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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gest loser
신아연 2007년 11월 30일 (금) 09:18:40
요즘 인기 있는 호주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The biggest loser> 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잃은 자, 손해본 자‘ 라는 뜻이지만 무엇을 잃는가에 따라 실은 ‘the biggest winner’ 가 되는 내용입니다. 넌센스 퀴즈 같지만 도대체 ‘손실’을 보면 볼수록 좋은 것에 대한 정답은 바로 ‘살’입니다.

즉 ‘the biggest weight loser’가 되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살이 찐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청 홍 팀으로 나눠 1년에 한 번씩 ‘누가누가 잘 빼나‘ 내기를 하는 겁니다. 남녀 구분없이 100kg 이상, 150kg에서 200kg이 넘게 나가는 출연자들이 몇 달 간에 걸쳐 살과의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눈물겹습니다.

합숙을 통해 헬스 클럽에서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무겁디 무거운 짐짝을 헐레벌떡 뛰어서 비행기에 실어 나른 후 팀원끼리 힘을 합쳐 비행기를 맨 몸으로 끌게 하는가 하면, 돌을 져다 나르고 진흙탕에 뒹구는 모습들은 조금 과장하자면 악명 높던 우리의 ‘삼청 교육대’를 연상케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마치 인간의 모든 본성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출연자들은 뚱뚱한 데서 오는 자기 비하와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며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도 멀리하는 설움을 겪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한마디로 ‘loser’의 삶을 살며 ‘왕따’를 당해온 것을 수치스러워 합니다.

매주 팬티만 걸친 채 산더미같이 출렁이는 살을 저울에 달아 공중파 방송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기왕 결심을 했으니 남보다 더 빼고자 하는 경쟁심과 시기심도 한몫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주 팀원들 각자의 빠진 몸무게의 총 퍼센티지를 양팀이 비교하여 진 팀에서 한 명 씩 강제 퇴출을 당하는 살벌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을 때는 서로 격려하고 팀워크를 형성하여, 무한한 인내심과 도전 정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걸게 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또다른 미덕은 출연자들의 솔직함에 있습니다. 문제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해결의 첫 걸음이라는 말처럼 ‘물만 먹어도 찌는 체질 ‘이라는 등의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먹었다 하면 피자 6판, 통닭 2마리, 도너스 12개 , 여기에 양동이 규모의 탄산음료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위장에 쏟아 부은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유혹을 떨치는 과정을 담담하게 맞이합니다.

평소 즐기던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는 식탁 앞에 서서 유혹을 견뎌 보는 것입니다. 마치 40일 금식한 예수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며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 숙연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도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저속한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 말이죠. 죽기 살기로 살을 빼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단지 그들보다 몸무게가 적게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순간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절대 다수일 테니까요.

개중에는 “저렇게 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저토록 살이 찌기 전에 진작 무슨 대책을 세우지 않고 지금 와서 저 야단이람” 하고 비아냥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몇 달 간의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인간 승리의 산 증인으로 탄생하는 최종 승자는 처음 자신의 몸무게에서 100kg 이상을 버린 ‘반쪽이’로 거듭나 the biggest loser’ 로서 거액의 상금도 받고 원한다면 모델로도 활동하게 되는 인생 대역전을 이루게 됩니다. 그 순간만큼은 감동과 전율 그 자체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한계 상황에 대한 도전적 교훈으로, ‘하면 된다’는 초월적 극기를 눈 앞에서 증명하며 ‘희망의 증거’를 몸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더 자극적인 것은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과정은 고귀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해도 그래봤댔자 그 동기는 고작 살이나 빼자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난리를 친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비만은 게으름 탓이 아니라 일종의 질병이라는 진단도 있지만 왜 하필 그 병은 풍족하기 이를 데 없는 서방세계나 잘 사는 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고질일까요. 같은 병이 제 3세계 국가 등 빈곤한 나라에서는 왜 찾아보기 힘들까요.

결국은 먹을 것이 지천으로 흘러 넘치니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많이 먹으니까 감당 못하게 살이 쪄 버린 것이지 않습니까.

하기야 살 빼자고 목숨 거는 것이 어디 그 사람들 뿐입니까. 살을 빼고 날씬해지기 위해 걷고 뛰고 무거운 것을 일부러 드는 사람들과, 오직 기본 생존과 생계를 위해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온종일 줄창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확연히 대비되는 세상입니다 .

방송에 나온 호주 loser들의 눈물어린 성취를 깎아 내릴 뜻은 추호도 없지만, 너무도 가까운 지구촌 우리 이웃 중에는 기본적인 생계조차 꾸리지 못하는 loser 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블로그 http://biog.naver.com/ayoun63 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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