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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죽는 여자들
신아연 2016년 11월 02일 (수) 04:47:39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내 사전에는 어머니란 자리가 비었다”
 
고승주 시인의 시집 <<가을경전읽기>>에 수록된 시 <사전에서 사라진 단어>의 첫 구절입니다.
 
“이제 어머니를 부르는 일은
멸종된 도도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이나 막막하다”
 
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가을이 깊어감으로 시심(詩心)이 부추겨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 9월에 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심과 동시에 어머니의 이름마저 홀연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멸종된 도도새의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시는 그런 제 마음을  대신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시인은 어머니의 존재 부재를 애달파하고 있지만요.
 
‘顯妣孺人仁同張氏 神位(현비유인 인동장씨 신위)’
 
어머니의 위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현비’란 돌아가신  어머니를 뜻하며, ‘유인’은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에게 사후 붙여주는 경칭입니다.  하지만 원래는 지금의 9급 공무원 정도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정ㆍ종9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쓰던 존칭이지요. 요즘 말로 하자면 ‘여사’ 정도가 될 테지요. 그러니까 ‘현비유인 인동장씨 신위’란 ‘돌아가신 어머니 인동 장 여사 혼령을 모시다’ 이런 의미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위패에는 ‘인동 장씨’라고만 표기되어 있을 뿐 어머니의 이름이 없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죽고 나서 이름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데 무슨 이름을 어떻게 남길 수 있을까요? 도종환의 시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에는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라는 구절이 나오지만 차라리 옷은 못 해 줄망정 살아 평생 불리던 이름은 왜 빼앗아 간단 말인가요? 제 어머니뿐 아니라 조선시대 이래 모든 어머니들이 돌아가시면서 이름을 잃고 '멸종된 도도새'로 화(化)합니다. 존재가 떠나간 자리에 이름마저 떠나니 여자는 두 번 죽는다고 할까요?
 
물론 전통적 유교사회에서 아명 말고는 여자가 정식으로 이름을 가진 예가 거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일반 백성뿐 아니라 사대부나 귀족 계층의 여성들조차 이름이 없거나 안 알려진 경우가 허다하지요. 실옥이란 이름을 쓰던 인현왕후, 민자영(명성황후), 초희(허난설헌), 옥정(장희빈), 인선(신사임당) 정도가 당장 생각나지만 실은 그조차 정확한 게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 아무리 잘났다 해도 여성은 그저 이런 식으로 알려집니다.
   
“안동 장씨(張氏, 1598~1680)는 퇴계의 학통을 전수받은 당대 영남의 거유(巨儒)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 외동딸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 1590~1674)의 부인이며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1619~1672)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같은 묘지에 제 어머니와 성이 같은 인동 장씨 묘가 두 개 이상 들어서지 말란 법이 없고, 묘비에 새긴 글자가 흐려져서 역시 같은 묘지에 잠들어 있는 안동 장씨와 혼동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망자를 뵌 적이 없는 후손들일수록, 아랫대로 내려갈수록 훗날 조상의 묘를 찾는 데 큰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顯考學生府君 神位(현고학생부군 신위)’
 
생전에 벼슬 한 자리 못하고, 배우지 못한 한을 죽은 후 마치 옷 한 벌 해 입혀 풀어주고자 하는 것처럼 관직명과 학생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교 문화의 전통을 거두고 생각해 보면 무척 엉뚱한 발상입니다. 국민들의 학력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 세상에는 학사는 기본이고 석박사도 수두룩합니다. 
 
또한 반드시 벼슬을 해야만 자아실현과 삶의 가치를 구현하며 이른바 출세를 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닌 것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기업인, 의료인, 언론인, 문화 예술인, 스포츠인 심지어 연예인까지 사회적 인식이나 가치관 면에서 벼슬아치에 버금가는, 능가하는 대우와 자부심을 심는 전문직과 직종은 많고도 많습니다. 그러니 기왕 고인에게 예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면 생전에 하던 일과 연관된 직함으로 기록해야 마땅합니다. 그런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자는 맹목적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를 기리는 유교적 전통의 맥락을 살리되 현대에 맞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엄격한 유교사회에서는 부모를 비롯하여 조상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면 현대 사회는 조상들의 이름을 익히고 기억하는 것이 공경과 효심을 표현하는 길입니다. 또한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뜻도 모르기 십상인 한자 지방 대신 한글로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합니다.
 
