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허영섭 동서남북
     
‘영란 세트’에 만족하실는지
허영섭 2016년 08월 10일 (수) 02:24:33

다음 달 28일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됨에 따라 정부 청사 주변 식당들이 벌써부터 울상 짓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공무원에게 접대할 수 있는 식사의 한 끼 가격이 3만원으로 제한되면서 매상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3만원이 넘으면 불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밥 한 끼 잘못 먹었다가는 접대를 받는 사람이나 접대하는 사람이나 서로 입장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식사 자리까지 이어지던 민원인들의 관청 접촉이 심리적인 위축으로 이미 뜸해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공무원 접대를 맡았던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언론사나 학교 주변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인과 학교 교직원들도 접대 제한 대상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음식점들 가운데 문을 닫은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김영란법이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원래 이름답게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3만원짜리 식사라고 하면 일반 샐러리맨들의 입장에서는 모처럼 포식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점심이라고 해야 보통은 6,000~7,000원짜리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로 한 끼씩 때우고 넘어갈 테니까요. 좀 더 써야 1만원 정도입니다. 저녁에 모처럼 친구들과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우면서 소주잔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1인당 3만원이면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3만원으로 부족하다는 걸 보면 요식업계에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물론 관청 주변 음식점들이 하소연을 늘어놓는 데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손님들이 다닥다닥 끼어 앉는 뒷골목 음식점과 달리 별도의 방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릿값’부터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단골손님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손님들의 까다로운 식성도 맞춰야 합니다. 음식 이상으로 다른 서비스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웬만한 한정식집의 식사 가격이 4만~5만원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이유지만 일식집이나 고깃집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몇몇 음식점에서는 이미 3만원 가격에 맞춰 새로운 메뉴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접대 자리에 마주앉은 양측이 서로 부족하지 않게 느낄 만큼 식단을 짰다는 것이지요. 수요가 발생함에 따라 최적의 공급을 창출한 것으로, 재빠른 대응에 감탄할 뿐입니다. 이 메뉴에 ‘영란 세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니, 이름 또한 제격입니다.
 
이만큼만 해도 일단은 커다란 진전입니다. 음식점들의 입장에서는 매상이 줄어들기 때문에 안된 일이지만 접대에 필요 이상의 돈을 쓰는 사회가 건강할 리는 없습니다. 우리 기업들의 연간 접대비가 10조원에 이른다는 자체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내 돈이 아니라 회사돈이기 때문에 흥청망청 쓰는 것이고, 그 결과 유흥가마다 밤 늦도록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김영란법의 단속 효과는 비단 음식점 식사값에 그치지 않습니다. 선물과 경조사 봉투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으로 허용 한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부정청탁, 즉 뇌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명절 때마다 정치권 실세나 고위 공직자들에게 선물 꾸러미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배달되고 결혼식 축의금 봉투로 동그라미가 하나 더 붙은 금액이 전달되는 관행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당장의 부작용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우나 인삼 세트, 고급 과일 등 선물 수요가 그만큼 줄어들게 됨으로써 생산 농가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화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에 빠져 회복 기미가 요원한 상황에서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기업들이 접대비 지출을 유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법이 시행되기도 전이지만 제한금액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경조사비 규제는 그대로 두되 식사접대 허용 상한선은 5만원으로 올리고, 선물비용은 10만원으로 올리자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일부 생산 농가에 도움은 되겠지만 대접받는 풍토를 당연하게 고착시킨다는 부작용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명절 선물만 해도 과대 포장을 없앤다면 그렇게 비쌀 필요가 없습니다. 백화점이나 유통업자들이 가격을 높이려고 과대 포장을 하기 일쑤입니다. 한정식집에 있어서도 손님들이 젓가락을 대든 안 대든 이것저것 가짓수를 채워 음식을 내놓는 관행을 개선해야 합니다. 지금의 경조사 문화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가 따라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식사비와 선물값을 제한하더라도 자기들끼리 몰래 이권청탁을 주고받는다면 제 아무리 김영란법이라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공직사회 일각에서 그런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을 최근 몇몇 사례에서 분명히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영란법이 당장은 국민 생활에 불편을 끼칠 소지가 큽니다. 그러나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8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최석권 (165.XXX.XXX.42)
이제 가격 거품이 많이 빠지겠네요.
명절 때 과일 등 세트 가격은 정말이지 상인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만
생각들게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음식점 가격 거품도 많이 빠지길 고대합니다.
우리동네 설렁탕 1그릇이 8000원, 우리집 식구 5명이 저녁 외식에 설렁탕
한그릇 씩만 먹어도 4만원입니다. 고기도 안먹었는데.
허연 멀국에 밥말아 먹는 등 내용도 별거 없는데.. 왜이리 비싼가요.
개인적으로 5000원이면 적당하다고 봅니다.
치킨, 피자 등 가격 터무니 없습니다.
답변달기
2016-08-13 10:52:07
0 0
오마리 (24.XXX.XXX.23)
언젠가 선릉 옆 한정식 집엘 갔다가 깜짝 놀라 나와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일인당 10 만원이라고 해서 지요
누굴 위한 식당인지, 요정도 아니면서 사람 머리당 그 값이...
진즉 그런 혁신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국회의원도 당연히 포함 돼야 합니다
답변달기
2016-08-11 18:20:25
0 0
꼰남 (220.XXX.XXX.175)
'뛰는 법 위에 날으는 상술'이라
또 어떤 기막힌 이름과 상품이 나올지
심히 기대됩니다.
답변달기
2016-08-10 10:31:45
0 0
청유 (218.XXX.XXX.17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주로 고위공무원 언론인 등일 것입니다. 그들은 힘이 있고 언론이라는 말할 수 있는 통로를 지배하는 계층입니다. 김영란법의 허점을 거론하며 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끝없이 할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빠진 것은 원칙적으로는 잘못이지만, 국회의원까지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면 김영란법을 무력화하는 세력에 국회의원도 동참할 것입다. 고위공무원 언론인 국회의원이 뭉친다면 김영란법 무력화는 아주 용이할 것입니다. 국회의원을 김영란법의 예외로 인정하면 김영란법이 더 자리잡기 쉬울 수 있습니다.
답변달기
2016-08-10 09:15:43
0 0
이승주 (119.XXX.XXX.232)
경제운운하면서 접대를 당연시 여기는 세태 좀 없어졌으면 합니다. 김영란법이 당장은 국민 생활에 불편을 끼칠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될 것라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답변달기
2016-08-10 09:05:38
1 0
ehlsehf (59.XXX.XXX.6)
뇌물방지법이 없어서
우병우 진경준이가 생겼습니까?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이 악을 악하다 할 수 있게 된 것이 진전입니다.
접대도 능력이고 인맥 학맥도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멸시받는 사회가 되기 바랍니다.
답변달기
2016-08-10 08:27:14
0 0
신아연 (119.XXX.XXX.98)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인들은 언제나 가장 발이 빠른 법, '영란세트' 이름이 좋네요.

하지만 어디선가는 '꼼수'를 피울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답변달기
2016-08-10 08:16:50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공감합니다.
다만, 큰 파리는 잡지 못하고 작은
파리만 잡는 것이 법이라는 <발자크>의
유명한 말이 생각나는 군요. 서산에
해가 얼마남지 않은 처지에서, 이런 불만은
사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변달기
2016-08-10 08:03:25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