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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나이테’와 ‘후성(後成) 나이’
방재욱 2017년 06월 20일 (화) 00:17:57

동창 모임에 가보면 겉모습으로 보아 또래들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젊어 보이는 친구의 몸이 실제로 또래들보다 10년 이상 젊고, 그만큼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일까요.

얼굴이나 몸의 노화 정도를 좌우하는 것이 세월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세월이 흐르며 몸에 간직되는 생물학적 나이는 연령과 같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지냈느냐에 따라 노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겉모습으로 나타나는 세월의 두께가 식습관이나 일상의 생활태도와 같은 환경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무줄기에 나이테가 있는 것처럼 사람의 염색체에 간직되어 있는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DNA)에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는 ‘유전자 나이테’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나이테를 통해 나무의 수령을 계산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유전자 나이테의 분석을 통해 연령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나무의 나이테와 달리 유전자 나이테는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분자(分子) 수준이기 때문에 측정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분석의 분자생물학적 기법이 발달하며 그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세포 하나를 한 권의 책에 비유해볼 때, 세포 내의 염색체에 간직되어 있는 유전자 전체를 일컫는 게놈(Genome)에 책 전체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쇄되어 출간된 책의 내용은 변경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어느 부분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게놈에 간직되어 있는 유전자도 어떤 원인으로 언제 어떻게 작동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데, 유전자 나이테에 간직되어 발현되는 이런 현상은 ‘후성(後成) 유전’이라 부릅니다.

후성 유전은 유전자가 놓여있는 DNA의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특정 유전자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발현 여부가 결정되는 유전 현상입니다. 후성 유전으로 인해 유전자 발현의 조절이 변하면 당뇨, 암, 치매, 심혈관계 질환 또는 정신분열증 등 다양한 질병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유전자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후성 유전은 자신이 선택하는 습관이나 경험 그리고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이런 후성 유전의 작동 방식은 자손들에게 유전이 됩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전자 나이테로 세포 내에 남겨지게 되는 후성 유전의 흔적을 분석하면 실제 나이와 다른 몸 나이의 추정이 가능한데, 이는 ‘후성(後成) 나이’라고 부릅니다. 후성 나이는 실제 나이와 일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조로증(早老症) 환자에서처럼 ‘연령의 가속화’ 현상이 생기면 후성 나이가 더 많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연령의 가속화가 일어나는 사람에게는 암이나 심혈관 질환과 같은 질병의 발생률이 높게 나타날 수 있는 반면에 연령의 가속화가 늦추어지면 노화가 지연되며 장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유전자 나이테의 실례로 말단소립이라고 부르는 ‘텔로미어(telomere)’를 들 수 있습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말단에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부위로 세포분열 시 유전자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텔로미어는 세포분열이 지속되며 짧아지는데, 텔로미어가 일정 수준 이하로 짧아지면 세포분열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해 수명이 다한 세포가 죽으며 노화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적으로 불리고 있는 암세포는 일정한 수명을 지니고 분열하는 정상세포와 달리 죽지 않고 무한정 분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암세포의 분열과정에서 텔로미어가 잘려나가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009년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H. Blackburn), 잭 쇼스택(Jack W. Szostak), 캐럴 그라이더(Carol W. Greider)가 텔로미어와 텔로미어를 신장시켜주는 텔로머라아제라는 효소의 존재와 기능을 밝힌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연구 결과가 인류의 주요 관심사인 노화나 암과 같은 후성 유전 현상 규명을 위한 유전학적 단서를 마련한 공로로 인정받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건강 유전자’의 작동에 영향을 미쳐 후성 나이를 변화시키는 요인들로 식생활, 환경, 신체 활동, 스트레스, 수면 습관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중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에서처럼 후성 나이 조절에는 식생활 습관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내 몸에 남겨질 ‘유전자 나이테’와 ‘후성 나이’를 돌아보며, 노화를 늦추면서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인 연령 가속화의 속도를 낮추는 생활습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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