저는 내년, 어머니 첫 기제사 지방 지에 ‘顯妣孺人仁同張氏 神位’ 대신 ‘돌아가신 어머니 장복환 님을 기리어 모심’ 이라고 써서 어머니의 이름을 되찾아 드리고 싶습니다. 생전의 어머니는 남자 이름 같다며 당신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그래서 위패나 묘비에 드러내기 원치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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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순 (116.XXX.XXX.10)
신아연님 의견 신선합니다. 우리생활속에 있는 풍습과 적용을 심도있게 살피시는 태도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인것 같네요. 좋은글 감사..
답변달기
2016-11-07 06:10:37
0 0
신아연 (119.XXX.XXX.152)
그러니까 그렇다, 원래 그렇다, 이런 생각과 말들 속에 내용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현대의 생활방식과 사고에 비추어 불합리한 것들이 곳곳에 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이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공감해 주시니 감사하고, 공감을 넘어 함께 고쳐나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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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16:42:13
0 0
김종우 (121.XXX.XXX.50)
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돌아가신 분 기리는데 뭔지도 모르고 하느니 안하느니 못하잖습니까. 정말 쉽게 명료하게 잘 쓰셨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장복환 님을 기리어 모심’배워둘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변달기
2016-11-03 12:02:15
0 0
신아연 (119.XXX.XXX.152)
기독교 식 장례에는 고인의 성함을 그대로 올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서양에 기초한 좋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49제를 치렀는데 염불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장장 2시간을 함께 하려니 너무나 지루했습니다. 글 쓸 거리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답변달기
2016-11-06 20:09:08
0 0
김종우 (121.XXX.XXX.50)
아 그러셨군요. 힘드셨겠습니다. 설교도 그렇습니다. 모르는 이야기 30분 들으려해도 힘들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하실지 기대됩니다.
답변달기
2016-11-07 10:31:13
0 0
이점윤 (121.XXX.XXX.106)
잘못해서 3벌이 나갔는데 삭제가 안되네요
도와 주세요
답변달기
2016-11-02 17:43:49
0 0
신아연 (112.XXX.XXX.97)
수정하기를 누르고 비밀 번호를 넣고 하시면 가능한데, 벌써 그렇게 해 보셨을 것 같은데요... 왜 안 될까요?
답변달기
2016-11-03 05:46:33
0 0
이상우 (121.XXX.XXX.106)
조선초 여자 이름 召史가 10%

이 상 우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는 이름이 없이 살았다.
그냥, 할머니 어머니, 혹은 택호라는 이름, 경산댁, 파주댁 등으로 불리었다.
요즘도 아무개 엄마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옛날부터 이름이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양반집은 물론이고 노비도 이름이 있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름이 없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실상과 좀 다르다. 공식 기록에는 윤씨 부인, 진주 댁, 혹은 김 00의 녀(딸)라고만 남아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릴 적부터 불리던 이름이 무엇인가를 거의 알지 못할 뿐이다. 심지어 족보에도 묘의 위치는 있으나 이름은 없다.
조선 후기의 여자 이름은 대개 정순(貞順), 명순(明順), 혹은 정숙(貞淑), 명숙(明淑)으로 불렀다.
해방 전에는 일본식 이름인 자(子)를 붙여 춘자, 명자, 영자, 순자로 불렀다.
그러면 조선조 초기에는 여자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

