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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값은 무죄, 맛은 유죄
신아연 2016년 08월 04일 (목) 00:32:30

요즘처럼 푹푹 찌는 날엔 아침부터 책보따리를 싸서 동네 커피숍이나 카페로 향합니다. 7월 들어서부터 허구헌 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니 피서지가 따로 없습니다. 이 나이에 대학생을 비롯해서 ‘공시생’ 및 기타 ‘취준생’들과 묘한 자리 쟁탈전을 벌이자니 ‘아줌마도 책을 읽나, 뭐 하는 아줌만가?’ 하는 젊은이들의 수근거림이 들리는 듯도 합니다. 하기사 폭염 때문만은 아닙니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평소에도 카페의 면학 분위기는 도서관을 방불케 합니다.
 
내가 사는 곳은 신림동 고시촌. 그나마 카페를 도서관 삼는 사람은 거의 나 하나고 나머지는 독서실로 이용합니다. ‘카페의 독서실화’는 고시촌의 진풍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좁디 좁은 거주 공간을 잠만 자는 용도로 쓸 수 밖에 없는 원룸 생활자들에게 동네 카페는 공부방이자, 건넛방이자, 사랑방이자, 안방이자, 거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예, 숫제, 차라리 자기 집인 것이,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울대 학생들의 시험 기간이면 카페 분위기는 정숙을 넘어 숙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때에 지인이나 친구를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간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빈자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행여 자리가 있다 해도 그 분위기를 깨고 커피나 차를 마시며 감히 대화를 나눌 엄두나 용기는 나지 않습니다.
 
커피숍이나 카페가 무엇 하는 곳인가요? 서울역 대합실이나 도떼기시장까지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입을 열고 말을 섞을 수는 있는 공간이 아닌가요? 이럴 때 저는 주객전도랄지, 언어도단이랄지, 적반하장이랄지 등등 말도 안 되는 말을 주워 섬기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빈자리가 있음에도 손님을 놓칠 수밖에 없는 주인의 ‘대략 난감’, 망연자실한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지인과 저는 숨조차 죽인 채 눈짓, 손짓으로 그냥 나가자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쫓기듯 카페를 나오곤 합니다.
 
그러면서 주인의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커피나 음료를 자주자주 여러 잔 팔아서 매상을 올려야 함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죽치고’ 있는, 손님인 듯 손님 아닌 사람들로 매장이 꽉 찬 상태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주인의 심정을 말입니다. 전라도 말로 하자면 한마디로 ‘폭폭한’ 노릇일 겁니다.
 
커피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더니 요즘은 2천 원대, 심지어 천 원대로 값을 내린 곳도 있습니다. 커피값이 밥값보다 더 비싸다는 게 어불성설처럼 들리지만 밥을 먹은 후 식당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은 없으니 비싼 커피값이 아주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비싼 커피값과 나름의 고충을 주인들을 대신해서 오늘 제가 변명해 드렸습니다만, 커피 맛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엉터리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매체에 쓴 글을 올리면서 정상을 참작하여 커피 값은 '무죄', 커피 맛은 '결단코 유죄’를 선언합니다.
 
21년을 시드니에서 산 저로서는 시드니가 제 2의 고향이니 한국을 다니러 오는 ‘고향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지요. 그중 하나가 “한국의 커피 맛이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인데, 호주에서 온 동포들마다 “한국에서는 커피를 돈 주고 사 마실 게 못 된다, 입맛 까다롭기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사람들이 어째서 커피 맛이 이 지경인데도 아무 불평이 없을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면서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지, 맛대가리 없는 커피가 값은 또 우라지게 비싸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하기사 저도 ‘한국의 커피’에 그 사람들처럼 똑같이 세 번 놀랐습니다. 첫째는 저 역시도 너무나 비싼 값에, 둘째는 형편없는 커피 맛에, 세 번째는 그럼에도 전혀 타박을 않는 한국인들의 너그러움에 놀랐던 것이죠. 아니, 솔직히는 네 번 놀랐다고 해야겠습니다. 단아하고 깔끔한 고급스러움을 지나쳐 사치의 극에 달한 커피숍이나 카페의 인테리어와 규모에 말입니다.
 
기왕 놀란 김에 다섯 번을 채워 놀라야겠습니다. 그런 호화찬란한 실내장식을 가진 숍에서 그런 ‘말도 안 되고 맛도 안 되는’ 커피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조화가 안 된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마치 미스코리아 같은 외모를 지닌 여자가 천박하기 그지 없는 언행을 보일 때의 충격이랄까요? 내면의 향기를 전혀 갖지 못한 사람을 볼 때의 당혹과 실망과 나아가 비애감이라 할지.
 
겨우 커피 맛 하나를 가지고 이죽거림이 너무 심하다 할지 모르지만 심한 건 내가 아니라 ‘커피 맛’이라는 것을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한 가지 이해한다면 한국의 비싼 커피 값은 ‘자리값’ 탓이라는 점입니다. 주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카페를 사무실 삼아, 독서실 삼아 온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판에 커피 한 잔 값이라도 확실히 받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지요. 그런 까닭에 그 돈을 내고도 자판기 앞과 다름없이 줄 서서 주문하고 줄 서서 받아오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고, 정식 커피 잔이 아닌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에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도무지 가격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비스건만 아무도 타박을 않는 이유를 저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해 보는 거지요. 
 
