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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있는 풍경
한만수 2016년 06월 15일 (수) 02:44:16

요즈음은 텔레비전이 더 이상 전자제품의 중심에 서 있지 않습니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의 전원스위치를 올리지 않아도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에서, 노트북, 태블릿피시에서 원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텔레비전은 ‘프로그램’이나 ‘채널’의 개념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인터넷처럼 검색으로 원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질적이냐 양적으로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국산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8월입니다. 일본 회사와 합작을 한 금성사에서 19인치 텔레비전을 500대 생산했는데, KBS에서 공개추첨을 통해 팔았다고 합니다. 가격은 6만3,510원으로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2,500원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얼마나 비싼지 상상이 갈 겁니다.

70년대 들어서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시골 같은 경우는 동네에서 부잣집 소리를 듣는 집안에서만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그 당시 ‘여로’ 라는 드라마가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2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방영된 일일드라마였는데 드라마 방영시간이 되면 온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텔레비전이 있는 부잣집은 미리 안방 문을 활짝 열어 놓거나, 마당에 들마루를 내 아서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습니다.

여주인공인 분이 역할의 태현실이 우는 장면이 나오면 아주머니들은 이를 어째, 이를 어째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점잖으신 텔레비전 주인도 눈물을 감추느라 천장을 바라보며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도 친구 몰래 눈물을 감추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날은 무슨 바쁜 일로 여로를 감상하지 못한 아주머니들은 새벽같이 이웃집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서, 치마 끝으로 눈물을 찍어 내며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하루를 열고는 했습니다.

이후 각 초등학교에 텔레비전이 보급됐습니다. 부잣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동네 사람들은 일찌감치 가마니나 의자나 깔판 등을 들고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갑니다. 당직을 하시는 선생님은 교무실 창문을 열고 텔레비전을 틀어 줍니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어린아이부터 노인분들까지 모기에 뜯겨가면서도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을 봅니다. 어린 동생은 그 사이에 잠이 들어서 등에 업혀 집에 가기가 일쑤고, 텔레비전을 보느라 설친 잠에 이튿날 낮잠을 자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텔레비전이 웬만큼 사는 집안 안방의 윗목을 차지하면서 도시와 농촌 간의 문화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보온물통이며 전기다리미, 전기밥솥, 냉장고 같은 전자제품들이 산골 외딴집까지 보급됩니다.

이웃에 다리미를 빌리러 갈 필요가 없고, 여름에는 냉장고가 있어서 우물 깊은 집에 물동이를 이고 갈 이유가 없어졌고, 전화가 왔다는 방송을 듣고 이장 집으로 뛰어가지 않아도 되면서 이웃사촌의 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텔레비전은 이처럼 문화의 첨병 역할을 합니다. 몇 년 전에는 막장드라마가 판을 쳤습니다. 막장드라마를 쓰는 작가를 서로 모셔가기 위해 방송국사리 다투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자극성이 없는 건전한 프로는 저절로 하차를 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먹방’이라 부르는 먹기 방송으로 주요 시간대를 채우고 있습니다. 먹방이 아니면 노래를 불러서 1등을 뽑는 방송을 연중 내보내고 있습니다. 막장드라마며, 먹방,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사회현상이 말해줍니다. 막장드라마 같은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도 국민들은 무감각해져서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 범죄 상식을 여과 없이 방영해서 청소년들이 모방 범죄가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건전문화를 창달하고, 사회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도록 연결해 주는 방송문화가 정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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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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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223.XXX.XXX.56)
막장?
지금 이 사회에 막장으로 치면
이명박과 박근헤와 부끄러운 줄 모르는 노인네들보다 더 막장이 있나?
대우조선을 봐라
이명박근헤 낙하산들이 만들어놓은 똥막장을
그런 와중에 자기가 개혁이란 걸 한다고 떠들어대는 박근헤를
그 박근헤가 잘한다고 빨고 있는 노인들을
ㅋㅋㅋㅋ
불륜이어야 막장인가
범죄여야 막장인가
당신들이 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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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6 21:15:15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게
마련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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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5 09:45:29
0 0
한팡세 (118.XXX.XXX.250)
좋으신 말씀입니다. 그 때는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비만도 질병이니, 그만 좀 먹으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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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6 07:39:49
0 0
꼰남 (112.XXX.XXX.25)
막장 드라마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가면 갈수록 진화하며 교묘하게 막장 수위를 더 높여나가고 있지요.
TV 속에 나오든 물픔들이 하나씩 우리 집안으로 쳐들어 왔듯
막장의 상황도 하나 둘씩 우리 집으로 쳐들어 오고 있고요.
전자는 부러워서 사들이고, 후자는 미워하며 닮아가고,,,,
어느 쪽을 봐도 가슴 먹먹.
아무 것 안 해도 스트레스 천지. 우찌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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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5 07:37:16
0 0
한 팡세 (118.XXX.XXX.250)
감사합니다.
네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나라가 어렵게 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막장정치가 그 원조 같습니다.
답변달기
2016-06-15 07:45:1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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