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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의 전설
허영섭 2016년 09월 08일 (목) 03:54:07

바이칼호의 위용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바람소리만 황량한 유목의 벌판에 길이 636km, 폭 40km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자체가 하나의 축복입니다. 태고 적부터의 온갖 생명체가 깃들이고 있을 테니까요. 가히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릴 만합니다. 지난주 중견 언론인 친목단체인 관훈클럽 탐방단에 합류해 그 모습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묵은 숙제를 해결한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바이칼호가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는 아닙니다. 카스피해(면적 37만1,000㎢)가 담수호가 아니라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이기 때문에 일단 제쳐놓는다 해도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쳐 있는 슈피리어호(8만2,370㎢)가 바이칼호(3만1,500㎢)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바이칼호는 슈피리어호를 포함한 오대호 만큼의 담수를 가두고 있습니다. 지구상 민물의 20%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그만큼 깊다는 것이지요. 최고 수심이 1740m에 이른다고 합니다.
 
바이칼호가 특히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한민족의 기원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대 지역에서 이뤄지는 무속행위가 우리의 전통 샤머니즘과 맥이 통하는 데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솟대나 강강술래와 비슷한 전통춤에서 동일한 문화의 배경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바이칼 주변에 거주하는 브리야트족은 얼굴 생김새가 우리와 거의 흡사합니다. 민속촌에 전시된 웃음 띤 탈바가지의 모습도 그리 낯설지가 않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이 바이칼호를 무대로 펼쳐진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합니다. 일제 식민시절 바이칼호 근처인 이르쿠츠크를 중심으로 고려공산당의 독립운동이 펼쳐졌을 만큼 조선인들의 왕래가 잦았고, 따라서 친숙했던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 백석이 읊은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는 구절도 바이칼 주변의 정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부여와 숙신, 발해, 여진의 자취를 찾아 떠난다는 ‘북방에서’의 한 부분입니다.
 
바이칼에서 우리 탐방단 일행이 묵은 곳이 바로 백석이 얘기한 ‘이깔나무 마을’이었습니다. 현지 이름으로 리스트비안카라고 불리는 아담한 호반 마을입니다. 호수가 북극해로 흘러나가는 안가라강 어귀에 위치한 곳으로, 이르쿠츠크에서는 7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시베리아를 대표하는 나무가 자작나무라고 하지만 이 마을의 이름에서처럼 이깔나무도 곳곳에 밀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낙엽송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리스트비안카에서는 강 한가운데 바라보이는 샤먼바위가 명물입니다. 근처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려고 찾는다는 영험한 바위입니다. 이르쿠츠크 주 정부가 수력발전을 위해 안가라강에 댐을 막으면서 수위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물 위로 솟아난 부분이 상당히 컸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머리 부분만 겨우 드러낸 정도입니다. 수위가 높아진 만큼 호수에 어린 ‘배달의 얼굴’도 변형됐다고나 할까요.
 
민족의 뿌리찾기를 떠나서도 바이칼은 그 자체로 숱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무려 2500만년 전에 호수가 형성됐다고 하니 깃들인 사연들이 며칠 밤의 여정으로 그칠 것은 아닙니다. 스쳐가는 바람으로, 흘러가는 물소리로 그 사연을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들으려고 마음만 활짝 열어 놓는다면 혹독한 변화를 겪으며 거대한 호수를 형성해 온 자연의 생리와 질서에 대한 오묘한 섭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한 시간 남짓 호수를 둘러보았으나 그것으로 전체의 윤곽을 헤아릴 수는 없었습니다. 바다처럼 파도가 거세지 않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호숫가에 모래바닥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 하나의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래도 자갈발일망정 아직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숲속 나무들이 잎사귀를 흩날리는 모습이 바이칼에 벌써 가을이 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한두 달 뒤에는 수면이 얼어붙고 눈보라가 치겠지요.
 
그러나 경치 못지않게 여행길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역시 동반자들 간의 대화입니다. 둘러앉은 식탁에 웃음 섞인 대화가 없다면 음식이 제대로 씹힐 리 없고, 소화가 될 리도 없습니다. 여정의 마지막날 저녁 호텔 카페에서 보드카와 흑맥주를 들이키며 정담을 나누던 기억이 벌써 그리워지는 것이 그런 때문입니다.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어둠이 더욱 깊어지면서 저마다의 별빛이 물결 위에 찰랑대며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바이칼의 전설’이라는 호텔 이름처럼 또 하루 저녁의 전설이 쌓이고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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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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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220.XXX.XXX.208)
결론은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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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9 08:55:49
0 0
자작나무 (221.XXX.XXX.190)
전설은 또
신화가 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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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8 07:44:38
0 0
한만수 (118.XXX.XXX.250)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쓰셨네요. 단군조선 때 시베리아 근방까지 우리 영토 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공감이 가는 내용들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16-09-08 07:19:3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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