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현덕 우리 이야기
     
봉숭아 꽃물 들이던 추억
신현덕 2016년 07월 29일 (금) 01:04:17

올봄 어느 커피 집에서 주는 봉숭아 꽃 씨앗을 얻어 집 화단에 심었습니다. 지난달 말 처음 하얀 꽃이 벌어지더니, 지금은 빨강색 두 포기, 흰색 두 포기 그리고 분홍색, 보라색 꽃이 각각 한 포기씩 활짝 피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으로 봉숭아 꽃은 빨강과 하얀색이었는데 분홍색과 보라색 꽃도 나름대로 보기 좋습니다.
 
꽃이 피기 전에 궁금하여 여기저기를 찾아보니, 거름을 적게 주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 심어야 한답니다. 조금 척박한 곳이 오히려 봉숭아에게는 적합하다는 것이지요. 지난봄에 두엄을 세 포대나 구했고, 두엄을 많이 묻은 곳에서 자란 하얀 꽃은 볼품없고, 표토도 얕고 거름도 별로 없는 곳의 빨강 꽃은 실해, 생육에서 완연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빨강 꽃은 빨갛다 못해 검은 빛깔까지도 보입니다. 봉숭아는 그래서 거름 주는 이가 없어도 시골 담 아래서 잘도 자랐나 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초등학생이던 누나는 뒤꼍 우물가에 있던 봉숭아 꽃을 따서 손톱에 물을 들이곤 했습니다. 누나와 유난히 친했던 저는 봉숭아 꽃물을 들이던 날은 충실한 조력자가 되곤 했습니다. 그 대가로 몇 번인가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봤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봉숭아 꽃을 딸 때 누나 곁에서 꽃잎을 두 손에 모아들고 서 있었습니다. 지금 봐도 작은 내 손안에 가득하도록 꽃잎이 모이면 옆에 있던 아주까리 잎도 두어 장 땄습니다.
 
우물가 평평한 돌 위에 봉숭아 꽃잎을 올려놓고 백반 가루를 뿌려 가면서 짓이깁니다. 백반이 없으면 소금으로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무토막이나 못 쓰는 젓가락으로 아주 작게 떼어서 손톱에 올려놓습니다. 그 다음 적당하게 미리 잘라둔 아주까리 잎으로 조심스럽게 골무처럼 감싸고, 아프지 않을 정도로 실로 묶었습니다.
 
잠잘 때는 백반과 소금의 작용으로 손톱이 아리고 간지러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주까리 골무가 손톱에서 벗어났거나, 어디로 없어졌습니다. 고통을 견디고 손톱은 곱게 물들었고, 손가락 끝은 검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면 손가락의 검은색은 닳아 없어지고, 봉숭아 꽃물은 손톱뿌리가 자라서 없어질 때까지 곱게 보였습니다. 손톱뿌리가 자라서 안쪽에는 봉숭아 꽃물이 없어지더라도 늦가을까지 은은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요즘은 어쩐 일인지 이런 과정을 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는 미용실도 있다고 합니다. 과정은 같고, 사용하는 도구가 조금은 바뀌었답니다. 아주까리 잎 대신 일회용 비닐장갑을, 아린 느낌이 싫은 사람에게는 통증을 없애는 크림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최근 젊은 여성들의 손톱을 보면 참 현란합니다. 매니큐어는 지나간 유행이고, 어떤 이는 손가락마다 색이 다르고, 어떤 이는 손톱에 그려진 무늬가 복잡합니다. 색도 여러 가지고, 추가하는 재료도 각각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네일 아트’라고 하는 손톱 돌보는 집이 성업 중입니다. 이름도, 기술도, 비용도 다양합니다. 용어가 조금은 생소하고, 어떤 것은 아예 외국어를 그대로 씁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쓰는 농담(濃淡)의 차이를 나타내는 그라데이션, 손톱의 가장자리를 아주 얇게 테를 두르듯 칠하는 프렌치, 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굽듯 손톱에 색을 입혀서 굽는 젤네일 등입니다. 네일아트는 손톱이 자라거나 긁혀서 보기 싫어지면, 기다리지 않고 즉시 지운답니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야 동서고금에서 변함없겠지만, 봉숭아 꽃물 들이기처럼 기다리고, 아픔을 겪고 얻는 내적 아름다움이 진정한 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즉흥적으로 손쉽게 얻어진 외모의 미는 싫증나서 곧 지워버리는 네일 아트처럼 될 테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1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오마리 (24.XXX.XXX.229)
ㅎㅎ
우리 시대 봉숭아 추억 아름답습니다 . 울 밑에선 봉선화야... 그 봉숭아..
서정적인 글, 잠간 회상에 잠겼습니다.
답변달기
2016-08-06 20:41:37
0 0
신현덕 (203.XXX.XXX.113)
감사합니다
사고가 과거(경험한 때)에 고착된 채 해외서 사는 분들이 느끼는 추억이겠네요.
건강하십시오.
답변달기
2016-09-20 10:08:13
0 0
최석권 (123.XXX.XXX.237)
저도 어렸을적 사촌 누이들과 여름 이맘때
손톱에 봉숭아꽃 물을 들이곤 했답니다.
어디선가 봉숭아 꽃을 보면 그런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곤 합니다.
봉숭아꽃과 함께 색깔 현란한 채송화도 매우 좋아 했습니다.
여느 담벼락 나팔꽃도
답변달기
2016-07-30 19:57:24
2 0
신현덕 (203.XXX.XXX.113)
올봄에 채송화 씨도 뿌렸는데 실패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답변달기
2016-08-03 09:31:16
0 0
장용구 (211.XXX.XXX.187)
우리 누나와 같이 자라던 때, 그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어릴적 정서- 어쩌면 소녀적일 수도 있는- 를 가진 작가의 고운 마음씨가 참으로 예쁩니다.
답변달기
2016-07-29 11:27:40
2 0
신현덕 (203.XXX.XXX.113)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6-07-29 16:00:18
0 0
한 팡세 (175.XXX.XXX.69)
봉숭꽃으로 물들이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겁니다. 울타리, 혹은 장독대, 텃밭 가장자리에 서 있는 봉숭아 꽃은 곧 부모님에 대한 추억이기도 해서 가슴이 아련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6-07-29 10:49:48
2 0
신현덕 (203.XXX.XXX.113)
댓글을 보니 손톱에서 느껴지던 아리핬던 느낌이 살아납니다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6-07-29 16:02:52
0 0
꼰남 (220.XXX.XXX.175)
지금이 꼭 그걸 때로군요.
참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지요.
미의 기준이 아니 유행이 바뀌었나봅니다.
요즘은 상업주의를 배제할 수 없지요.
성탄절도 그렇게 변한걸요.
그러니 둘 다 예쁘게 봐주어야지요.
답변달기
2016-07-29 09:22:11
1 0
신현덕 (203.XXX.XXX.113)
보기에는 네일 아트가 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6-08-03 09:32:38
0 0
ehlsehf (59.XXX.XXX.6)
곱습니다.
추억이 묻어있어 그런가요?
답변달기
2016-07-29 07:25:38
1 0
신현덕 (203.XXX.XXX.113)
추억이 손톱에 새겨지는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6-07-29 16:04:23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