “우리 반은 철수가 가장 큰 문제야.”라고 얘기하거나, 영희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번에 영희가 교내 사생대회에서 그림을 정말 잘 그렸는데, 아깝게 2등이 되어서 상을 못 받았어요.”라고 얘기하는 경우 선의로 해석할 경우와 악의로 해석할 경우 엄청난 차이가 생깁니다. 악의로 해석하게 되면 촌지를 바라는 것이 되고 선의로 해석하면 진심으로 철수와 영희를 걱정하는 것이 됩니다.

목 5동 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이영춘 신부님은 근처 직장인들의 사목활동에도 적극적이었는데 필자가 근무하는 SBS는 당신이 관할하는 구역이었습니다. 매달 한 차례 방송사로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였는데,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신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루는 필자가 속해 있는 직장의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신부님이 저녁을 준비했으니 성당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몇몇 동료 선후배와 성당으로 향하면서 신부님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위암이라고 하지?”
“꽤 진행됐다고 하던데,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고…”
필자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님은 그 동안 단한 번도 당신이 투병중인 것을 내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도 아파 보이지 않았으며, 단한 번도 당신의 처지를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은 빠스카 의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빠스카 축제라고도 하는 이 의식은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해서 새로운 땅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행하는 미사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김밥과 바게트 빵과 포도주로 저녁을 함께 하며 새로운 형태의 미사를 신부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올리고 있는 도중, 신부님께서 
“지금부터 세족례를 시작하겠습니다. 원하시는 분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장내가 술렁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12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데서 시작된 세족례. 2009년에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 문정현 신부께서 세족례를 해줬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고 교황께서 세족례 의식을 행하셨다는 뉴스를 접한 적도 있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당황스러워하는 가운데 6명 정도가 세족례 의식에 참여해 주었습니다. 필자에게도 주변에서 권유를 했으나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여긴 것이 맞을 겁니다.

모두들 어색하게 자신의 발을 신부님께 맡겼습니다. 그날 세족례를 할 것이라는 귀띔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며칠 동안 발을 안 씻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무좀에 걸린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발 냄새가 유난히 많이 나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신부님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매우 정성껏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신부님의 세족례를 보면서 필자는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영춘 신부님을 기리는 글을 쓰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마 이 사진은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진일 겁니다. 사진에서 세족례를 받는 사람들은 나이 오십을 넘긴 필자의 선배들입니다. 한때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방송사의 에이스였던 분들이었지만 이제는 직장에서는 아재개그나 하고, 집에서는 서서히 찬밥 신세가 되가는 힘없는 중년들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백옥처럼 깨끗하여 해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기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는 정의로움도 어느새 사라져 버린 나이입니다. 어쩌다 친구를 만나면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소주 한 잔에 수십 년 직장생활 동안 위 아래로 치이며 살아 온, 상처 받은 자신의 영혼을 달래며 사는, 그저 그런 배 나온 중년 남자들입니다. 신부님의 눈에는 이분들이 가엾게 보였을 것이고 세족례를 통해 이분들이 당신의 뜻에 따라, 가슴에 남은 사랑의 불씨를 지펴서 세상을 따뜻하게 해주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세족례 사진을 본다면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칙칙함일 겁니다. 광고 이론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3B 즉, beauty(미인), baby(아기), beast(동물)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50대 중년 남성을, 50대 신부님이 발을 씻겨주는 모습은 직관적으로 봤을 때 전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신부님의 건강 상태와 신부님께 발을 맡긴 사람들을 잘 알고 있는 필자에는 너무나 소중한 사진입니다. 필자가 평생 간직하는 최고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 사진입니다. 신부님의 세족례를 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의 영혼도 함께 말끔하게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드리고 다음 날 십자가를 지셨듯이 이영춘 신부님은 그날 세족례를 하고 나서 몇 달 후인 2012년 2월 3일에 선종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성경에 기록된 세족례와 관련된 대화입니다.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 비전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 서문엔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다 가진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나누는 데 인색하기 때문이고 자신을 낮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임기는 1년9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통계를 보면 절반 가까이가 초선입니다. 즉, 절반은 4년짜리 시한부라는 얘기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을 한없이 낮춰 미천한 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신 이영춘 세례자 요한 신부님의 희생과 사랑을, 이분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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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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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 (223.XXX.XXX.65)
신분니의 말씀처럼 실천하면 세상은 아름다울것 같아요.
아름답고 멋진 계절에 태어나신 박아나운서님 생일축하 드림니다.
새벽뉴스 들으니 반가웠습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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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10:21:15
2 0
CosMos (175.XXX.XXX.33)
좋은 글로 이곳에서 뵐 수 있으니 얾마나 감사한지요~ 무뎌지는 마음들을 다시 일캐워 주시니 늘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구요~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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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06:52:06
0 0
이레네 (175.XXX.XXX.156)
샬롬~
축복된 생일날 아침 일찍 일상을 시작하셨네요.
그렇게 고운 마음을 그분께서 더 기뻐하고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행복한 하루 지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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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05:10:40
0 0
아메리카노 (175.XXX.XXX.199)
칼럼은 여러분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쓰시는거군요~🌿
신부님이 아가페사랑을 실천하고 천국으로 돌아가셨듯이 새정치인들이 그렇게 봉사한다면 이땅의 미래가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만은 않으리라 봅니다.
가정의 달이라 행사가 많을텐데 복된 하루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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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6 14:54:58
0 0
이레네 (175.XXX.XXX.156)
샬롬~
내심 이번 주쯤이려니 새 칼럼 기다렸는데
저희집 행운목 꽃대 발견한 첫선물?
ㅎㅎ 반갑습니다.
가톨릭 신자에게도 화석처럼
형식적인 의식일뿐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세족례의 의미와 함께
저를 포함해 오늘을 사는 이들 모두에게
은근한 독려의 말씀 전해주시네요.
살아가는 동안 가슴 밑바닥에 붙어 있을 ♡의 불씨들
나눔으로 화려한 불꽃 피우길 저도 청합니다.

