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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시계 변천사에 대한 단상(斷想)
허찬국 2016년 09월 30일 (금) 02:38:21

 시계는 중요한 문명의 이기입니다. 우리말로 시계라 통칭하지만 영어(서양 언어)로는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해시계 (sun dial), 물시계 (water clock, clepsydra), 벽이나 탑에 설치하는 벽시계 (clock), 모래시계 (hourglass), 회중시계, 손목시계 (pocket watch, wrist watch) 등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사용되면서 쓰였던 시계 종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 것인데 이것만 보면 시계가 서양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다릅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은 동서고금을 통해 사회·경제·종교적 활동이 복잡해지면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7세기 이슬람교 시작과 함께 매일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 의례가 되며 이슬람 문화권에서 천문학과 시계가 더 발달하게 됩니다. 해시계 외에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장치와 시각을 알려주는 부품들이 계속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배터리로 대체되기 이전 시계는 물, 추의 움직임, 태엽(스프링)이 그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물의 흐름을 활용한 물시계도 해시계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시계의 걸작품은 송나라의 과학자 소송(蘇頌)에 의해서 11세기 말에 만들어진 수운의상대(水運儀象台)였다고 합니다. 황제의 지시로 당시까지의 지식과 기술을 집대성해서 매우 정교하고 거대한 물시계 탑을 수도 카이펑(開封)에 설치했는데, 여진족이 침입하였을 때 이 장치를 해체해 가져갔으나 너무 복잡해 다시 설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5세기 조선 세종 때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自擊漏)가 물시계의 일종입니다.   
  

   

유럽에서는 물시계가 용수철과 추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시계에 밀려 도태되었습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것이 17세기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워덤 칼리지(Wadham College)에 설치되어 실제로 사용되었던 벽시계 장치입니다. 이 장치는 특히 그림 2와 3에서 보는 정교한 중국의 향료, 불시계(incense, fire clock)에 비교하면 고철 덩어리로 보입니다. 이들은 19세기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것인데 향료와 향대와 같은 연료를 태워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향료시계(그림 2)의 경우 정해진 시간 동안 탈 만큼의 여러 종류의 마른 향료를 한옥 창틀문양의 흠에 넣어 불을 붙이면 타는 향의 냄새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매우 낭만적입니다. 한문(漢文)에 능하고 문학적 재능이 많은 분들에게는 한시 몇 소절이 저절로 떠오를 듯합니다. “밤이 깊어 쑥 향시(香時)가 되었건만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고 .....” 등과 같이 말입니다. 
 
 두 번째(그림 3)는 배(龍船) 가운데 가로 칸막이 중앙 상단에 홈이 파여 있습니다. 거기에 향대를 길게 놓을 수 있죠. 그 위로 가로 칸막이에 맞추어 양쪽에 쇠 구슬을 매단 실을 늘여 놓은 후 배의 길이 방향으로 파진 흠에 놓은 향대에 불을 붙이면 타들어가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실을 태워 양쪽에 매달린 쇠구슬을 떨어뜨리고 그때 나는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장치입니다.   
 
 운치가 있으나 이 장치들은 쓰임에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가 감기로 냄새를 못 맡을 수도 있고, 연료를 태우니 습도, 바람의 영향을 받아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전담 인력이 필요할 것이니 보급용 모형은 아니겠죠.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그림 1의 투박한 장치의 후손인 태엽방식의 회중시계가 대량 생산되어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왜 소송의 수운의상대와 장영실의 자격루와 같은 뛰어난 발명품이 널리 쓰이는 실용적 제품으로 개발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집니다. 한 가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경제 분야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절대 왕정이 오래 유지되었던 중국과 한국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은 정부(왕과 조정)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절대 왕정이 일찍 쇠퇴한 유럽에서는 권력이 여러 지역의 정부, 교회(구교 및 신교), 상인, 대학 등 다양한 주체들에 분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평가자, 수요처가 다양해졌습니다. 발명에 대한 지원을 정부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되었고, 완성된 제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자리 잡으며 새 발명품의 개선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근래 세계 양대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아직도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국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지도부 임기가 십년인 것만 빼면 왕조 시대와 닮아 보입니다. 유인 우주선을 괘도에 올리는 과학 수준을 과시하지만 구글 검색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간 노정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자원이 정부와 공공부문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대 일간지 주필 사건이 보여주듯 핵심 민간분야인 언론도 사회의 독자적 일각을 이루기보다 공공분야와 공생하는 관계를 못 벗어나고 있어 보입니다. 이런 모습이 지속되면 시계의 변천이 서양에 의해 결정되었던 역사가 되풀이될 개연성이 커 보입니다. 이미 익숙했던 손목시계가 다양한 기능을 지닌 컴퓨터로 변화하고 있지요. 앞으로 기술발전 과정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집니다.  
 
*사진의 물건은 영국 옥스퍼드시의 과학사박물관 (Museum of the History of Science)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임. 중세 이후 쓰였던 각종 과학적 도구들을 모아 놓은 이 박물관의 소장품 중 하나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1931년 옥스퍼드대학 공개강의 때 판서한 내용을 그대로 보관한 칠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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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220.XXX.XXX.208)
<공공분야와 공생하는 관계>는 괜찮지 않은가요.
빌붙거나 야합을 해서 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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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11:45:12
0 0
허찬국 (168.XXX.XXX.244)
평소에 거리를 두어야 진정한 견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협조와 야합이 보는 사람 시각에 따라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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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12:13:23
0 0
신아연 (119.XXX.XXX.83)
주제가 독특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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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10:21:21
0 0
허찬국 (168.XXX.XXX.24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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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10:45:17
0 1
자작나무 (221.XXX.XXX.190)
칼럼의 논지에 동감합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내용이기도 하고요.
다만 중국과 한국을 절대왕정이라고
규정한 부분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절대왕정은 유럽의 특정한 시기/조건의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혹 저의 착오라면,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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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08:12:53
0 0
허찬국 (168.XXX.XXX.244)
좀 느슨하게 막강한 왕정이라는 의미로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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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10: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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