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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식 편 가르기를 규탄하며
이성낙 2017년 03월 09일 (목) 04:50:34

꽤 오래전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겪은 우화와도 같은 일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하루는 한 교무위원과 함께 차향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그가 문득 외부에서 떠도는 이야기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내용인즉 필자가 ‘마피아단’을 이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길 듣고 필자가 한 기관의 책임자로서 전체를 못 본다는 의미이려니 자책하며 넘어가려는데, 그게 필자가 나온 B고교의 ‘집단’을 칭하는 것이랍니다. 황당했지만 그때는 언급할 가치가 없어 별다른 대응 없이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몇 주 후 학교법인의 Y 이사장이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귀띔하듯 가볍게 한마디 했습니다. “‘B고교 마피아’ 이야기가 돌아다니던데 혹시 들으셨습니까?” 순간 필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대답했습니다. “B고교 출신이 150여 명의 교수를 포함해 1,500명의 교직원 중 몇 명인지 아십니까? 저를 포함해 단 3명에 불과합니다.” 그러자 이사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나온 K고교 출신 교수가 대학 행정 요직에 꽤 포진해 있다는 걸 누구나 알기에 더욱 곤혹스러웠을 테지요. 필자는 당황해하는 이사장에게 덧붙였습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런 말을 건넨 사람을 경계해야 할 겁니다.”

돌이켜보면 ‘마피아(Mafia)’라는 단어가 유럽 사회에 떠오른 것은 저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대부(The Godfather)>가 1970년대 초 영화관에서 방영되면서부터 아닌가 싶습니다. 그 전까지 유럽 사회에서 마피아는 서로 ‘소곤거리는’ 수준의 단어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단어에 속합니다. 위의 에피소드가 있던 당시 필자는 사람들이 그런 단어를 거침없이 쓰는 게 매우 거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작금의 우리 사회는 마치 ‘마피아 집단 증후군’에 휘말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수준으로 말입니다. 필자는 ‘편 가르기 심리’가 그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1964년의 동경올림픽에 국력을 쏟아부으며 준비하던 때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당시 일본은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해 고속 전철의 새로운 개념인 신칸센(新幹線)을 건설했습니다.

전 세계는 일본의 신칸센에 놀라워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럽 언론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가 실리곤 했습니다. 신칸센의 노선을 일본 정치계 거물의 입김에 따라 그의 지역구를 지나가도록 설계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렇게 언론은 한동안 ‘비아냥거림’거리는 특파원 기사를 싣곤 했습니다. 이른바 ‘마피아 정치’의 행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그 무렵 필자는 언론 매체를 통해 일본 정치계에 기시파(岸派, 岸信介, 1896~1987)니 다나카파(田中派, 田中角榮, 1918~1993)니 하는 계보 정치가 횡행(橫行)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일제는 우리 선조들이 파벌 싸움을 하느라 나라를 망쳤다고 했는데….’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정치 이념에 따라 다양한 정당이 있지만, 그 당내에 ‘누구누구 파’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의 이름이 붙은 계파로 공식화해 언론에 노출된 경우를 한 번도 못 보고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친(親)아무개 파’, ‘반(反)누구 파’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정치인들이 ‘파벌 정치’를 스스럼없이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 파벌에 따라 소속 정당을 쉽게 걷어차고 나갑니다.

참으로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 풍경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오염시키고 있는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편 가르기’에서 시작해 검은 힘이 스며 있는 ‘마피아 증후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그런 와중에 필자는 우리의 사회 현실을 창작 예술로 ‘우아하게’ 비판하는 예술 작품을 만났습니다. 바로 며칠 전 본 전시회에서 만난 작품입니다. 국내외 전시를 통해 이미 조형 미술가로서, 특히 개념(conceptual) 예술가로서 부동의 자리를 구축한 안규철(한국예술종합학교, 1955~ ) 교수의 전시회라 찾아가는 발길이 무척이나 가벼웠습니다. 전시명이 ‘당신만을 위한 말’이라 더욱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참고: 전시회는 서울 국제화랑에서 3월 31일까지.)

전시 작품 중 별난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한 묶음으로 서 있는 것이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작품은 두 개의 자전거 몸체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 대에는 분명 두 바퀴가 있는데, 안장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충돌을 불사하는 타협 없는 양측의 돌진만을 위해 각기 페달을 죽어라 밟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자전거 역시 바퀴 두 개를 가진 몸체에 핸들 두 개가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공통분모는 자기주장만 있을 뿐 타협은 없다는 메시지였습니다.(사진 자료 참고)

 
사진: <Two Bicycles>
안규철의 작품, 2014.

Photo by: Keith Pa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문득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7~1101)가 당나라 왕유[王維, 699~759(추정)]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 시로 그림을 그리고[시중유화(詩中有畵)]라 했으며, 왕유의 그림을 보며 화가는 그림으로 시를 쓰다[화중유시(畵中有詩)].”라 한 명구가 떠올랐습니다. 작가 안규철 역시 자신이 본 작금의 사회상을 조형시(造形詩)로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지 싶었습니다.

작품에서 우리의 사회상을 관조하는 작가의 진솔한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작가는 우리 사회를 개념적 조형예술로 예리하고 격조 있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필연코 극복해야 할 ‘마피아식 편 가르기’ 같은 현상으로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지 강하고 준엄하게 ‘규탄’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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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21.XXX.XXX.190)
편가르기는 <힘 있는 자들>이
벌이는 일이지요. 그들만의
잔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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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9 08: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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