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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국 논란과 피아니스트
이성낙 2017년 05월 01일 (월) 00:01:47

오래전 오스트리아의 에세이스트(essayist)로 이름을 남긴 마리 폰 에프너-에셴바흐(Marie von Ebner-Eschenbach, 1830~1916)의 글이 생각나는 요즈음입니다. 그녀는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면 할수록, 너는 너 자신의 적이 된다(Je mehr du dich selbst liebst, je mehr bist du dein eigner Feind)”고 자신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에고이스트의 폐해를 우려했지만, 이는 민족이나 국가에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즉, 20세기의 역사적 재앙인 나치 국수주의(Nazi nationalism)를 예견이라도 한 듯합니다.

그런데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미국과 중국 수장들이 한반도의 역사성을 놓고 오간 대화 내용은 新내셔널리즘(neo-nationalism)이 다시 살아나는 불씨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도대체 다른 나라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이미지가 어떻기에 우리는 이 같은 ‘수모’를 당하고 있을까 자문해봤습니다. 우리는 그 기나긴 교육과정에서 어떤 역사교육을 받아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질문을 얼마 전에 던졌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독일에서 열린 2015년 한독(韓獨) 포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자유 시간에 참석자들이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거기서 당시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간의 시사 문제를 놓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성 참석자가 뜬금없이 “한국은 예로부터 중국의 속국이어서”라며 대화를 이끌어나갔습니다. 필자나 한국 참석자가 듣기 거북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태도였습니다.(참고로 그녀는 중국에서 발해 문화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함께 자리한 前 주한 독일 대사가 필자의 얼굴을 살피면서 더욱 당혹해하는 표정으로 답할 차례가 아니냐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는 한국 참석자 중 필자가 가장 연장자였기에 잠시나마 곤혹스러웠습니다. 전체 분위기가 어색하게 돌아가고, 긴장감마저 감돌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필자가 나섰습니다.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에 있는 한국은 결코 독일, 영국, 프랑스처럼 국토가 넓지 않아 대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럽에도 작은 나라가 있으며, 이웃 대국과 수없이 분쟁한 역사가 많다. 특히 근현대사의 한 단면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인 핀란드가 승전국인 구소련(Soviet Russia) 군대의 영토 진입만은 막겠다는 일념 아래 전후 배상금 차원에서 많은 해군 전함을 건조해 소련에 납품했다고 들었다. 귀하의 논리라면 다름 아닌 ‘조공’인 셈이다.

지난 2,000년간 한국과 중국은 정말 지겨울 정도로 많은 전쟁을 했다. 고구려(BC 37~AD 668)는 중국과 700년간 일곱 차례나 큰 전쟁을 치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 한국은 살아남았다. 덩치 큰 중국의 침략과 등쌀 속에서 나름대로 지혜롭게 버텨왔기에 우리는 고유한 문화를 창달할 수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서 속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000년 넘는 시공간에서 일본 강점기를 제외하곤 한반도가 항상 ‘병권(兵權)’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1420년에 지은 중국의 자금성(紫禁城)보다 25년 앞선 1395년에 경복궁을 건축했다. 여러분이 서울에서 본 경복궁 앞의 큰 도로인 광화문 도로 또한 그때 조성한 거리인데 당시 ‘육조(六曹)거리’라 불렀다. 육조란 나라의 정무를 맡아보는 여섯 관부로, 육조거리라 함은 중요한 정부 청사가 몰려 있는 중심가라는 뜻이다. 육조 중 하나가 병조(兵曹)인데, 이곳에 오늘날 국방부(Ministry of Defence)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귀하가 언급한 속국이라면 어떻게 ‘국방부’를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좌중은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로 돌아섰고, 참석자들은 무언의 동의를 필자에게 보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이상하게도 문득문득 피아니스트 한동일(韓東一, 1941~)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동일 씨는 1950년대 혜성처럼 나타난 음악 신동으로 당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우리 모두의 선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희망이란 단어조차도 까마득히 잊고, 황량하고 삭막한 분위기에서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들게 살던 시대에 세계적 음악 영재로 두각을 드러내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니 우리 모두의 우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출국을 축하하는 음악회가 성대히 열렸고, 온 언론 매체가 이를 보도하며 떠들썩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대리 행복감에 푹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필자가 독일 유학 생활 초창기에 클래식 음악에 대해 독일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의 저명한 음악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네들은 일본, 중국, 한국인 음악가의 이름이 생소하다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자체가 실례가 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때 필자는 자신 있게 피아니스트 한동일의 이름을 거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며, 몹시 미안해하는 것입니다. 순간 필자는 당황하기보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오랫동안 필자의 뇌리(腦裏)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기도취의 폐단을 본 것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에서 新내셔널리즘이 날개를 펴는 양상을 보며 덩치 큰 나라들이 자기도취란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은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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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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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트리 (221.XXX.XXX.190)
강대국의 입김은 엣날이나,
지금이나.....
추신/ 무슨 연고 인지
모르나, 자작나무에서
파인트리로 개명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댓글 올리겠습니다.
답변달기
2017-05-01 08:53:17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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