역사 소설 여러편을 집필한 필자가 여러 자료를 뒤지다가 여자 이름 100여개가 실린 사료를 발견하고 한번 분석을 해보았다. 필자가 집필한 역사 소설 중 하나인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를 쓰면서 찾아본 것인데, 조선 왕조 실록 중에 수양대군이 정적인 남자는 죽이고, 그 가족 어머니, 부인, 딸, 손녀 할 것 없이 여자는 모두 공신들에게 종으로 하사했다는 의금부의 기록을 보았다.
여기에 모두158명의 여자 이름이 나온다. 정적인 양반의 부인이 83명, 딸이 36명이다. 부인중에는 좌의정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의 아내 내은비(內隱非)와 동생 김승벽의 아내 효의(孝義)도 있다. 인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김승유의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아주 특이한 것은 소사(召史)라는 이름이 모든 이름의 10%가 넘는 16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이름자에는 비(非)자가 가장 많이 쓰여 31%인 47자나 된다. ‘비’는 아니라는 뜻을 지닌 글자인데 왜 이 한자가 많이 쓰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가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막비(莫非)라는 이름이 많은데, 없다 아니다라는 말을 겹쳐 써서,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천비(千非), 소비(小非), 대비(大非)에서부터 가은비(加隱非), 소근비(小斤非)까지 있다. 소근비는 작을소자를 훈독하면 ‘작은비’가 된다.
이러한 비(非 )나 막(莫 ) 무(無), 배(背), 물(勿), 미(未), 종(終) 같은 부정적인 한자가 많이 등장한다. 남자 아이가 아니라서 실망해서 지은 이름은 아닐까?
금(今)자도 많이 등장하는데 모두 12%인 19자나 된다.

3자 이름이 있는가하면 4자 이름도 있다. 미비을개(彌飛乙介), 자근아지(者斤阿只), 점물아지(占勿阿只) 같은 4자 이름도 많다.

“점물아지씨 사랑합니다.”
“오빠가 사귀던 미비을개씨는 어쩌구요?”
당시 드라마가 있었다면 얼마나 어색한 대사 였을까?

석을금, 미치, 가구지, 어둔, 복가이, 가야지, 개질지 같은 발음의 생소한 이름도 많지만, 요즘 이름으로도 괜찮을 법한 의정(義貞), 정순(丁順) 같은 이름도 있다. 김종서의 손녀이며 김승규의 딸은 숙희(叔熙)이고 김승벽의 아내는 효의(孝義)이다.
사육신 성삼문의 딸은 효옥(孝玉)이고 박팽년의 아내는 옥금(玉今)이다.

여기에 나오는 158명의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 오빠, 아버지를 잘못만나 남의 노비가 되어서 굴욕적 생애를 이어간 사람이니 ‘좋은 이름’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조선초 여자 이름 召史가 10%

이 상 우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는 이름이 없이 살았다.
그냥, 할머니 어머니, 혹은 택호라는 이름, 경산댁, 파주댁 등으로 불리었다.
요즘도 아무개 엄마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옛날부터 이름이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양반집은 물론이고 노비도 이름이 있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름이 없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실상과 좀 다르다. 공식 기록에는 윤씨 부인, 진주 댁, 혹은 김 00의 녀(딸)라고만 남아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릴 적부터 불리던 이름이 무엇인가를 거의 알지 못할 뿐이다. 심지어 족보에도 묘의 위치는 있으나 이름은 없다.
조선 후기의 여자 이름은 대개 정순(貞順), 명순(明順), 혹은 정숙(貞淑), 명숙(明淑)으로 불렀다.
해방 전에는 일본식 이름인 자(子)를 붙여 춘자, 명자, 영자, 순자로 불렀다.
그러면 조선조 초기에는 여자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

