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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과 '내부자들'
임철순 2016년 09월 05일 (월) 03:49:31

나는 2006년 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한국일보사에서 주필로 일했습니다. 2015년 1월부터는 석간 경제지 이투데이의 주필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인데, 통산 8년 넘게 주필로 활동하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직업이 주필”이라는 말을 더러 듣곤 합니다. 부러움과 질시가 섞인 것으로 들리는 농담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주필이라는 명칭과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2년 전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총리 후보로 등장했을 때 주필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는데, 나는 그때 약간의 ‘피해’를 봤습니다. ‘주필 출신 총리’는 결국 무산됐지만, 친구들이 “야, 너도 충청도고 주필인데 너는 뭐하는 거냐?” 하며 놀리더군요. 근데 그 친구들도 내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는 알고 있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주필보다 논설실장이나 논설주간이라는 말에 더 익숙합니다. 직위명이 구체적이기 때문이겠지요.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문제의 언론인도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이었습니다. 신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주필 논설실장 수석논설위원이 있는 곳이 있고, 또 어느 곳은 주필 논설주간 수석논설위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헷갈리는 독자가 “제일 높은 게 누구냐?”고 묻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물론 주필이 없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디어오늘이 원고 청탁을 해왔을 때 ‘집필이 아니라 주필입니다’(2011.2.22)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한 여성 독자가 "선생님이 신문에 쓰는 칼럼을 잘 읽고 있는데 주필이라는 명칭이 궁금합니다" 하고 이메일을 보낸 데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 글을 부분적으로 되살려 소개합니다.
 
“제가 처음 기자가 됐을 때 주필이라면 정말 하늘같이 높아 보였는데요. 주필은 한자로 主筆, 영어 표기는 여러 가지이지만 저는 chief editorial writer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 신문사의 논조를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알기 쉬울는지. 논설위원실 회의를 주재해 그날 사설로 뭘 쓰고, 누가 쓰고, 어떻게 쓰고를 결정한 뒤 논설위원들이 쓴 사설을 데스킹(글을 고치거나 첨삭하는 일)하고 걸맞은 제목을 붙이는 게 제 임무입니다. (중략) 아울러 한국일보의 경우 논설위원실이 오피니언 면도 제작하고 있어 외부 필진 선정 및 집필 방향에 관한 총괄 책임도 맡고 있습니다. (중략) 신문사마다 조금씩 달라 주필이 있는 곳, 논설주간이 업무를 총괄하는 곳, 논설위원실장이 우두머리인 곳 등 체제와 운영방식이 각각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주필은 오랜 기자 경력을 거친 뒤 편집 관리 직책을 역임하여 관록과 능력은 물론이고 덕망과 지식을 겸비한 인격자라야만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또 ‘신문사에서 편집상의 최고 책임자로, 발행인으로부터 편집업무에 관한 모든 권리를 위임 받아 해당 신문의 논조와 편집방침을 결정하고 편집내용과 지면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풀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신문에서 주필은 다만 논설위원실의 최고 책임자로서 사설과 논설기사에 관한 책임만 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사건에 관한 조선일보 사설(8월 31일자)에도 “주필은 편집인을 겸하기는 하지만 사설란만 책임질 뿐 편집국 취재와 보도는 편집국장에게 일임돼 있다. 주필이 취재 기자에게 직접 기사 지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살아왔는데, 송 전 주필 사건이 터진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고 있을까를 의식하게 됐습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취재 현장이나 각종 모임에서 만나온 언론인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게 대단히 놀랍고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나도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고 민망합니다.
 
우편물이나 이메일에 논설위원을 논술위원이라고 쓰고, 주필이라고 말하면 집필로 알아듣는 사람이 많은 터에 송씨는 주필의 존재감을 확실히 아로새긴 셈이 됐습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 터진 이 사건이 정권 차원의 기획이든 언론사와 무관한 개인 차원의 일탈이든 뭐든 언론인들은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주필이 뭘 하는 사람인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했습니다.
 
