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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이 짓이긴 개, 돼지의 꿈
신아연 2016년 07월 11일 (월) 02:31:11

교육부 고위직에 있는 나향욱(47)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7월의 폭염만큼이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7일 경향신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각자 출발선이 다른 게 현실이니 국민 상하간의 격차를 인정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구의역 19세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내 자식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말도 했다지요.
 
그는 이어 신분제를 공고히 한다는 것은 ‘위에 있는 1%가 아래에 있는 99%를 먹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일단 신분의 구분 내지는 차별선을 그어놓고 마치 개나 돼지를 사육하는 것처럼, 도탄에서 신음하는 무지렁이들을 구제하자는 뜻이었나 봅니다. 
 
나씨는 지금 아마 이런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신분제 발언이 헬 조선, 금 수저 흙 수저, 더 이상 개천 용은 없다는 식의 말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개, 돼지 스스로가 그런 따위의 말을 자기들에게 적용할 때는 언제고, 그것이 곧 신분의 차별을 뜻하며 삶의 격차를 반영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당착은 또 무언가’ 하고요.  
 
그는 또 자신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를 의아해하며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말이 뭐가 문제인가. 결국 모두 먹고살자고 저리도 아옹다옹하는 것 아닌가’하며 억울해 할 것도 같습니다. 컵라면도 먹지 못하고 죽은 앳된 청년을 어떻게 내 피붙이의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는 말에는 ‘남의 염통 썩는 것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에 누가 동의하지 않으랴’는 심사가 한 자락 깔렸던 게 아닐까요.
 
저는 여기서 ‘간극’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나씨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현실과 정서상의 간극, 나씨가 지적한 1%와 99%의 아득하고도 절망스러운 그 간극 말입니다.
 
<허삼관 매혈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는 2007년에 장편 <형제>를 출간하면서 이 소설은 ‘거대한 간극’에 대한 글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문화대혁명과 산업화가 진행되는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테고, 소설 속 주인공간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일 것이라며 우리 모두는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과 과거 사이가 아닌, 오늘과 오늘을 비교해 봐도 완전히 다른 시대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례로 그는1990년대 후반 무렵 어느 어린이날에 두 어린이를 예로 들면서, 북경의 한 사내아이는 장난감이 아닌 진짜 보잉 비행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서북 지역의 한 여자아이는 부끄러운 듯 흰색 운동화 한 켤레를 받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운동화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보잉 비행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만큼이나 까마득한 일일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위화의 표현대로라면 이쪽과 저쪽 양극단에 나씨와, 나씨가 표현한 개, 돼지가 존재합니다. 나씨를 떠받치는 삶의 양태가 불건강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씨 반대쪽 극단을 건강하지 않다고 매도할 수 없듯이요. 위화 역시 우리는 모두 병자(病者)일 수도 있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극단은 곧 불균형이며 지역 간의 불균형, 경제적 발전의 불균형, 극단적인 개인 삶의 불균형이 초래하는 것은 결국 꿈의 불균형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꿈은 모든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한 재산이며 최후의 희망입니다. 설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꿈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늘날 우리는 꿈마저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개, 돼지처럼 먹여 살려 주기만 하면 되지 않냐는 나씨의 망언은 사람이 가진 최후의 희망인 꿈을 짓이긴 것이기에 공분을 사고 있는 것입니다. 위화의 지적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간극이 거대하긴 거대한가 봅니다. 일생 좋은 운과 각종 혜택을 누려 온 사람으로서  혹독한 시련과 아픈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면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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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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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이웃 (116.XXX.XXX.10)
아침에 좋은 글을 읽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말을 쏟아 내듯이, 잘못된 말이 대중의 공분을 일으켜 핏대를 올리는 것보다 조금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를 부려 보고 싶습니다. 대중의 공분은 정말 공감하지만 과연 당사자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묻고 싶다. 진실로 그렇게 말한 사람의 진의를 집고 넘어 가고싶은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리고 싶다.단순한 대중의 무차별 공격으로 또 하나의 희생양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우리의 성숙책임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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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06:21:42
0 0
ㅋㅋㅋ (125.XXX.XXX.177)
나머시기의 직접적 노골적 표현에는 분개할 줄 알면서
교활한 황교안의 점잖은 표현에서는 똑같은 걸 캐치 못하며 입 다문 식자들 ㅋㅋㅋ
황교안 "사드는 국회비준대상 아니다"
이 말은 "니들은 자세한 거 알 거 없고 결정도 못한다" 라는 것이고
즉슨 "니들은 개돼지다"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나오지 않울 말을 한 것이지
ㅋㅋㅋ
즉슨 박근헤 황교안 한민구에게 똑같이 이런 분노를 했어여 하는 상황인데
식자들은 다들 침묵
익숙한 침묵
밥주면 안심하는 개돼지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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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03:33:43
1 1
dada (211.XXX.XXX.141)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더 잘 이해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말은 흔히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있을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특히 이 시대에 을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애로와 억울함은 이보다 더한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을이 아닌 교육부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했다는 것이 문제지요.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은, 어떤 말이 상대방에게 진의와 다르게 전달되었다면 그것은 청자의 잘못이 아니라 화자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사람은 어떤 의지를 가지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리는 대로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을 보면서 이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취중 진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위를 먹었던가. 현재 우리사회의 극심한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배운 자들이, 가진 자들이 좀 더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진 것에는 갖지 못한 자들의 몫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가 권위주의적인 행태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나 씨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교육부를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교육부가, 공직자가 아주 조금은 변화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지나온 역사에서 보면 변화는 때때로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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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2 07:18:01
0 0
ㅋㅋㅋ (125.XXX.XXX.177)
근데 보면
여기 필진들은 참 안전한 이슈들만 다루는 거 같어
하긴 이 나라 지난 10년 동안
글쟁이들은 다들 안전한 것만 써왔지
그러는 동안 나라는 점점 쥐판 닭판이 되어가고
누구하나
이명박이, 박근헤가, 김무성이 벌거벗고 사악한 멍청이들임을
비웃고 나서는 이들이 없지
친북종북좌파 타령하며 부화뇌동하는 좀비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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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22:16:08
0 2
ehlse (24.XXX.XXX.59)
나행욱발언은 아무리 취중이라더라도 설혈 드렇게 믿고있더라도 발언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나는 전달자의 의도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심히 뒤틀린 가치관의 소유자로서 그러한 책임을 맡은 자리까지 진출했으리라고 믿고싶지도 않구요.
아마, 만어법이나 뒤틀기의 수사를 논쟁당사자의 의도적 왜곡전달이 빚어내지 않았을까도 의심합니다.
이 서회가 전진하기 위해, 투표에 의해서 밖에는 달성할 길이 없는 민주주의제도를 가진 아 나라에서,
투표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지 못하고, 지방색과 부화뇌동에 의해서 투표함으로써 만들어 내는 이 나라의 비극을
뒤틀어 표현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뒤틀기 수사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언일 것입니다.
전달한 <기자>라는 자를 심문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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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17:21:31
0 0
김종우 (121.XXX.XXX.50)
맞는 말씀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의 생각이지 누구나의 생각은 아닙니다. 특히 그 사람이 공직에 있다는 것이 문제화 되도록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의 차이 말입니다.