역사 소설 여러편을 집필한 필자가 여러 자료를 뒤지다가 여자 이름 100여개가 실린 사료를 발견하고 한번 분석을 해보았다. 필자가 집필한 역사 소설 중 하나인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를 쓰면서 찾아본 것인데, 조선 왕조 실록 중에 수양대군이 정적인 남자는 죽이고, 그 가족 어머니, 부인, 딸, 손녀 할 것 없이 여자는 모두 공신들에게 종으로 하사했다는 의금부의 기록을 보았다.
여기에 모두158명의 여자 이름이 나온다. 정적인 양반의 부인이 83명, 딸이 36명이다. 부인중에는 좌의정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의 아내 내은비(內隱非)와 동생 김승벽의 아내 효의(孝義)도 있다. 인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김승유의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아주 특이한 것은 소사(召史)라는 이름이 모든 이름의 10%가 넘는 16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이름자에는 비(非)자가 가장 많이 쓰여 31%인 47자나 된다. ‘비’는 아니라는 뜻을 지닌 글자인데 왜 이 한자가 많이 쓰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가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막비(莫非)라는 이름이 많은데, 없다 아니다라는 말을 겹쳐 써서,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천비(千非), 소비(小非), 대비(大非)에서부터 가은비(加隱非), 소근비(小斤非)까지 있다. 소근비는 작을소자를 훈독하면 ‘작은비’가 된다.
이러한 비(非 )나 막(莫 ) 무(無), 배(背), 물(勿), 미(未), 종(終) 같은 부정적인 한자가 많이 등장한다. 남자 아이가 아니라서 실망해서 지은 이름은 아닐까?
금(今)자도 많이 등장하는데 모두 12%인 19자나 된다.

3자 이름이 있는가하면 4자 이름도 있다. 미비을개(彌飛乙介), 자근아지(者斤阿只), 점물아지(占勿阿只) 같은 4자 이름도 많다.

“점물아지씨 사랑합니다.”
“오빠가 사귀던 미비을개씨는 어쩌구요?”
당시 드라마가 있었다면 얼마나 어색한 대사 였을까?

석을금, 미치, 가구지, 어둔, 복가이, 가야지, 개질지 같은 발음의 생소한 이름도 많지만, 요즘 이름으로도 괜찮을 법한 의정(義貞), 정순(丁順) 같은 이름도 있다. 김종서의 손녀이며 김승규의 딸은 숙희(叔熙)이고 김승벽의 아내는 효의(孝義)이다.
사육신 성삼문의 딸은 효옥(孝玉)이고 박팽년의 아내는 옥금(玉今)이다.

여기에 나오는 158명의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 오빠, 아버지를 잘못만나 남의 노비가 되어서 굴욕적 생애를 이어간 사람이니 ‘좋은 이름’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조선초 여자 이름 召史가 10%

이 상 우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는 이름이 없이 살았다.
그냥, 할머니 어머니, 혹은 택호라는 이름, 경산댁, 파주댁 등으로 불리었다.
요즘도 아무개 엄마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옛날부터 이름이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양반집은 물론이고 노비도 이름이 있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름이 없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실상과 좀 다르다. 공식 기록에는 윤씨 부인, 진주 댁, 혹은 김 00의 녀(딸)라고만 남아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릴 적부터 불리던 이름이 무엇인가를 거의 알지 못할 뿐이다. 심지어 족보에도 묘의 위치는 있으나 이름은 없다.
조선 후기의 여자 이름은 대개 정순(貞順), 명순(明順), 혹은 정숙(貞淑), 명숙(明淑)으로 불렀다.
해방 전에는 일본식 이름인 자(子)를 붙여 춘자, 명자, 영자, 순자로 불렀다.
그러면 조선조 초기에는 여자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