다 좋은데 말입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엉망인 커피 맛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스타벅스 등 세계적 프랜차이즈 커피점일수록 커피 맛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 분개심마저 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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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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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229)
공감 또 공감입니다
한국 내 커피숍 문제 많아요 커피 값도 유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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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6 20:19:08
0 0
신아연 (119.XXX.XXX.98)
죄목이 두 개나 되네요. 쫌 봐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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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6 23:08:55
0 0
김종우 (121.XXX.XXX.50)
뭐 여기에 댓글 쓸 자격은 없는 듯하지만 조금 이해가 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오래 전 놀란 일이기에 이제는 추억이고 별 생각도 없습니다. 이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을, 이러쿵저러쿵 떠들 필요가 있는가 싶어서 말이지요. 당시 한 끼 식사 값하고 한 잔 커피 값이 너무나 비교가 되어서 말이지요. 신아연 님의 글을 읽고 보니 맞다, 자리값이다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를 사용하는 그 자리 값 말이지요. 여름에는 냉방 잘 나오고 겨울에는 난방 잘 되는 그런 자리를 그 값에 어떻게 얻겠습니까? 그러니 하루 사용할 일이 없다면 구태여 커피숍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 커피를 마시지 못해서 커피 맛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할 말이 없습니다. 커피 마실 수만 있다면 오죽 좋을까 하는 생각만 하지요. 그러니 잠깐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차라리 지하철 역 공간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기는 냉난방이 문제이기는 하지요. 지하철을 타고 한바퀴 도는 것은 어떨까요? 좀 불편할 수는 있지요. 종점에 가서 만날까요? 혹시 역 구내에도 냉난방이 들어오는 지하철역은 없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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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15:59:58
0 0
신아연 (119.XXX.XXX.98)
아주 솔직히 까놓고 말씀해 주셔서 입가에 슬몃 미소가 걸립니다. 사실 돈 5천원 정도에 그만한 피서도 없지요. 주인에게는 참 미안한 노릇이지만요.

내 돈내고 간다는 생각보다는 피서할 곳을 제공해 준 주인에게 고맙게 여겨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도 자주 가다보면 부담이 되긴 해요.

그리고 한 군데, 공덕역 지하철 역이 시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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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21:13:58
0 0
별별 (59.XXX.XXX.178)
커피문화에 대한 우려의글, 잘읽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창조적 도시, 그저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재창조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걸 다시 뒤엎어서 또 새로움을 창출해 가는 나라...
쎌룰러 폰, 핸디폰이라고 부르는 영어를 Hand Phone으로 고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과감히 고정시켜버리는 나라.

이제 미국과 유럽이 표준이 아니고 그문화가 한국에 유입되어,융화되는 과정이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유입된 라면문화, 한국의 라면은 독특한 맛으로 발전하여,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판기 커피는 세계어느나라에도 없는 독특한 맛이며, 모두가 300원이면 즐기는 사회문화입니다.
동네마다 생기는 수많은 커피점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잠깐 일어나는 경제적 폭풍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커피점이 폭삭 망하는 뉴스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 후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커피맛은 양호합니다. 오히려 양이 많고 씁쓸한 미국 본토 아메리카노에 비하면 좀더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호화판 커피점에 모두 잘 운영되는 것이 아니고, 1000원짜리까지 하향되는것은 변화의 시작입니다. 점차 정리되면서, 독특한 문화의 향기를 가지는 커피점으로 재탄생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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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09:43:33
0 1
푸른빈 (1.XXX.XXX.254)
커피점이 폭삭 망하다니요....??
매년 커피 산업의 성장율, 원두커피 수입양 등을 한번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서구화된 입맛에 삼박자 커피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는게 원두커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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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5 14:19:11
1 1
신아연 (119.XXX.XXX.98)
제 글을 꼼꼼하게 읽으시고 이렇게 잘 정리해 주셔서 저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커피란 것이 기호식품이라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다는 느낌이 드네요. 문화는 변화를 수반하는 현상이라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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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21:11:47
1 0
꼰남 (220.XXX.XXX.175)
그래서~
요즘 500원짜리 편의점 드립커피까지 나왔나 봅니다.
근데 이 커피 기계는 곳곳에서 <점검 중>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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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09:00:26
1 0
신아연 (119.XXX.XXX.98)
편의점 음료 중에 꽤 괜찮은 것들이 많다는 걸 최근 알았습니다. 커피도 당연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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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21:09:27
1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커피를 마셔야 비로소 웃음이 나온다.
- 크라크 게이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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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08:19:26
0 0
신아연 (119.XXX.XXX.98)
커피를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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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21:08:39
0 0
한 팡세 (175.XXX.XXX.69)
백 프로 동감합니다. 음식장사를 하려면 기본 적으로 테이블회전율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 테이블에 손님을 몇 명이나 받느냐를 뜻하죠. 가격이 낮은 음식일수록 테이블 회전율이 좋습니다. 가격이 낮다는 것은 요리를 그만큼 빨리 한다는 것. 이를테면 분식 같은 것이겠죠. 요즘 커피전문점에 가보면 노트북 펼쳐 놓고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족들이 많습니다. 커피값이 비싸고 싸고를 떠나서 "갑"질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돈을 냈으니까 주인 너는 참아야 한다. 라는 갑질이죠. 고시에 합격하기도 전에 갑질부터 배우는 고시생들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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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07:14:52
0 0
신아연 (119.XXX.XXX.98)
저도 음식 장사를 해봐서 잘 압니다. 음식값은 회전율에 의해 정해지지요. 그러니 한국의 커피값이 높게 책정될 수 밖에 없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카페를 이용하는 쪽이 너무 뻔뻔합니다. 주인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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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4 21:08:0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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