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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신아연 2017년 04월 11일 (화) 00:00:19

도스또예프스키의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아, 세상에! 저들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아십니까! 종이 한 장 써내는 일이 뭐가 그렇게 힘들겠어요? 어떤 때는 하루에 다섯 장 정도 쓰는데 한 장에 3백 루블이나 받는다는군요. 뭐 좀 재미있는 콩트나 웃기는 이야기를 쓰면 5백 루블도 받고, 달라, 못 준다, 아무리 저쪽에서 억지를 써도 이쪽에선 큰소리를 탕탕 친다는 거예요. (중략) 자작시를 써놓은 공책도 한 권 있는데 시라고 해봤자 다들 짤막짤막하더구만, 그는 노트 한 권에 7천 루블이나 달라고 한다더군요. 그만한 돈이면 웬만한 영지나 커다란 집 한 채 값이죠.”

<가난한 사람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궁색한 늙은 하급 관리와, 그에 못지않은 가난으로 인해 돈 많은 지주에게 팔려서 시집가는 가련한 처녀가 주고받는 편지체 소설입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24세 무렵, 본인 스스로 하급관리로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돈 때문에’ 이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낸 소설이 대히트를 하면서 그는 일약 스타 작가가 되어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문학의 길을 가게 되는 행운을 얻습니다.

 ‘러시아가 낳은 악마적인 천재’, ‘도스또예프스키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등, 그에 대한 화려하고 웅대한 수식어의 이면적 실상에는 돈, 그것도 생계를 위한 절박한 돈 문제가 똬리를 튼 뱀처럼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대책 없는 소비와 도박 빚에 허덕이는 도스또예프스키의 못 말리는 낭비벽이 근본 원인이었지만 그렇게 돈에 쫓기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 위대한 작가가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은 어떤 식이건 ‘무죄’인가 봅니다.

만약 당시 상황이 지금처럼 글이 큰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때였다면 세계적 대문호 도스또예프스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글재주가 아무리 탁월했다 해도 그것이 돈이 안 된다면 그는 돈이 되는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의 육필 원고지 사방 여백 곳곳에는 작은 숫자와 덧셈, 곱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매당 원고료를 계산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글은 수단이고 돈이 목적이 되어 틈틈이 돈 계산을 하면서 원고지를 메우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몇 장 썼으니까 얼마 벌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국민으로서 최고의 선행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돈벌이를 잘 하는 것”이라는 말이 <가난한 사람들>에도 나오지만 그의 소설에는 유난히 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걸로 보아 이래저래 도스또예프스키는 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입만 열면 돈 타령이요, 매사 돈을 밝히며 궁기에 쩐 대문호의 민낯을 대하기가 어색하고 민망하지만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공무원 봉급으로는 무분별한 소비 습관을 감당할 수 없어서 소설가의 길로 가야 했던 도스또예프스키와, 비록 쥐꼬리 월급일지언정 말단 공무원이 되기 위해 쓰던 소설도 집어치워야 하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더구나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로 글 쓰는 일이 꼽혔다는 것은 아무리 시대와 공간이 다르다고 해도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저는 지난해 말 소설 한 권을 내고는 얼결에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스또예프스키처럼 러시아 작가도 아니고, 독서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1800년대 글쟁이도 아니니 소설을 써서 돈을 벌기는 애초 글렀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 가구당 서적 구입비는 24%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영화, 여행, 맛집 등에 쓰는 돈은 안 아깝지만 책을 사는 데는 지극히 인색하다는 의미입니다. 성인 3명 중 1명은 1년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3명 중 2명이 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만. 틈만 나면 스마트 폰과 인터넷 서핑,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매달려 거기서 재미를 찾으니 책을 읽을 시간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참고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 국민들의 월평균 독서량은 10권, 미국 6.6권, 일본 6권 수준입니다. 선진국이 달리 선진국이 아닌가 봅니다.

우리나라 독서 현실에서는 글을 쓰면 쓸수록, 책을 내면 낼수록 가난해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계속 쓰고 싶다면 밥벌이 수단을 달리 강구해야 합니다. 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이 두 명제가 마치 죽느냐, 사느냐의 다른 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언감생심 도스또예프스키를 부러워할 수는 없고, 그저 시절 인연을 탓할 수밖에 없겠지만, 모두들 책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는 사실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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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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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숙 (112.XXX.XXX.150)
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선생님 염려하지 마시고 두 가지 다 공생하십시오.
선생님 책을 읽어주는 독자가 여기 한 명 있으니까요.
힘내시고 좋은 글, 계속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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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08:10:49
0 0
박연철 (125.XXX.XXX.208)
지난번에 펴 내신 책 구입해서 잘 읽었습니다.
제가 독후감을 말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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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3 07:35:09
0 0
이용웅 (1.XXX.XXX.60)
좋은 작가들이 글만으로도 먹고 살수 있는 날이 와야 선진국인데 그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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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10:26:20
1 0
신아연 (125.XXX.XXX.208)
선진국이란 바로 그런 나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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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20:44:58
0 0
꼰남 (220.XXX.XXX.208)
각오하고 그 길로 들어섰는데
그래도~ 싶으신 모양이로군요.
누구든 글을 써서 돈을 번다면
이 세상은 책 만큼 글 만큼
부자들이 넘쳐나지 않을까~요?
글과 책은 마음의 부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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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2:08:26
1 0
신아연 (125.XXX.XXX.208)
부자를 바란 건 아닌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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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08:58:51
0 0
김종우 (121.XXX.XXX.50)
헝그리 정신이 일을 하게 만듭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일단 배가 불러야 다른 것이 생각날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 절박한 심정이 정신에 불을 당깁니다. 꼭 글만 그렇겠습니까? 운동하는 사람, 연기를 하는 사람, 직장 다니는 사람도 밥줄 끊어질까 두려워 기를 쓰고 일합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하기 힘드네요. 시대의 차이인지 지역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글이 돈을 만든다? 정말 그런 시대, 그런 동네 살고 싶습니다. 아무튼 절박함이 필요하기는 하지요. 그래야 작품이 나옵니다. 우리의 글이 아직도 수준 이하라면 그 절박함이 부족한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요즘 정말 책들 안 읽습니다. 시간이 없나요? 시간을 안 쓰는 건가요? 당장 돈이 되지 않아서 그런가요? 사실 독서는 장기 투자인 셈이지요. 길게 사는 사람에게나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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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11:33:10
0 0
신아연 (125.XXX.XXX.208)
작품을 쓰는 사람은 물론 절박해야 하지만, 그렇게 나온 작품이 처음부터 외면 당하는 현실은 또 다른 일이니까요.

책을 이렇게 안 읽었다가는 정신이 붕괴되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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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09:00:27
0 0
이종완 (125.XXX.XXX.208)
신아연 선생님의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밥 먹는 것이 중요 하지만 글 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계속해 글을 많이 쓰셔서 독자들의 양식이 되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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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09:15:51
1 0
신아연 (125.XXX.XXX.208)
어차피 그것 밖에 할 일도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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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09:01:03
0 0
홍성남 (220.XXX.XXX.163)
공감합니다.
저도 10권의 책을 썼는데 참 돈이 안되네요.
많이 가난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 두끼만 먹습니다.
그래도 써야지요
많이 쓰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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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1 07:34:31
1 0
신아연 (125.XXX.XXX.208)
아, 선생님 말씀 정말 가슴 아픕니다. 저도 10권까지 썼다간 두 끼 먹게 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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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09:01:4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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