역사 소설 여러편을 집필한 필자가 여러 자료를 뒤지다가 여자 이름 100여개가 실린 사료를 발견하고 한번 분석을 해보았다. 필자가 집필한 역사 소설 중 하나인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를 쓰면서 찾아본 것인데, 조선 왕조 실록 중에 수양대군이 정적인 남자는 죽이고, 그 가족 어머니, 부인, 딸, 손녀 할 것 없이 여자는 모두 공신들에게 종으로 하사했다는 의금부의 기록을 보았다.
여기에 모두158명의 여자 이름이 나온다. 정적인 양반의 부인이 83명, 딸이 36명이다. 부인중에는 좌의정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의 아내 내은비(內隱非)와 동생 김승벽의 아내 효의(孝義)도 있다. 인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김승유의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아주 특이한 것은 소사(召史)라는 이름이 모든 이름의 10%가 넘는 16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이름자에는 비(非)자가 가장 많이 쓰여 31%인 47자나 된다. ‘비’는 아니라는 뜻을 지닌 글자인데 왜 이 한자가 많이 쓰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가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막비(莫非)라는 이름이 많은데, 없다 아니다라는 말을 겹쳐 써서,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천비(千非), 소비(小非), 대비(大非)에서부터 가은비(加隱非), 소근비(小斤非)까지 있다. 소근비는 작을소자를 훈독하면 ‘작은비’가 된다.
이러한 비(非 )나 막(莫 ) 무(無), 배(背), 물(勿), 미(未), 종(終) 같은 부정적인 한자가 많이 등장한다. 남자 아이가 아니라서 실망해서 지은 이름은 아닐까?
금(今)자도 많이 등장하는데 모두 12%인 19자나 된다.

3자 이름이 있는가하면 4자 이름도 있다. 미비을개(彌飛乙介), 자근아지(者斤阿只), 점물아지(占勿阿只) 같은 4자 이름도 많다.

“점물아지씨 사랑합니다.”
“오빠가 사귀던 미비을개씨는 어쩌구요?”
당시 드라마가 있었다면 얼마나 어색한 대사 였을까?

석을금, 미치, 가구지, 어둔, 복가이, 가야지, 개질지 같은 발음의 생소한 이름도 많지만, 요즘 이름으로도 괜찮을 법한 의정(義貞), 정순(丁順) 같은 이름도 있다. 김종서의 손녀이며 김승규의 딸은 숙희(叔熙)이고 김승벽의 아내는 효의(孝義)이다.
사육신 성삼문의 딸은 효옥(孝玉)이고 박팽년의 아내는 옥금(玉今)이다.

여기에 나오는 158명의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 오빠, 아버지를 잘못만나 남의 노비가 되어서 굴욕적 생애를 이어간 사람이니 ‘좋은 이름’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조선초 여자 이름 召史가 10%

이 상 우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는 이름이 없이 살았다.
그냥, 할머니 어머니, 혹은 택호라는 이름, 경산댁, 파주댁 등으로 불리었다.
요즘도 아무개 엄마로 불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옛날부터 이름이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양반집은 물론이고 노비도 이름이 있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름이 없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실상과 좀 다르다. 공식 기록에는 윤씨 부인, 진주 댁, 혹은 김 00의 녀(딸)라고만 남아있기 때문에 실제로 어릴 적부터 불리던 이름이 무엇인가를 거의 알지 못할 뿐이다. 심지어 족보에도 묘의 위치는 있으나 이름은 없다.
조선 후기의 여자 이름은 대개 정순(貞順), 명순(明順), 혹은 정숙(貞淑), 명숙(明淑)으로 불렀다.
해방 전에는 일본식 이름인 자(子)를 붙여 춘자, 명자, 영자, 순자로 불렀다.
그러면 조선조 초기에는 여자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까?

역사 소설 여러편을 집필한 필자가 여러 자료를 뒤지다가 여자 이름 100여개가 실린 사료를 발견하고 한번 분석을 해보았다. 필자가 집필한 역사 소설 중 하나인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를 쓰면서 찾아본 것인데, 조선 왕조 실록 중에 수양대군이 정적인 남자는 죽이고, 그 가족 어머니, 부인, 딸, 손녀 할 것 없이 여자는 모두 공신들에게 종으로 하사했다는 의금부의 기록을 보았다.
여기에 모두158명의 여자 이름이 나온다. 정적인 양반의 부인이 83명, 딸이 36명이다. 부인중에는 좌의정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의 아내 내은비(內隱非)와 동생 김승벽의 아내 효의(孝義)도 있다. 인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김승유의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아주 특이한 것은 소사(召史)라는 이름이 모든 이름의 10%가 넘는 16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또 특이한 것은 이름자에는 비(非)자가 가장 많이 쓰여 31%인 47자나 된다. ‘비’는 아니라는 뜻을 지닌 글자인데 왜 이 한자가 많이 쓰였는지 알 수가 없다. 남자가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막비(莫非)라는 이름이 많은데, 없다 아니다라는 말을 겹쳐 써서,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천비(千非), 소비(小非), 대비(大非)에서부터 가은비(加隱非), 소근비(小斤非)까지 있다. 소근비는 작을소자를 훈독하면 ‘작은비’가 된다.
이러한 비(非 )나 막(莫 ) 무(無), 배(背), 물(勿), 미(未), 종(終) 같은 부정적인 한자가 많이 등장한다. 남자 아이가 아니라서 실망해서 지은 이름은 아닐까?
금(今)자도 많이 등장하는데 모두 12%인 19자나 된다.

