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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읽고 싶다면 시드니 버스를 타세요
신아연 2016년 06월 17일 (금) 01:06:48

두 달 가까이 시드니에 머물다 서울에 돌아온 지 3주 남짓 됩니다.

20년을 넘게 살던 곳을 3년 만에 찾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매년 와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변화가 잦은 한국과 달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커가도 동네 구멍가게조차 그 자리에 있는 곳이 호주입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물질이나 외형적 탈바꿈보다 인간 내면을 돌보는 섬세하고 배려 깊은 변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지하철처럼 수도권을 연결하는 시드니의 열차는 맨 앞 뒤 칸과 가운데 칸을 콰이어트 캐리지(quiet carriage)로 지정하고 있었습니다. 이 칸의 승객들은 핸드폰 사용과 음악 듣기, 동행과 대화 나누기 등을 제한받게 됩니다. 핸드폰 신호음은 묵음으로 하되 급하게 통화를 해야 한다면 일반 칸인 옆 칸으로 옮겨 가야 하며,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도 꽁꽁 단속하여 다른 승객들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동행과의 대화는 최소한으로, 목소리는 최대한 낮춰야 합니다. 만약 가는 동안 일행과 담소할 생각이라면 이 칸에 타서는 안 되는 거지요.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원래 조용한 나라인데 일상의 소리조차도 시끄럽게 느껴졌던가 봅니다. 저는 혼자 다닌 데다 음악도 듣지 않았지만 얼결에 그 칸에 탔다가 황급히 전화기를 ‘죽이느라’ 허둥대야했습니다. 모든 소리를 자제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로 모두들 묵언 명상을 하는 듯 고요하기 그지없이 이동을 하는 것이, 시쳇말로 절간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버스 옆구리의 인상적인 광고판에 관한 것입니다. ‘기름값도 비싸고 주차할 곳 찾기도 어려우니 자가용 승용차보다 버스를 타는 것이 유용하다’는 평범한 문구 위에 부착된,  ‘버스를 이용하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내용이 감동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그러한 문안과 함께 신문을 펼쳐든 젊은 여성을 그려 넣어 대중교통의 이점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킨 홍보물이 그 나라 정신문화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하는 단초인듯 했습니다. 실제로 호주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휴대 전화기 대신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한국의 여하한 대중교통수단 광고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기에 더욱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인문(人文)이란 ‘인간의 무늬’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지나간 궤적, 행로, 패턴, 무늬를 따라 가는 것이 곧 인문적 삶이자 통찰적 삶의 방식입니다. 외양이 아닌 내면을 깊게 하고 정신적, 정서적, 영적 성장을 꾀하는 일, 말하자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일러 인문적으로 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각을 지속적으로, 강하게 자극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에 방해가 될뿐더러 삶을 위태롭게 합니다. 감각이 자극되면 즉물적이 되고, 즉물적인 상황이 반복되면 자극에 대한 반응만 있을 뿐, 사유나 사고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이 한 덩어리의 물질로 인식되어 그것이 극에 달하면 살인조차 서슴지 않게 되는 거지요.

