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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엔사무총장의 나라에선
김수종 2007년 11월 21일 (수) 09:39:03
“뚜 뚜 뚜 뚜”
밤길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우박인 줄 알았습니다. 우박이 아니라 폭우였습니다. 와이퍼를 가장 빠른 속도로 돌렸지만 차창 밖은 반투명 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아스팔트길이 물로 차오른 듯 자동차가 안정을 잃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겁을 하고 자동차를 멈춰 세웠으나 밤중 산길에서 폭우에 갇혔다는 공포감이 엄습했습니다.
10월 하순 렌터카를 몰고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중산간 도로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제주도의 가을비는 이렇게 내리지 않았습니다. 바람에 구르는 낙엽을 촉촉이 적시면서 땅바닥에 고정시켜주는 정도의 그런 비였습니다. 이번 만난 폭우는 아마존이나 인도네시아에서 하늘이 뚫린 듯이 내리는 열대성 폭우와 똑 같았습니다. 제주도 기후가 완전히 변해버린 듯합니다.

추석 직후 태풍 ‘나리’가 쏟아 부은 사상 최대의 홍수를 경험한 그곳 사람들은 이제 ‘지구온난화’를 얘기합니다. 2002년 강릉 홍수, 2006년의 평창 폭우와 더불어 8월 내내 계속되는 열대야, 농업과 수산업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육지생태계와 해양생태계의 대변화의 원인을 설명해줄 키워드로 지구온난화를 제외하고 달리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온난화 때문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요즘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유엔수장으로서의 지도력 강화에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11월 18일 그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총회에 참석, 이 기구가 작성한 제4차 종합보고서를 전 세계 언론을 상대로 공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온실기체 감축에 미온적인 미국과 중국을 향해 건설적인 역할에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반 총장은 유엔수장 최초로 남극과 아마존열대우림을 방문했습니다.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남극빙하이고, 지구온난화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이기 때문입니다.

반기문 총장이 올해 1월1일 유엔사무총장으로 취임하기 이전 보낸 약 40년의 한국 외교관 활동에서 지구온난화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흔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잘 나가는 외교관에게 떨어지는 임무는 남북갈등, 한미관계, 북핵문제 등 안보외교 문제였으니까요.

반 유엔사무총장이 재임 일년 동안에 기후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사정은 무엇일까요? 반 총장과 접촉해본 적이 없으니 그의 견해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짐작하건데, 지금 국제사회의 깊은 고민거리로 떠오른 것이 다름 아닌 인간이 만드는 지구온난화라는 것을 반 총장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바로 지구온난화 이슈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대변해주는 일 중 하나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결정입니다. 정치인에서 지구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과 더불어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한 것은 지구온난화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입니다. IPCC는 1988년 전 세계 과학자와 정부전문가 2천여 명으로 구성해 만든 유엔 산하의 전문기구입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과학 기술 정보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고, 기후변화가 환경 및 사회 경제에 끼칠 영향과 대응방향을 마련하여 유엔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지구를 인체에 비유하자면, IPCC는 기후변화라는 신체변화를 진단하는 전문의사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PCC가 반 총장을 통해 이번에 공개한 제4차보고서는 화석연료사용에 따른 온난화로 지구평균 기온이 금세기말까지 섭씨 1~4도가 상승하면서 극지방 해빙에 의한 바다수위의 상승, 한발에 의한 사막화의 확대, 고산빙하 축소에 의한 수자원부족, 슈퍼태풍의 발생 가능성 등 기상의 폭력화, 종 다양성의 붕괴 등 기후변화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자연재난이 많겠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인지 모르나, 과학자들은 20~30년 후 인류문명의 운명에 대해 우울한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 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중국과 인도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산화탄소 배출증가 속도로 2030년까지 지구평균 기온이 섭씨 6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충격적인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너무 과격한 예측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일 이렇게 된다면 인류는 대혼돈속으로 빠질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안정시킬까? 에너지 소비와 직결된 이 문제는 이제 지구촌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긴급과제가 됐습니다.

이미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기후변화를 집단안보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의제로 제기했습니다. 안보리 의제로의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기후변화는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안보문제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따라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그 재임기간으로 볼 때 기후변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최초의 유엔수장이 될 것입니다. 온실기체 배출제한을 반대하는 미국, 중국, 인도 같은 거인을 상대로 힘겹게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처지입니다.

한국은 이런 과제를 안은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게다가 좁은 국토와 조밀한 인구밀도로 기후변화의 재난에 가장 취약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태풍 한방에 온 나라가 며칠씩 비상이 걸리는 나라입니다.

그 한국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석유 소비순위 7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순위 9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배출량의 1.7%가 우리나라에서 나옵니다. 더욱 심각한 일은 이산화탄소배출 증가율이 중국에 이어 2위라는 사실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 논의는 무성한 것 같지만 회의용일 뿐이고 실행계획과는 거리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지구온난화는 국가의 주요 이슈로서, 사회의 담론으로 거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의 정책이슈로 떠오르지도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것을 들어, 미국인들은 마음 놓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뉴스보도를 보면 온난화 이슈가 정치, 경제, 과학, 패션 등 전 분야에 걸쳐 광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지역별로 주지사들이 연합하여 연방정부 및 의회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할 수 있도록 법제정 작업을 하라고 들끓고 있습니다. 법원은 정부에 배출규제를 하도록 하는 판례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연배우로 유명한 애놀드 슈와체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웃 주지사들과 연대하여 차량의 온실기체배출을 규제하는 연방입법을 촉구하는 TV광고에 무료 출연하는 열렬한 ‘환경주지사’로 변신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는 21세기 선진세계의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OECD국가로서 우리는 국제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써야 할 지구환경을 미리 대출받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행동계획을 만들어 온난화예방에도 참여하고, 반기문 총장 체면도 한번 살려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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