‘내부자들’을 봤을 때 ‘재미있는 픽션이긴 하지만 과장이 심하고 언론 현실을 너무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어떤 점에서 영화 이상인 것 같습니다. 송씨가 이 영화를 봤는지, 봤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언론인을 어떻게 볼까, 주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면 참담한 기분이 듭니다. 나는 술을 좋아해서 주필을 ‘알코올 펜'(alcohol pen, 酒筆)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런 농담도 이제는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생긴 대로 살 뿐입니다. 누구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또는 억지로 그렇게 살았던 건 아니겠지만 나도 그저 나처럼 살고 있을 뿐입니다. 언론의 정도(正道)를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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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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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218.XXX.XXX.194)
그래봐야
"언론"도 한 패라는 거
야바위꾼에게는 항상 유능한 바람잡이가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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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7 08:22:37
0 0
최석권 (58.XXX.XXX.64)
제가 어렸을 때 60년대,
동네 어귀에서 부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집으로 향하는
술취한 동네 아저씨들 많이 보며 자랐어요.
동네 어귀 술집은 큰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돈없는 아저씨들에게 막걸리 한잔씩도 팔았는데
한잔에 10원이었어요. 물론 안주를 주는데 시래기국으로 기억 납니다.
그 아저씨들은 힘든 막노동꾼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날 벌어 자식들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들이었지요.
그 사람들 처럼 지친 육체와 각종 스트레스 받은 정신을
짦은 시간으로 동시에 회복주는 약은 동서 고금 막론하고
술이 단연 최고입니다.
저는 술을 처음 발명한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야한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저기 이슬람국가들 보세요.
술을 못마시게 율법으로 정하니 그들은 평화와 타협을 모르고
밤낮 전쟁과 테러만 자행합니다.
임주필님도 술을 멀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분들은 일주일에 하루는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야 한다니까요.
단, 이제 부터는 더치페이로 마셔야합니다.
과거 60년대 우리 동네 아저씨들이
자기가 번 10원내고 막걸리 마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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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22:41:54
0 0
임철순 (121.XXX.XXX.123)
"신문기자는 술을 마실 자유와 권리가 있다." 한국일보 창간발행인 백상 장기영 선생의 어록 중 마음에 쏙 드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러나 마지막 한 잔은 참아라"로 이어지는데, 그걸 지키기가 어렵네요. 더치페이는 오히려 지키기 쉬울 듯.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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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6 09:40:33
0 0
최석권 (58.XXX.XXX.64)
더치페이를 쉽게 지키실 수 있다면
주필님은 정말 강인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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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7 21:02:27
0 0
오마리 (24.XXX.XXX.229)
어유~~
신경쓰지 마셔유.
오늘 글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팔님께서 웬만한 일에 온유하고 너그러이 지나가시는데 이런 고민을 하신다니...
주필님 정도면 주필 자격 100% ..
덕망 지식 모두 주필님 같은 언론인 드물것이지유..
제갈공명 임주필님 제가 그 인격 보장합니다
애주가여서 오해 받으실 수 있어도 술 드시고 실수 한번 하신 적 없잖습니까?
저도 내부자 봤는데 그런 언론인도 있을 것이구먼요
그런이들 때매 피해 입는 거 억울하지요
세상이 험악해져서 낭만도 여유도 사라져 간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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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21:15:54
0 0
임철순 (220.XXX.XXX.48)
요즘 술 줄이느라고 애쓰고 있어요. 해마다 술이 더 약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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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21:30:55
0 0
유덕상 (218.XXX.XXX.2)
언론인으로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언론의 순기능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언론이 아직도 '구시대' 잔재가 상당히 잔존하고 있는 몇몇 분야의 하나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고위관료는 이 시대를 견인하는 원동력 입니다. 해방후에는 일제강점기에 권력맛을 본 부류들이 각분야에서 '식민지 청산'을 방해하더니, 민주화이행기 이후에는 똑같은 이유로 '독재체제 청산'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이 저의 지나친 독단일까요? 아무튼 주필이 직업이시라는 임주필님이 세상을 밝히는 멋진 글 한방 날리시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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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5:42:12
0 0
임철순 (121.XXX.XXX.123)
맞습니다. 언론인으로 세상 살기가 참 힘든 세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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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6: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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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119.XXX.XXX.245)
마침 어제 휴일에 영화 내부자를 다시 보았습니다.말씀대로 오버하거나 현실과는 차이가 나는 내용이 많은 영화입니다. 그중에서도 언론인이 과연 영화처럼 사회와 여론에 영향력이 있는 집단으로 남아 있는지가 가장 생각나는 부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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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0:22:51
0 0
임철순 (121.XXX.XXX.123)
다시 보면 저도 그런 생각은 더 들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이후 '주필시대'는 끝났지요. 사실 지금은 전문성 면에서도 언론인들이 일반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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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1:00:29
0 0
김언종 (211.XXX.XXX.161)
酒卒 김모입니다. 酒筆님 오래오래 健筆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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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09:23:10
0 0
임철순 (121.XXX.XXX.123)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지요? 선생님이 늘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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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0:58:07
0 0
정범구 (175.XXX.XXX.182)
역시 임주필님 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고 하지요.
며칠 비오고 난 후라 그런지 하늘이 참 맑군요.
늘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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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09:10:09
0 0
임철순 (121.XXX.XXX.123)
옛말에 '삼긴 대로'라는 게 있고, 이거 정철의 관동별곡에선가 배운 말 같은데 생긴 대로보다 더 적확한 말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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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0:57:22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과거의 애독자>가 우연치 않게
현재의 칼럼 애독자 되어, 댓글까지
달게 되었으니 시간도 꽤 흐른듯
싶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댓글도 열심히 달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글싸움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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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08:15:34
0 0
임철순 (121.XXX.XXX.123)
댓글 주고받는 과정에 더러 불쾌한 일이 있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자유칼럼 필진을 감히 대표하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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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0:56:26
0 0
꼰남 (39.XXX.XXX.176)
임 주필님의 얼굴을 자세히 잘 몰라 잘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생긴대로 사신다는 게 '담연'이고 酒筆이지 않나 싶운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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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07:52:55
0 0
한 팡세 (175.XXX.XXX.69)
주필님 잘 읽었습니다. 솔직히 주필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모든 기사를 총괄해서 검토를 한 후에 신문에 내 보내는 일을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주필은 한 사람이지만 주필이 알코울주필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신문의 내용이 달라 질 것이고, 그 신문을 읽은 독자의 사상이 어떻게 달라질까를 생각하니 새삼 존경이 샘솟듯 합니다. 정말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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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07:11:30
0 0
임철순 (121.XXX.XXX.123)
한때 주필의 시대가 있었지요. 당대의 공론을 펼친 영향력 큰 논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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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10:52:0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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