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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엔 얼마나 많은 은인들이 있었을까
김정애 2016년 06월 07일 (화) 02:38:42

1975년 미국에 남편과 같이 이민 와서 그 다음 해부터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하여 38년 동안 일하다가 은퇴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참으로 많은 사연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중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벌써 17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 Home Health Nurse(가정방문 간호사)로 근무할 때, 병원 근처에 사는 어느 65세의 백인 남자 환자를 방문하러 갔습니다. 오래된 낡은 아파트였는데 간병인은 어디로 갔는지 안 보였고 작고 어두운 방구석의 침대에 그분은 누워 있었습니다. 하반신 마비로 침대에서 돌아눕는 것조차도 혼자 할 수 없어서 옆에서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말도 없고 표정도 없이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하는 그분이 너무 안쓰러워서 도대체 이분은 얼마나 오래 이렇게 침대에 갇혀 살았을까 생각하며 물어봤습니다. "How long have you been this way?(얼마나 오래 이렇게 누워 지내셨나요?)" 그분은 "48years.(48년)" 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나이와 같은 숫자를 듣고 나는 너무 놀라서 순간 내가 살아온 48년을 떠올렸습니다. 6·25동란 중 태어나 어려운 가운데 자라나고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지금까지 살아온 그 긴 세월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아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마도 젊었을 때 교통사고를 당했나 보다 생각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Car accident?(자동차 사고 때문인가요?)" 그러나 그분은 "No, Korean War!(아니오, 한국전쟁에서 다쳤어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정 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그 대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겨우 열일곱 살 때 한국전에서 그런 부상을 당했단 말인가?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그 앞에서 차마 내가 코리안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치료하고 도망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도망쳐 나온 내 행동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미안하다고 했어야 하나? 고맙다고 했어야 하나? 무슨 말을 한들 위로나 도움이 되었을까?
 
이제 그분의 나이가 된 지금, 나의 인생을 돌아다보며 내 인생에 도움을 주었으나 알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보상이나 감사를 바라지도 않고 도와주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낮아지고 숙연해집니다.


김정애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졸업,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시에 있는 
Saint Joseph Hospital에서 간호사로 35 년간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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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1.XXX.XXX.139)
감동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제게도 얼마나 은인이 많았은지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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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7 01:09:42
0 0
이종인 (61.XXX.XXX.220)
어제 현충일을 그냥 여느 공휴일과 같은 날로만 보냈는데,
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님의 글을 읽고 참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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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15: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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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210.XXX.XXX.82)
자신도 모르게 정말 수많은 도움을 받으며 한세상 살아왔을 텐데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불평과 불만을 품는 일이 더 많지 않았나 싶군요.
큰 깨우침을 주는 글에 깊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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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1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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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천문대 (59.XXX.XXX.178)
가슴에 남은 아쉬움이 있군요. 그분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한국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을 주축으로하는 선진국들의 도움으로, 동서간의 전쟁속에 거기에 기대어, 운좋게 살아난 대한민국입니다.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일등주의 황금만능주의로 스멀스멀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가야할지 막막한 대한민국입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잃은다면, 사회각계층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천민사회로 흘러 서로 불신하면서 금방 망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교육을 걱정하지 않고 방관하며 사그라들고 있으니, 썩은 정신을 개조할 교육혁명을 이루어낼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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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09: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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