3자 이름이 있는가하면 4자 이름도 있다. 미비을개(彌飛乙介), 자근아지(者斤阿只), 점물아지(占勿阿只) 같은 4자 이름도 많다.

“점물아지씨 사랑합니다.”
“오빠가 사귀던 미비을개씨는 어쩌구요?”
당시 드라마가 있었다면 얼마나 어색한 대사 였을까?

석을금, 미치, 가구지, 어둔, 복가이, 가야지, 개질지 같은 발음의 생소한 이름도 많지만, 요즘 이름으로도 괜찮을 법한 의정(義貞), 정순(丁順) 같은 이름도 있다. 김종서의 손녀이며 김승규의 딸은 숙희(叔熙)이고 김승벽의 아내는 효의(孝義)이다.
사육신 성삼문의 딸은 효옥(孝玉)이고 박팽년의 아내는 옥금(玉今)이다.

여기에 나오는 158명의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 오빠, 아버지를 잘못만나 남의 노비가 되어서 굴욕적 생애를 이어간 사람이니 ‘좋은 이름’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답변달기
2016-11-02 17: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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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97)
공부 한 번 잘 했습니다.^^

참 흥미롭고 그 자체로 이야기거리이지만, 같은 사람으로서, 여자로서 측은함과 연민과 동정을 금할 수 없네요.

어찌보면 이름 하나에 한 개인과 시대의 모든 것들을 담고 있을진대, 그래서 더욱 그러합니다.

정말 다양하게도 부정적인 이름들이 있었군요. 여자는 사람도 아니라는 자괴감이 새삼스럽게 듭니다.

이렇게 소상하게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 한 편 쓰고 원고료를 대따 많이 받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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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3 05: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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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복 (175.XXX.XXX.75)
시원한 말씀, 속이 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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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17: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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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112.XXX.XXX.97)
공감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변화는 불가피하고 최종적으로는 수용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또 그게 쉽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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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3 05: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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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121.XXX.XXX.106)
참 재미있고 아련한 소재를 감성적으로 쓰신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종년들까지 이름이 있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여자 이름중 '소사'라는 이름이 10%를 차지 했더군요.

*현비유인인동장씨신위의 한자 중에 "妣"자가 빠졌군요.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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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08: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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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210.XXX.XXX.229)
공감해 주시고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상우 선생님 덕에 하나 배웁니다.

'소사' , 그런데 무슨 의미인지요?


탈자 문제는

임철순 주필도 독자들로부터 쪽지를 받았다고 하시네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은.

'내부자'끼리 주고 받은 임주필님의 답변을 대신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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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오늘 배달된 신아연씨의 글 중

‘顯妣孺人仁同張氏 神位(현비유인 인동장씨 신위)’에서

妣(죽은 어미 비)자가 빠진 채 배달됐습니다.

홈페이지나 우리 카페에서는 멀쩡하게 나와 있는 한자가

막상 독자들에게 배달될 때는 없어진 거지요.




이 문제 때문에 수차례 발송업체 측에 항의하고 개선도 촉구했지만

속시원한 해결책을 아직까지 듣지 못했습니다.

아주 생소한 僻字(벽자)도 아닌데 그런 글자도 안 나오니 걱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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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2 13: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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