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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와 자포니즘
안진의 2016년 07월 27일 (수) 03:04:19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아침, 첫 비행기를 탄 제 마음은 한층 들떠 있었습니다. 사실 런던에 머물면서 갤러리와 미술관 산책을 즐기고 있었지만, 가장 고대했던 것은 암스테르담으로 건너가 좋아하는 반 고흐의 작품에 푹 빠져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걸음도 가볍게 스히폴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거쳐 반 고흐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트램 정류소에서 고흐 미술관까지 걷는 동안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이라 씌어진 조형물이 포토 존이 되어 발목을 잡을 만도 하고, 우아하고 고풍스런 외관의 국립미술관(Rijks Museum)과,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유명한 뱅크시와 앤디 워홀의 전시관이 시선을 붙들기도 했지만. 제 마음은 오직 반 고흐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반 고흐의 따스한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반 고흐의 작품은 국내전시를 통해서도 보아왔기에 무척 익숙했지만 그의 고향땅에서 바라보는 작품은 또 다른 감상에 젖게 했습니다.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는 연민할 수밖에 없고, 철저한 연구자적 태도와 작업에 대한 열의에 존경은 새록새록 묻어났습니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순차적으로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남프랑스 아를(Arles) 시절 작품에서부터 고조되는 일본화풍 때문입니다. 그동안 <귀가 잘린 고흐의 자화상>이나 <탕기 영감의 초상>과 같은 작품을 보며, 그 배경에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가 묘사된 것을 보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시 유럽에 영향을 미쳤던 일본 취향 또는 일본 미술의 영향을 가리키는, 자포니즘(Japonism)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으로 넓게 해석했었습니다. 그러나 반 고흐의 <아몬드 꽃>그림 앞에 섰을 때, 그가 지금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본화풍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일찌감치 유럽에 진출한 일본화가 솔직히 부러웠던 것입니다.
 
그의 일본화풍에 대한 선호는 <꽃피는 매화나무> 그림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아예 원본이 되는 히로시게의 <매화나무>와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그가 일본화를 유화로 모사하며 얼마나 추종하고 연구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뮤지엄 숍엔 반 고흐에게 영향을 준 히로시게나 호쿠사이의 도록뿐 아니라 일본의 문양 그림책과 기모노 책까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 고흐의 책들은 일본어로도 출간되어 있을 정도로 그는 일본과 깊은 인연의 끈을 갖고 있었습니다.
 
암스테르담으로 오기 전, 런던의 여러 미술관에서도 수많은 풍경과 인물을 보았지만 반 고흐의 작업은 상당히 차별성을 가지며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그림은 평면적 화면구성을 갖고 있으며, 짧은 선묘적 특징이 살아있는데, 이것이 동양적이어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양인이 보았을 때는 친숙함을 느끼고, 서양인이 보았을 때는 동양적 요소가 가미되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와 닿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로부터 서양의 미술은 빛에 의해 드러나는 대상과 그 표현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명암으로 자연스런 실제감을 드러내는 면적 표현특징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동양은 빛보다는 대상의 존재론적 본질이 중요했기에 표현에 있어 빛을 생략하고 대상의 골격을 이루는 선적 특징을 갖습니다. 그런데 반 고흐는 빛과 선,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결합시킵니다. 서양미술의 오랜 전통 속에 계승되어온 빛의 양감을 일본화의 영향아래 포착한 선의 흐름으로 결합시킨 셈입니다.
 
반 고흐가 만약 우리의 풍속화나 민화를 먼저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위상, 한국 작가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자포니즘 덕분에 유럽에서 일본인의 인지도는 높고 문화적 위상은 상당부분 발휘되고 있습니다. 미술이 국력을 만드는 발판이 되는 것을 목도합니다.
 
반 고흐와 자포니즘의 결합을 보며, 미술이란 창의적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계이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재삼 확인합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제가 또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할 길이 있음을 느끼며, 고흐의 일본화풍을 바라보던 그 불편했던 마음을 자신감으로 돌려놓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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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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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영 (121.XXX.XXX.23)
처음 듣는 고흐의 그림 특성입니다. 누군가 전문가적 안목으로 관찰함이 중요하군요, 모든 일이 안을 들여다 보면 나름 이유가 있어 신중해집니다. 엔지니어로 공부하면서 언젠가 모방도 창의를 인정하는 나라는 구소련과 일본임을 들었습니다. 그때 나도 동감이었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기술도 들여다보면 대부분 모방입니다. 정도차이는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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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30 14:55:29
0 0
꽃남 (112.XXX.XXX.25)
K-아트의 미래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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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14:55:07
0 0
신아연 (112.XXX.XXX.246)
오랫만입니다. 격조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글 읽게 되어 단박에 정겹군요.^^

오늘 글 읽은 후 고흐의 작품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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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13:33:37
0 0
이병우 (210.XXX.XXX.161)
좋은 컬럼, 잘 봤습니다.^^
불편하지만 일본 미술의 수준을 인정 안할 수가 없군요.
그리고 그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대하다는 것도.
일본하면 삼국시대 천자문 전래해준 그 때 그 시절에서 벗어나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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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12:34:41
0 0
임정훈 (220.XXX.XXX.44)
저도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자주 가면서 서예와 동양화를 즐겨보고 있는 데, 획이나 선, 색채가 제게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아마 이런 편안한 느낌이라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것인가 봅니다. 반 고호의 그림이 우리들에게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의 하나를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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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12:28:50
0 0
한 팡세 (118.XXX.XXX.250)
잘 읽었습니다. 사견이지만 일본의 문화 뿌리는 조선이고, 결국 조선의 그림을 반고흐가 취하지 않았나 하는 가정을 해 봅니다. 어렸을 때 반고흐의 자화상을 읽어 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림에 대한 열정, 형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는 동생의 헌신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그림의 깊이를 알고 나니까 기분이 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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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09:25:07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인상파화가들의 그림에 친밀감이
가는 것이 그때문인 모양이지요? 고흐의
화집을 다시 열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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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08:09:39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