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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창식 2017년 04월 19일 (수) 00:05:23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라틴 3인조 로스 트레스 디아망테스가 부른 <루나 예나(Luna Llena·滿月)>의 사랑스런 우리말 번안 제목이에요. 몽환적인 이 노래는 푸른 달빛 아래 기억의 편린으로 남은 옛 연인을 회상하는 비가(悲歌)입니다. 시인이자 독문학자인 김광규는 동명의 제목을 따와 쉬운 일상어로 시를 지었어요.

'4·19가 나던 해 세밑/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사는 4·19 세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이 시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 대한 투철한 참여 의식을 갖고 있던 세대가 나이가 들며 현실에 길들어 가는 안타까운 모습에 대한 회한을 토로합니다.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인 화자와 친구들은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묻고,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모두가 그저 ‘살기 위해 사는’ 것이에요.

1960년 4·19가 나던 해 중동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날 학교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어린 마음에도 수상했답니다. 선생님들이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오갔어요. 운동장에는 씨알 굵은 고등학교 형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고요. 중앙청 앞을 지나오는데 탱크가 진을 치고 있고 총을 멘 군인들이 서 있더라고 친구가 전해주어 그런가보다 했죠. 뒤이어 내려진 휴교령에 철부지들은 멋모르고 신바람이 났지요. 그날이 우리 현대사에서 그토록 숭고하고 장엄한 날이었을 줄이야! 어쨌거나 나는 아직 어렸고, 그때 현장에 없었습니다.

4·19 세대는 사회의 중심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몇 살 어린 세대인 우리 또한 줄줄이 은퇴한 채  노년의 중턱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지공거사’를 들먹이며 지하철 공짜 탑승이 편하더라는 친구도 있지만, 뿌듯하다기보다 한숨 섞인 자조이겠지요. 지역 동창 모임에라도 가면 전과 달리 골프나 주식, 건강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고요. 주변 정세라든가 나라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핏대를 올리기는커녕 심드렁합니다. 그런 류의 이야기에 날을 세워봐야 '영양가 없음'을 잘 알거든요. 아니, 이 모든 것이 그저 귀찮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깨작깨작' 늙어가고 있어요. 그것도 단체로, 누가 뭐래도.

4월은 끼인 달, 이도저도 아닌 달이에요. 봄의 시작을 반기는 3월과 계절의 여왕인 5월 사이에 끼여 갈피를 못 잡는 달이죠.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시인도 있지만(T/S 엘리엇), 4월이 되면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누구엔가 빚진 것만 같은 부채의식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다른 한편으로 그 감정이 박제가 된 채 점점 퇴색해가는 듯해 또 그것이 불안하고 두려워 뒤엉킨 마음이 됩니다.

4월의 끝에서 계절의 순환을 생각합니다. 4월은 당연히 5월로 이어지겠죠. 올해도 내년에도, 또 그 후에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렇더라도 나는 또 곤혹스러움에 잠길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현장’에 ‘부재’했으니까요. ‘현장부재’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증명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방조적인 책임까지 면해지는 것은 아닐 거예요. 1960년 그해 4월에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으니 너무 어렸고, 1980년 그해 5월에는 대기업 주력 회사에서 새내기 과장으로 갓 승진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것도 결혼을 앞둔.

 
*오랜만에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관심과 배려에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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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안 (181.XXX.XXX.193)
공감이 가는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함께 이문동 동산을 밟았다는 정도 느끼면서 읽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앞에 닥친 현상이 한탄스러워도 그게 역사 흐름의 한 장면이겠지 싶어, 이제는 핏대를 덜 세우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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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23:12:42
0 0
김창식 (1.XXX.XXX.69)
이문동 미네르바 동산의 추억!
반갑습니다, 고부안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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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2:09:27
0 0
정범구 (175.XXX.XXX.182)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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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13:06:17
0 0
김창식 (1.XXX.XXX.69)
정범구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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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17:30:48
1 0
꼰남 (220.XXX.XXX.208)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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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09:53:58
0 0
김창식 (1.XXX.XXX.69)
잊지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꼰남'님이 아니셨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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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9 17: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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