미리 월욜의 생일 축하드립니다.
언제나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하지요.~.~♡
한밤 홈피와 더불어 이곳도 사랑방이 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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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 12:57:53
0 0
CosMos (122.XXX.XXX.39)
나누는 삶을 살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천사처럼 고운 맘 가지신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러기에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것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박아나운서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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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23:34:59
0 0
홍태식 (123.XXX.XXX.38)
박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여 늘 감사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일전에 외람되게 제 의견을 한 번 전해 드린 바도 있습니다만, 고맙게도 선생께서 흔쾌히 말씀을 수용해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어휘 문제를 제안해 볼까 해서 글을 올립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그 본래의 뜻과는 전연 다른 뜻으로 쓰이면서도 언중이 그 오류를 의식하지 못하는 말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 하나의 예가 '상큼하다'는 말이지요. 사전을 보시면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맑은 향기를 맡을 때의 그 정서적 반응과 같은 감각적 상태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고 있지만 본래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상큼'이 부사로 쓰일 때는 발을 가볍게 들어올린다는 의미가 있어 경쾌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상큼하다는 아니라고 봅니다.그런데 이제 대부분의 언중들이 이 말을 깔끔하고 맑고 향긋하고 말끔하다는 뜻으로 쓰고 있어 어느 개인의 힘으로는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어는 언어대중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큰 흐름은 어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뭔가 석연치 못한 점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까칠하다'는 말 때문입니다.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몸이 야위어 살갗이 매우 거칠고 기름끼가 없다'인데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상큼하다처럼 감각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말로 그 뜻이 전이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까도남'에서처럼 '까'는 모가 나고 뭔가 매듭이 있는 것 같아 불편한 느낌을 주는 성격, 그러니까 어떤 대상에게서 우리가 받는 껄끄러운 느낌을 의미하는 말로 뜻이 바뀌어 쓰이고 있다는 것인데요, 물론 한 어휘의 뜻이 본래의 뜻 안에서만 분화되어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 함의가 본의의 범위 안에 있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니까 '거칠고 기름끼가 없는' 메마른 성격으로 확장되어 쓰일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좀 비약이 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박 선생님과 같은 분의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뜻으로 몇 자 글월 올렸습니다. 역시 이 말도 '상큼하다'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아 이런 논의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또 제 무지의 소치일 수도 있으니 제 말씀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박 선생님의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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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17:15:42
0 0
오솔길 (114.XXX.XXX.38)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연휴에도 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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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14:58:34
0 0
박상도 (222.XXX.XXX.250)
감사합니다. 선배님
건강하시지요?
저는 연휴 중 일요일에 근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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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15:39:22
0 0
김승재 (115.XXX.XXX.106)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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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13:31:44
0 0
YK (121.XXX.XXX.219)
신부님은 예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듯 ...

묵은 정치인 특히 새내기의원, 사회,가정등 곳곳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희생하는 자가 있다면 점점 발전하는 길이 열리고 행복감도 증가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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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11:44:35
0 0
꼰남 (112.XXX.XXX.25)
지나친 욕심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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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4 09:47:2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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