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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는 변신 중
노경아 2016년 10월 10일 (월) 01:05:51

“공부를 카페에서 했다고? 주변의 대화 소리, 음악 소리, 자동차 소리… 그 산만한 곳에서. 집중이 되니? 공부는 독서실에서 해야지!”
“조용하면 딴생각이 들어 오히려 공부가 안 돼요. 옛날 옛적에 엄마가 했던 공부 방식만을 강요하지 마세요. ‘카공족’이 뭔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엄마는 꼰대 아닌 척하는 진짜 꼰대라고요 꼰대!”
 
며칠 전 작은아이와 나눈 대화입니다. ‘카공족’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랍니다. 시사상식사전에까지 단어가 오를 정도로 카페에서 공부하는 중·고생이 많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 밤늦도록 도서관 자리를 지켰던(‘수학의 정석’을 베고 잠을 잤을지언정!) 필자로선 ‘카페=공부하는 곳’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와 대화를 하며, 세대가 바뀌었으니 공부하는 방식도 변할 수 있지 뭐 하고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그런데 딸은 엄마가 꼰대라는 생각에 변함없답니다.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 위해 신세대 언어를 살피고, 최신 가요의 제목과 가사를 외우는 등 나름 노력을 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아이는 이유를 말합니다. 친구처럼 대해주는 건 잠깐일 뿐, 실상은 명령 훈계 잔소리 등 꼰대짓을 하고 있다고.
 
꼰대는 ‘늙은이’를 뜻하는 은어로, 학생들 사이에선 ‘선생님’으로 통합니다. 번데기의 영호남 방언인 ‘꼰데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주름이 많은 번데기처럼 피부도, 사고도 쭈글쭈글해진 세대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 시대를 주름잡아, 자신의 경험만 옳다고 우기는 불통(不通)의 세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면에서 꼰대는 아재, 개저씨(개+아저씨) 등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참 씁쓸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불통의 아이콘, 꼰대를 떠올리게 하던 ‘아재’들이 변신 중입니다.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젊은 세대와 융화하기 위해 ‘개그’를 뻥뻥 터트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아재 개그’입니다. △어민들이 싫어하는 가수는? 배철수 △모든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숫자는? 다섯 △가장 야한 채소는? 버섯 △지방 흡입의 반대말은? 수도권 배출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돈은? 할머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최저임금, 뭐 이런 식입니다. 하나같이 유치하고 허무한 내용이지만 젊은 세대들은 아재가 던지는 말에 손뼉을 치며 웃고, 따라 하기까지 합니다. 세대 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기특한’ 개그입니다.
 
아재들은 개그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패션, 노래, 댄스 등 ‘아재 문화’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아재는 이제 비난의 대상인 ‘개저씨’가 아니라 정감 넘치는 아저씨입니다. 참 환영할 일입니다.
 
내친김에 아재와 비슷한 아줌마도 좀 살펴볼까요. 예상하신 대로 아줌마는 비칭(卑稱)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모르는 중년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불렀다간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저는 아줌마가 정답습니다만!).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여사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서도 안 됩니다. 아부 잘 떠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아주머니란 호칭이 가장 좋습니다. 아주머니, 아줌마 둘 다 지금은 ‘나이 든 여성’을 뜻하지만 원래 고모나 이모 등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국어사전상의 의미로만 따진다면 아재나 아줌마는 듣는 입장에서 매우 거북한 말입니다. 각각 아저씨, 아주머니의 낮춤말로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나 경상도 등지에선 아저씨, 아주머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로 두루 쓰이는데 말이죠.
  
원래 아재는 아재비, 아저씨와 한뜻으로, 부모와 항렬이 같은 남자를 이릅니다. 또 남남이라도 나이 든 남자를 친근하게 부를 경우 아재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쓰임이 참 다양한 말이네요. 최근 국립국어원은 아버지의 결혼한 남동생만 작은아버지라고 했던 것을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도 작은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고 유권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으니 국어사전도 새로워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 어른을 낮춰 부를 말은 없지 싶어서입니다. 저 또한 사랑하는 딸에게 꼰대가 아닌 멘토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교열팀 차장. 우리말 칼럼인 ‘라온 우리말터’ 연재 중.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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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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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팡세 (118.XXX.XXX.250)
잘 읽었습니다. 꼰데가 읽으니까 실감이 납니다. 아주머니라는 말이 아주 정겹게 와 닿았습니다. 아주머니 때문에 요즘 김재동씨가 뜨고 있잖아요.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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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11: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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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21.XXX.XXX.123)
방송인 김재동을 뜨게 한 아줌마들 앞에는 '정신 나간'이란 표현을 붙여야 할 듯합니다(앗! 그 아줌마들한테 공격당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 의견이니까). '정겹다'라는 형용사는 억척스럽지만 가족과 이웃을 위해 애쓰는 아줌마들에게만 어울립니다. 가정과 마을 골목에, 기업과 나라에 웃음을 주는 아줌마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한팡세님께선 절대 꼰대가 아님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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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14: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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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121.XXX.XXX.50)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말도 변하지요. 사람이 변하는데 그 변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인데 안 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꼰대'라는 말은 어감이 그래서인가, 도무지 변할 생각이 없나봅니다. 아무튼 꼰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말만 바꾼다고 꼰대가 아재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몸에 밴 행동거지가 쉽게 바뀔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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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1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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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21.XXX.XXX.123)
개그 몇 마디 던진다고 꼰대가 꼰대를 벗어날 순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꼰대들도 꿈과 희망이 있던 시절이 있습니다. 험악한 사건사고가 많이 터지는 요즘, 꼰대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ㅎㅎ 꼰대도 좋은 꼰대, 귀여운 꼰대 등으로 나누면 어떨까요. 몸에 밴 행동을 억지로 바꾸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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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14: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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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시 (121.XXX.XXX.123)
부산앞바다(부산압빠다)의 반대말이 부산엄마다라면서요? 어떤 무지몽매한 바다의 보배 아재는 이걸 물었더니 부산뒷바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러니까 부산뒤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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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09: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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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21.XXX.XXX.123)
부산 뒷바다다! 헉! 제게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제가 한 답입니다. 저 역시 아재 개그에 무지몽매한 자입니다. 그리하여 아줌 개그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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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1 14: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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