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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음모론은 안 된다
임종건 2017년 03월 02일 (목) 00:00:26

북한의 대남테러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1968년 1·21사태 때는 김신조를,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파사건 때는 강민철을 남겼습니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에서는 김현희(위조된 일본명 하치야 마유미)를 남겼고,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때는 저인망 그물에 북한이 쏜 어뢰가 걸려나왔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는 물론이고 북측의 덮어씌우기 책동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김신조는 29명의 특공대원 중 유일하게 생포된 생존자였습니다.

그의 생포 직후 일성이 “박정희 목을 따러 왔수다”였습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국군복장을 한 그들이 국군 내 반란군이라는 북한의 적반하장에 우리 사회는 한동안 혼란했을 것입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은 김현희라는 폭파범이 잡혀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20년도 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재조사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재조사는 당시 정부가 대선 승리를 위해 꾸민 자작극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발상 자체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아웅산 폭파사건도 폭파범 강민철이 미얀마 당국에 체포되지 않았고, 서울대를 나온 한국인이라고 신분을 위장했던 그가 심경을 바꿔 사건 전모를 자백하지 않았더라면 북한의 덮어씌우기에 휘둘려 우리 사회는 오래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천안함 폭침사건과 관련해선 민간어선의 저인망 수색에 기적처럼 걸린 북한 어뢰의 진위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적반하장은 6·25북침설부터입니다. 휴전 이후 최초의 전쟁도발 행위에 해당되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마저도 남측이 북한 영해를 침공한 데 대한 자위적 조치였다고 강변했습니다. 민간인이 희생된 것에 대해 군부대 인근에 인간방패를 형성한 대한민국의 비인간적인 처사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북한이 순순히 범행을 시인, 사과한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1996년 9월의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북한 해군의 잠수정이 강릉 앞바다에서 작전 중 저인망에 걸려 좌초하자 26명의 승무원이 상륙해서 북상하면서 피아간에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남긴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북한군 중 유일하게 이광수가 생포돼 사건의 증인이 됐습니다.

이 때 북한군이 옥쇄작전이 아니라 순순히 투항했더라면 정황상 전원이 송환됐을 것입니다.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와 유감표명,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 후의 무수한 도발로 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공항에서 지난달 13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북한의 공작원들에 의해 독살됐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베트남 여인과 인도네시아 여인 각1명과 말레이시아 거주 북한인 1명이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한 8명의 북한인들 중 4명은 이미 평양으로 도주했고, 2명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나머지 1명도 말레이시아 내에서 은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달아난 주범들을 잡을 수 없는상황이라 사건의 전모를 규명하는 데에는 상당한 난관이 예상됩니다.

VX라는 유엔이 지정한 대량살상무기이자 상업용 제조판매가 금지된 화학무기를 개인 살상용으로 썼다는 점에서 화학무기금지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북한의 소행임이 한층 명확해지긴 했으나 주범이 잡혀야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점에서 김정남 암살사건은 북한의 잡아떼기 외에 우리 내부에서 음모설의 소재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강철은 이미 이 사건이 한국과 말레이시아 합작의 모략극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의 이런 억지는 남한을 향해서 써먹던 상투적 수법이지만 말레이시아에선 통할 리 없습니다. 그의 억지 주장은 범행이 북한 소행임을 스스로 입증했을 뿐입니다.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며 격분한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과의 단교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남의 얼굴에 VX를 바른 베트남 여성 흐엉이 범행 3개월 전 제주도를 다녀갔고, 한국인 친구가 많다는 것은 한국기관의 개입 정황을 만들기 위한 알리바이 용도로 보입니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김정남의 한국망명을 유도했다는 소문 또한 범행의 합리화 차원에서 의혹제기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 조짐을 보인 것이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국정자문단 공동위원장인 그는 김정남 암살사건에 대해 “우리가 비난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며 “형제간이 죽이고 죽는 일이 인권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그런 생각의 근거로 박정희 정부 때의 김대중납치, 김형욱암살 사건, 이승만 정부 때의  김구 암살, 심지어 조선조 단종 애사까지 예로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깨어 있는 시민들로 인해 어떤 권력자도 그런 불법무도한 인권유린을 시도할 꿈도 꿀 수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집권 이후 70년이 넘도록 3대 왕조체제를 지속하면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겨왔습니다. 집권 5년여 동안 김정은이 죽인 고위층 인사만도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100명이 넘고, 마침내 혈육을 대낮에 외국의 공항에서 암살하는 지경에 이르러 잔혹성을 날로 더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면서 걸핏하면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합니다. 김정은의 비인도적 행위를 규탄함에 있어 우리만큼 절박한 나라가 따로 있단 말입니까? 문명국가의 가치관을 북한의 야만성과 동렬로 취급한 그의 발언은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그의 그 같은 생각은 필시 적대 상대인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겨냥한 1·21사태나 아웅산 사태도 막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지 북측을 비난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의 발언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진보세력들은 ‘종북몰이’라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북한의 무법통치에 눈을 감는 세력이 있는 한 김정은은 결코 자신의 과오를 고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안의 그런 세력이야말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남북이 화해할 길을 가로막는 세력이라고 봅니다.  북한을 도울 일은 돕더라도 북한의 분명한 잘못에 대해 분명한 하나의 목소리로 규탄하고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야 북한도 변한다고 봅니다. 김정남 암살이 남남갈등의 소재가 되어 김정은 정권을 고무, 찬양하는 결과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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