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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나무 (장미과)
2016년 05월04일 (수) / 박대문
 
 
제주의 ‘한라생태숲’에서 만난 왕벚나무입니다.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왕벚나무를 심는 등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왕벚나무가 우리나라에 많이 심어졌고
벚꽃축제로 유명한 워싱턴 DC의 왕벚나무 또한 일본이 기증한 것이어서
대부분 사람이 왕벚나무가 일본 원산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순간에 피었다가 꽃비 내리듯 한꺼번에 지고 마는 왕벚꽃,
순간적으로 지는 아름다움으로 주군을 위해 목숨 바쳐 산화(散華)하는
일본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성을 지닌 일본의 나라꽃이라 해서
해방 후 가로수와 공원에 있는 왕벚나무를 베어내는 통에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일본인이 벚꽃을 좋아한 것은 사실이나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16개 꽃잎의 국화(菊花) 무늬 문장이 있을 뿐 일본은 나라꽃이 없습니다.
그리고 왕벚나무는 한라산과 해남 두륜산에 자생지가 있는 우리 꽃나무입니다.

한때 일본 꽃나무라 우기던 일본에서는 전국에 자생지를 찾아 헤맸으나
지금까지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가 왕벚나무의 원산지라는 근거들은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가 1908년 4월 15일 제주 관음사 인근에서
최초 채취한 자생 왕벚나무 표본을 전해 받은 쾨네 박사는
1912년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을 처음 확인했으며
1932년에는 일본 교토대의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 박사가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을 재확인한 바가 있었습니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산림청에서 왕벚나무 DNA 지문 분석을 수행한 결과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고,
2014년 11월 우리 학자가 ‘미국 식물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제주 왕벚나무가 올벚나무를 모계로,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자연 잡종으로 탄생했음을 핵 유전자와 엽록체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고 합니다.

어찌어찌해서 일본에 건너갔다가 고국에 되돌아왔지만
일본 나라꽃이라 하여 수난을 당하고 있는 왕벚나무,
폭죽처럼 화사하게 꽃을 피워 올렸다가 밤새 비바람에 지고 마는
여의도 왕벚나무 꽃길을 걷다 보면
조선시대 정묘, 병자호란 때 나라가 힘이 없어 청나라에 끌려갔다 되돌아왔지만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갖은 박해 속에 살다간 환향녀(還鄕女)가 생각납니다.

지워진 운명이라 왕벚나무는 해마다 화사하게 꽃을 피우지만
뿌리 깊은 슬픔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설움에 겨운 꽃잎은 지우고 싶은 슬픔의 덩어리인 양 시커먼 포장도로를
소나기 같은 꽃비 되어 마지막 한 잎까지 내리고 쌓여 덮고 덮지만
바래고 찢긴 초라한 꽃 이파리는 비에 젖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무정한 포장도로는 시커먼 모습 그대로 남는 여의도 왕벚나무 꽃길에서
환향녀 같은 왕벚나무의 설움을 되새겨 봅니다.

(2016. 4. 10 제주 한라생태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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