오감 가운데 소리에 대한 감각은 보이는 것에 대한 그것보다 더 민감하고 통제가 어렵다는 점에서 호주에서는 열차 안 소음을 제한하고, 내면세계로 마음을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책 읽기를 권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국민들의 인문적 삶을 귀하게 여기는 시스템이자 발상인 것입니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멈추게되면 그때부터는 마음으로 듣게 됩니다. 내면에 주파수를 맞추게 되는 거지요. 귀를 닫고 머리와 마음으로 소리를 듣는 것을 ‘지음(知音)’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그래야만 진정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음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벗’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해서 춘추시대 거문고의 귀재 백아와 친구 종자기가 바로 그런 사이였다고 하지요. 백아는 자기 연주를 마음으로 들을 줄 아는, 나아가 자기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귀의 소리'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내면의 성장을 초장부터 훼방 놓는다는 점에서 소음은 고약한 폭력입니다. 모바일 폰 가게를 비롯해서 옷 가게, 식당, 심지어 정육점 앞에서도 빠른 박자의 요란한 기계음이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행인의 발걸음을 붙잡으려는 원래 의도를 읽기는 고사하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어집니다. 세상의 소음을 멀리하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성인들은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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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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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121.XXX.XXX.50)
호주, 그래서 멋진 나라인 듯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미쳐 삽니다. 정신없이 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르니 자기를 잃어버리고 들려오는 소리에 미쳐 반응할 뿐이지요. 근간의 사건사고들 그래서 빚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잘 읽었습니다. 저 자신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존재의 근원이 속삭이는 소리, 정말 들어본 적이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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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0 15: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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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0.XXX.XXX.163)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렵기 때문이라고.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기가 두렵기 때문에 소음 속에 묻혀 생각도 마음도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거리로 나서 이내 인파 속에 휩싸이며 내면으로부터 도피를 해 버리는 거라고....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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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 07: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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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222.XXX.XXX.75)
지음이란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 이라 합니다.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호주에 관한 인상 깊은 글이네요.. 다만 때로 님의 글을 보면 단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지 못한 느낌을 받습니다. 오늘 글에서도 보면 인문을 인간의 무늬로 해석하신 것은 그래도 납득해볼 수 있지만 지음을 "귀를 닫고 머리와 마음으로 소리를 듣는 것"이란 자의적 해석은 너무 나가신 것 같네요~ 지음이란 들으줄 아는 걸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연주가 있다한들 들을 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도 백아의 연주를 종자기가 들을 줄 알았기 때문에 둘 모두에게 깊은 의미가 있었고 바로소 마음의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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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0 11: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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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0.XXX.XXX.163)
들을 줄 안다는 것은, 귀바퀴에 실린 소리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 내면의 귀를 기울이는 것이란 뜻으로 지음을 풀이했습니다만... 님의 말씀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의견 귀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글 쓰는데 주의 사항으로 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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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 0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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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210.XXX.XXX.163)
오랫만에 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요즘에 우리 주변에 오염이 너무 많은데 그가운데 하나가 소음의 오염입니다. 비행장에서 들려 주는 음악도 소음 가운데 하나여서 나는 귀마게 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오염 가운데 가장 큰 오염이 소리의 오염입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늘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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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8 08: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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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 (211.XXX.XXX.141)
호주의 이색문화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호주에 가보지 못했지만 말씀하신 내용에서 그 시스템이 매우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특정다수를 배려하는 이런 제도는 우리도 본받을 필요가 있지요.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서울시내 버스를 타려면 출퇴근 시간에는 전쟁을 치러야만 했지요.
2004년 당시 이명박 시장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여 잘 정착되었고, 그 후 발달된 IT기술이 접목되어 진화하면서 이제는 아주 편리하게 바뀐 전례가 있습니다. 이 모델은 해외의 어느 작은 도시의 버스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살기 좋은 환경을 지향하는 면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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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7 10: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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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1.XXX.XXX.139)
이렇게 저렇게 서로 배울 것은 배우되 각 나라와 사회 문화에 맞게 발전시키게 된다면 지구 전체가 좀 더 인간적으로 변화하고, 문화적인 효율성도 발휘할 수 있겠지요. 다른 나라를 방문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시야와 시각을 넓힐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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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7 20: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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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21.XXX.XXX.190)
<좋은 글>로 아침을 열게 되어 기쁩니다.
생각해 보면, 소음 공해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말의 공해도, 특히 힘있는 자들의
언어폭력도 심각합니다. 글쓰기의 공해도
그러합니다. <표현 인문학>이라 말도 있지만,
품격 없는 글들이 넘쳐납니다. 덧붙인다면
막무가내식의 댓글이 자리잡지 못하는 분위기가
하루빨리 자리잡아야 할 듯 싶습니다.
더불어서 댓글도 존중 받는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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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7 08: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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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1.XXX.XXX.139)
좋은 글이라 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문제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것에 자주 노출되다보니 무감각해지고, 무감각해지니 강도가 더욱 세지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댓글 공해는 우리나라가 좀 더 심한 것 같아 섬뜩할 때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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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7 20: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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