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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부터
방석순 2016년 05월 30일 (월) 02:34:08

서울 서대문구의 안산(鞍山) 남쪽 기슭 북아현동은 한때 서울에서도 보기 드물게 아늑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주택가였다고 합니다. 꼭 고급주택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파른 계단 위에는 허름한 서민주택도 적지 않아 더욱 인정이 풍기는 마을이었답니다. 적잖은 시비 끝에 지금은 한쪽에선 주택들이 헐리고 다른 쪽에선 고층 아파트들이 올라가느라 북새통입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이 마을에 초등학교서부터 남녀 중고등학교에 대학교까지 뻬곡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하철 아현역에서 북아현동 삼거리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길엔 그래서 늘 젊고 싱싱한 기운이 감도는 듯합니다. 등하교 시간엔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환한 얼굴, 밝은 목소리로 활기가 넘칩니다.
 
한 가지 불편이라면 왕복 2차선의 불안한 도로 사정입니다. 인도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차도 사람도 지나다니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좁은 길에 잠시 짐을 싣고 내리느라 차 한 대라도 정차해 있으며 금세 밀려드는 차들로 긴 줄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좁은 길을 정규적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 기사들에겐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할 갓 같습니다.
 
오전 10시 전후, 중고등 학생들이 이미 교실에 들어갔을 때쯤엔 주로 대학생들이 마을버스를 이용합니다. 지하철역 바로 위 ‘능안로입구’라고 표시된 마을버스 정류장엔 늘 도착한 차례대로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의식 있는 대학생들이라 더욱 질서정연한 듯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버스가 도착하는 순간 이 줄은 마치 고무줄 끊기듯 흐트러지고 맙니다. 앞쪽 몇 사람은 줄을 따라 앞문으로 오르지만 중간 이후에 섰던 사람들은 태연하게 뒷문으로 올라탑니다. 처음 그런 일을 겪을 때는 은근히 불쾌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 때문에 줄을 만들어 섰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차 안이 크게 붐비는 것도 아닙니다. 뒤쪽으로는 늘 빈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 번 같은 상황에 부딪히며 차차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문은 좁아서 차에 오르는 데 시간이 많이 지체됩니다. 그에 비해 뒷문은 넓어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차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리다툼이 아니라 비좁고 복잡한 길에서 탑승 시간을 줄이려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버스 기사도 굳이 뒷문 승차를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시간 절약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니까요. 다만 버스의 뒷문 한복판에 붙여놓은 ‘뒷문 승차 금지’라는 빨간 글씨가 참 우습게 보입니다.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를 이용할 때 앞문 승차, 뒷문 하차는 하나의 사회적 약속입니다. 누군가의 자유를 구속하려는 게 아니라 모두의 편리를 위해서 그렇게 정해 둔 것입니다. 질서가 곧 효율이요 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장 눈앞의 작은 편리를 좇아 융통성을 앞세우다 보니 그 약속이 한순간에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원칙을 지킬 것이냐, 융통성을 발휘할 것이냐. 어느 쪽이 언제든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쩔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원칙은 지키는 게 옳습니다. 작은 원칙 하나를 가볍게 여기고 깨다 보면 점차 큰 원칙도 쉽게 범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약속 하나를 제대로 지키지 않다 보면 더 큰 약속도 우습게 여기고 쉽게 어길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무질서와 혼란이 바로 그렇게 잉태된 것일 겁니다.
 
자라는 청소년, 젊은이들이 그런 위험을 깨달아 조금 지체되더라도 끝까지 차례를 지키고 질서를 지킨다면 얼마나 대견해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북아현동에는 예전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가 세 살에 숨진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무덤 의령원(懿寧園)이 있었습니다. 의령원은 애기능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 아직도 ‘능(陵)안로(路’)‘라는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의소세손은 정조의 친형이 됩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와 세자빈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첫 손자를 얻자 곧바로 세손으로 봉해 큰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세손은 어려서 죽고 사도세자 역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영조는 결국 두 번째 손자 정조에게 왕위를 넘겨주게 됩니다.
의령원은 지금 고양시 원당의 서삼릉(西三陵) 경내로 옮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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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상 (124.XXX.XXX.188)
좋은 말씀입니다. 고견이 사회적 운동으로 번져, 원칙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일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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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1 17:55:00
0 0
ㅋㅋㅋ (218.XXX.XXX.194)
사고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건 좋은데
시야도 아주 작은 것에서 벗어나질 못해

버스 뒷문으로 타는 젊은이들에게서 무질서가 그렇게 잘 보이나.

