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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과 스크린도어
김영환 2016년 06월 10일 (금) 00:13:23

최근 프랑스를 처음 다녀온 젊은 후배가 파리는 좋은데 지하철은 너무 낡아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가본 지가 10년이 넘었기에 귀담아들었습니다. 지하철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볼 수 없었고 열차의 문을 손으로 여는 데는 기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죠. 지방도시에도 오래전에 무인경전철이 등장해 저도 시승한 일이 있습니다. 파리 지하철은 1호선이 1900년에 개통되었으니 역사가 긴 만큼 시설도 고풍스러울 수밖에 없죠. 20여 년 전 필자의 파리 특파원 시절 튼튼한 지하철 문고리를 돌려서 타고 내린 기억이 납니다. 낡은 것을 쉽게 안 버리는 프랑스의 국민성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첨단 지하철은 놀랍죠. 수도권은 신분당선,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에 이어 7월 30일 개통하는 인천지하철 2호선도 무인운전입니다. 편의시설도 뛰어나 서울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은 승강장에까지 화장실이 있습니다. 골드라인이라는 9호선은 객차 수급을 어떻게 계획했는지 늘 붐벼 지옥철로 비판은 받지만 거의 직선형 노선에 급행과 일반 열차가 번갈아 운행해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은 하루 700만 명을 실어 날라 수송 분담률이 40퍼센트 대에 육박하죠. 이는 1년 365일, 휴일도, 일정한 일과시간이 따로 없는 지하 세계 근무자들의 집체적인 헌신 덕분입니다. 
 
최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의 젊은이가 열차에 끼여 안타깝게 숨지는 참사가 발생해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스크린도어는 까다로워 보입니다. 승강장에 갓 들어온 열차가 정지한 후에도 객차 문과 스크린도어를 맞추려고 몇십 센티미터를 앞으로 혹은 뒤로 미세 조정하는 일을 심심찮게 봅니다. 열차 출입문을 몇 번씩 열었다 닫았다 하기도 합니다. 캄캄한 땅굴에서 길이 몇백 미터가 되는 열차를 오래 끌고 다니며 문을 맞추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5~8호선을 맡은 서울도시철도는 기관사 혼자 탑승하는데 불안과 공포의 공황장애 등으로 2003년 이후 무려 9명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구의역 사고는 서울메트로에 특유한 스크린도어 사고로 벌써 세 번째인데 1,2,3,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안전 문제를 직접 관리하라는 정부의 지침을 어기고 서울메트로 간부 퇴직자들의 일자리를 위해 은성PSD를 세우고 하청을 주었다는 겁니다. 악명 높은 19대 국회는 위해 업무의 하청을 방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역시 깔아뭉갰답니다. 걸핏하면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지하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산하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인 월급 144만 원의 용역업체에 안전을 맡기는 걸 어떻게 방관했는지 의문입니다. 노사의 담합인가요. 
 
박근혜 정부 초기 지하철 열차 출입문에 붙여졌던 스티커가 떠오릅니다. ‘朴에게 기대지 말자’는 도발적이고 이중적인 정치선전 구호였습니다.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안전을 은성PSD에 기댈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맡아 시민과 기술요원들의 인명부터 챙겨야 했습니다.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이인제 의원은 2015년 당내 회의에서 서울 지하철의 난맥상을 집중 거론하고 당 차원에서 감사원에게 감사를 요구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서울메트로 등에 웬 박원순 시장의 비전문 낙하산 인사가 그리 많은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소위 ‘메피아’의 존재와 지방 권력의 사유화를 비판한 것입니다. 실제로 박 시장은 2014년 서울메트로 사장에 지하철 비전문가인 증권산업노조위원장 출신 문외한을 앉혀 비판을 받았습니다.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 지하철 안전 관리의 최정점에 선 박 시장은 스크린도어 사고가 불평등한 관행인 양 평론가처럼 처신하다가 비판을 받자 뒤늦게 사과했습니다. 그는 사고 원인을 철저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대권 이벤트에 한눈팔지 말고 현업에 충실해야죠.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계속되는 공룡 서울메트로의 안전 불감증은 청문회나 국정조사라도 해야 할 판이라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매월 100만 원씩 저금하며 꿈을 키웠던 젊은이가 생일 전날 컵라면도 먹지 못하고 순직한 것을 보면서 아무리 첨단적인 기술의 적용도 그것을 소화하지 못한 사회는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차라리 스크린도어가 없는 재래식 승강장에서 누군가가 철로에서 작업하고 있을 때 열차가 들어왔다면 의로운 시민들이 뛰어들어 구조에 나섰을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여러 지자체들이 청사 앞에 ‘사람 중심’이라는 구호를 붙여놓거나 강조합니다. 종로구, 영등포구, 용인시, 경기도, 서울시 등 오만 군데에서 사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 중심 사회란 선전 혹은 선동의 용어 선점 식 전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번 사고는 보여줍니다. 박 시장도 지하철 적자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이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고는 돈 문제가 아니라 인재라고 봅니다. 그럼 적자 인프라에선 수리공이 다 죽어야 합니까? 첨단 시설이란 것이 그 시스템을 무시하는 후진국형 관리와 양립할 수 없는 거죠. 
 
측정 불가능한 목표는 허구라고 합니다. ‘사람 중심’, ‘국민이 행복한 시대’,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하는 말이 다 그렇습니다. 지자체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세금으로 고용한 홍보 요원들을 도구로 삼아 자신들의 행정을 그럴듯한 어휘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하며 달성도가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정말로 사람을 중시하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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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12.XXX.XXX.45)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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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4 14:28:13
0 0
하얀전 (1.XXX.XXX.254)
세월호때는 가만히 계시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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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10:46:24
3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정말로 사람을 중시하라'
는 견해에 이의를 달기는 힘들겠지요. 그러나 측정불가능한
목표는 허구란 명제는 받아들이기 어렵군요.인간의 세상에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역설적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내걸었던 <747 공약>의
허구성이 이 명제로 뒤집어 질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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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10:39:43
1 0
꼰남 (112.XXX.XXX.25)
하드웨어 소프트 웨어가 다 중요합니다.
이번 사고도 두 측면에서 타진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우수한 인력이라도 싸구려 저급 자재로 안전을 기할 순 없으니까요.
반대로 아무리 좋은 자재라도 무능한 인력에겐 소용이 없을테지요.
운영 체제를 따질 것인가, 불량 자재를 따질 것인가?
어느 것이 먼저든 둘 다 따져야 할 것이며
그러다 보면 둘이 따로가 아닌 하나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건 <총체적인 부실>. 우리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랄까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미봉책만 세울 게 아니라 전체적이고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은 보도만 하고 경찰은 사고 수습만 하고... 다음 사고를 또 기다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차제에 우리 자유칼럼 필진 여러분의 사고 현장 방문을 한번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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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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