문제는 1%의 환희와 99%의 분노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봤자 그 1%가 국가재산의 반 이상을 가지고 있으니 역시 너희들은 할 말이 없다 그럴까 두렵습니다. 돈이 권략인 세상이니 그럴 만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대한민국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두려워집니다. 저의 남은 인생 가지고 그 1%에 껴든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하다 생각하니 암담해집니다.

아무튼 신아연 님의 글이 그래도 많이 위로가 됩니다. 아직 그래도 할 말은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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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12:21:51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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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12:18:11
0 0
한 팡세 (118.XXX.XXX.250)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문득 나향욱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봅니다.
이래서 개, 돼지만도 못한 민중들이라니까. 혹은 나향욱이 속해 있는 그룹에서는 갈채를 보내고 있을 겁니다. 나 기획관 한 건 올렸네. 난 솔직히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니까. 십 년 묵은 체중이 쓱 내려 간 것처럼 후련하더라구.
그리고 제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20년 후에는 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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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11:24:11
0 0
타향살이... (121.XXX.XXX.46)
말은 사람의 영혼에게만 영향력을 행사할수있는 보이지않는 예리한 검입니다...
정교하고 신경바짝 안쓰고 사용하면 칼끝에 베어지는 주위의 영혼들은 피흘릴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칼집에서 칼 뽑기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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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08:55:37
0 0
이진혁 (210.XXX.XXX.89)
신아연 선생님...깔끔하면서도 통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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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08:53:09
0 0
... (120.XXX.XXX.23)
공직에 있는 사람이 퍼블릭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이 사회적 환경과 상황이 답답하고 우려스럽네요.
머리가 틔이고 공부할만큼 한 사회 구성원들이 계급을 용인할까요? 구체적인 계급질서가 드러나는 순간이 혁명의 시발점이 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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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1 08:21:5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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