탈법과 위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국법과 경제 질서를 우롱하고
수백만명의 일자리와 행복을 가지고 놀면서 수십조 수백조를 시원하게 해드시는
늙은 동년배 권력자들에게서는 뭐가 보이는가.

세상의 헛점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연륜이 보이나?
푼돈에 연연해 하지 않고 억소리 나는 돈놀이를 즐기는 대범함이 보이나?

박근헤가 큰 약속을 우습게 여기는 건
박근헤가 약속 어기는 걸 당신네 노인들이 그렇게 방치하기 때문이지
젊은 애들이 자꾸 버스를 뒷문으로 타서 그런 건가?

우리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이 어디서 뚝 떨어진 건가?
노인들이 그런 세상을 만든 거지
뭐래는 거야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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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3 16:23:29
0 0
이동우 (118.XXX.XXX.184)
수 년전 어느 지방에 갔을때의 일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습니다. 카드 단말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버스였죠. 현금을 내고, 동전통에서 승객이 직접 거스름돈을 가져가도록 되어 있더군요.
소도시의 시내버스는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정차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다리가 불편한 노인분들이 버스에 오르더군요. 기사님은 승객들이 안전하게 승차하고 하차할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습니다. 그 버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앞문, 뒷문 구분이 없다는 것이었죠. 승객들은 앞문으로 타기도 하고 뒷문으로 타기도 했습니다. 내릴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뒷문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버스 안의 승객이 한 마디 하더군요. 아마도 대도시에서 온 승객같아 보였습니다.
"기사님, 뒷문으로 승객을 태우면 안되는것 아니에요?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네. 죄송합니다."
그러고 나서 기사님은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더군요. 마침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방에는 그 지역만의 규칙이 있는건데 말야"
저는 그 버스를 타면서 시골마을의 배려와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아니더라도 몸이 불편한 승객이 있으면 버스를 세워 손님을 태우고,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앞,뒷문 가리지 않고 가깝고 편안한 쪽으로 오르고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시골마을의 인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건 중요합니다. 버스 운행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안전이겠지요. 시골의 시내버스는 이 원칙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글을 읽고나니 그때 버스를 탔던 생각이 떠올라 적었습니다, 글에 대한 반론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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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0 11:11:22
0 1
방석순 (175.XXX.XXX.54)
충분히 이해합니다.
예전 여기 자유칼럼에 실렸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어느 소문난 밥집 할머니가 잘났다고 뻐기는 관리가 밥상 독촉하자 손님 들어온 차례대로 주는 게 원칙이라고 핀잔을 주었다지요. 그런데 웬 할아버지가 뒤늦게 들어왔는데 그리로 밥상이 먼저 나가더랍니다. 관리가 이유를 따지자 할머니 왈 "그게 도리야!" 했답니다.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지켜야 할 원칙도, 규율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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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09:40:08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어른이 모범을 보이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의외로 쉬운 곳에 해답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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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0 10:17:44
0 0
방석순 (175.XXX.XXX.54)
옳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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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09:32:10
0 0
꼰남 (119.XXX.XXX.103)
잘 가다 ㅇㅇ로 빠진다 카더마는 그 격이로군요.
규정과 융통성.
맞습니다. 안전에는 융통성보다는 수칙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조금 불편해도 원칙과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 학생들 기초는 돼 있어 보이니
조금만 선도하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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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0 08:01:21
0 0
방석순 (175.XXX.XXX.54)
네, 그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으려고 그런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게 몸에 배면 안 좋을 것 같아서.
답변달기
2016-05-31 09:31:33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