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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운명이 순식간에 바뀐 67년 전 그날
황경춘 2017년 06월 16일 (금) 00:16:09

그날은 초여름 햇살이 약간 따갑게 느껴질 정도의 평화로운 일요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모처럼의 직장 소풍으로 해운대 해변 모래사장에서 각종 야외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직 해수욕장은 개장돼 있지 않았습니다.

30명에 가까운 일행 중 남자들은 시원한 바닷바람에 땀을 식히는 사이 여직원들은 준비해 온 소풍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순찰 중이던 경찰관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누던 인솔자가, 갑자기 떠날 준비를 하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약간 긴장된 표정에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일행은  타고 온 버스로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부산을 상징하는 각종 고층 건물, 현대식 문화시설과 대형 상가, 그리고 아름다운 백사장의 해수욕장으로 연간 수백만이 찾는 관광명소인 해운대이지만, 당시는 부산 중심지에서 차로한 시간 정도 걸리는 불편한 변두리였습니다.

오랜만의 소풍을 갑자기 중지하게 된 이유는 버스에 올라타자 곧 알게 되었습니다. 이날 새벽 38선을 넘어 북한군이 대규모 남침을 시작했다는 인솔자의 설명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부모를 떠나 혼자 부산에서 직장에 다니던 필자에게 한국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주위 분위기가 일순간에 돌변하였습니다. ‘북진통일’을 입으로만 외치던 이승만 정권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북한군의 침공에 속수무책, 중앙정부는 대전, 대구를 거쳐 한반도 동남단 끝 부산으로 쫓겨왔습니다.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신속한 조치로 국제연합 사상 최초의 UN군이 창설되어 미국을 주축으로 16개 회원국이 UN 깃발 아래 한국전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공산군을 막지 못하고, 북쪽의 대구와 남쪽 부산 두 도시를 중심으로 한 소위 ‘부산 반경(Pusan Perimeter)’ 사수작전(死守作戰)의 수세(守勢)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국토의 3분의 2를 개전 3개월에 공산군에 점령당한 대한민국은, 연합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탁월한 전술로 역사에 남는 인천 상륙전에 성공하여, 이해 9월 28일 서울을 완전 탈환하는 등 일대 공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평양까지 함락시켰던 연합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면적 후퇴를 하여 옛 38선과는 다른 새로운 남북 경계선이 생기고, 1953년 7월 27일의 휴전협정으로 현재의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었습니다. 아직도 남북 분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고, 북한을 도와 온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미국에는 ‘미국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 대북전략에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이웃 일본은 북한의 도발에 맞서 재무장을 공공연하게 진행하는 등, 대한민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현재 동북아시아 정세는 한국전쟁 이래 어느 때보다 불안정해졌습니다.

달력을 보니, 올해 6월 25일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67년 전의 평화스럽던 그날 오전의 해운대 소풍과, 순식간에 행복이 무너지고 고난과 불안의 나날이 계속된 휴전까지의 3년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일제강점 시에 태어나, 식민지 생활의 온갖 고초와 일본군 징병의 쓰라린 경험까지 겪은 90줄 중반의 이 늙은이는, 희망에 부풀었던 조국 광복의 기쁨 속에 제2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이념 갈등과 경제 불안 속에 새롭게 탄생한 대한민국 정부가 겨우 자리를 잡으려는 참에 터진 한국전쟁이었습니다.

그 후 독재, 민주화 투쟁의 악순환 속에 살아남기는 했지만, 아직껏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현실에 안주하는 내공을 쌓지 못한 저 자신의 불찰을 탓해야만 할 것인지 곰곰이 자문(自問)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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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 (14.XXX.XXX.165)
황선생님 글을 읽으며 저도 그 때 일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젊은 세대 사람들이 표출하는 황당한 역사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625 사변의 발발을 남한 사람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따라서 미리 대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승만 정부의 무능과 부폐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해방된 뒤 북한은 한반도의 신탇통치를 주장했고, 그 저의는 신탁통치를 빙자하여 스탈린 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할려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국남한은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이 총선거를 실시하여 하나의 통일된 자주 정부를 수립할 것을 원했으나 북한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폭력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려는 스탈린과 조금은 펴와적인 모택동의 지원을 받고 일요일 세벽 38선 전역에 걸친 대규모 전쟁을 도발하고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 왔습니다.상상조차 못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김일성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후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왔고 또 각고의 노력과 도움으로 잘 살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남한에 대해 한번도 전쟁을 도발하고 동족을 샇상하는 대규모 전쟁을 이르킨 것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사과는 커녕 오히려 진실을 숨기고 북한 인민들을 속여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원시적 세습 독제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사람들과는 담을 쌓아 놓고 핵무기를 개발해서 볼모국가가 된 남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625와 같은 새로운 전쟁을 도발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며, 또한 서울은 하루아침에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호언과 협박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새로운 정부의 젊은 사람들은 북핵은 미국과 일본에 대항하여 북한을 보호하는 수단이지 남한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싸드 배치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하며 남북한 평화 증진에 방해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지 않을 사람들은 북한의 공산당원 뿐일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남북 신뢰구축과 평화로운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위험 뿐입니다. 북한을 더 믿어보라고요? 아예 이 나라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게다면 그야 상관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내일 죽어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결단코 용인할 수 없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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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 00: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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