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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떠내려온 보트 피플
신현덕 2017년 06월 27일 (화) 00:00:11

6월 말인데도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연이어 계속되니 선선한 곳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마따나 더위를 몸으로 견뎌내고는 있습니다만, 선선한 곳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도 어려운 빡빡한 생활이고 보니, 장롱 속에 차곡차곡 접어 두었던 낡은 스카프를 펼치듯 지난날의 더운 기억들을 한 겹씩 펼쳐볼 뿐입니다.

며칠 전 북한 주민이 보트로 떠내려왔다는 뉴스를 들어서 그랬는지, 독일에서 만났던 자유 베트남 출신의 보트 피플 환이 보고 싶어집니다.

독일인들이 본격적으로 휴가를 떠나던, 이때쯤이었습니다. 학기 중에는 북적이던 구내식당인 '멘자'가 정말 한산했습니다. 10여 명이 식사할 수 있었던 식탁에 한 사람씩 앉아도 남을 정도로 텅 비었습니다. 갈 곳도, 돈도 없던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도서관과 시중의 10분의 1정도 가격이었던 멘자가 고마울 때였습니다. 멘자에서 돼지고기와 감자 으깬 것, 요구르트와 비르내(Birne 전구(電球)라는 뜻인데 먹는 배와 모양이 같다고 해서 이렇게 부름)-로 점심 식사를 끝내고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가냘프고, 외로워 보이는 동양인 한 명이 앞의 식탁에 앉았습니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각각 밖을 보는데 창밖으로 알몸으로 일광욕 하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독일에서 흔한 FKK(에프 카 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덜했지만, 똑바로 쳐다보기에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독일인은 발가벗고 일광욕하는 여성들을 FKK 즉 프라이 퀘르퍼 쿨투어(Freikoerperkulture)라고 불렀습니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여성들을 ‘자유로운 육체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에둘러댔습니다. 졸저 ‘독일은 서독보다 더 크다’를 들춰봅니다.

아름답고, 정교하며 완벽한 모습을 갖춘 미술품은 바로 인간 자신들이다. /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발가벗은 사람들을 보노라면 비너스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며, 밝은 태양 아래 거리낌 없이 자신의 육체를 뽐낼 수 있는 자유도 아름다워 보인다.

분명 학생이 틀림없는데 거리낌 없이 담요 한 장 깔아 놓고 브래지어도 벗은 채 엎드려 햇볕을 즐겼습니다. 동양인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서로 쑥스럽고 미안하여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자연스레 이야기하면서 그가 베트남 출신이며, 환이란 이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 통일 전이었으므로 동독과 더 가까울 것 같아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보트 피플”이라며 힘없는 얼굴로 멋쩍게 웃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그가 같은 반으로 왔습니다. 서독에 온 지 2년째인데 외톨이었습니다. 중공(당시 우리가 중국을 부르던 이름)에서 생산되던 국방색의 값싼 가방을 둘러맨 어깨는 늘 힘없이 처져 있었습니다. 물론 혼자라서 그랬겠지만 언제나 기숙사 주위에서만 맴돌았습니다.

그는 난민 자격으로 서독에 머물렀지요. 서독 정부는 난민수당을 주어 생계를 유지하게 했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공산 베트남을 국가로 받아들이지 않던 환은 끝까지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가 보면 없어진 나라에 대해 갖는 향수일 뿐이라고 가소롭게 보았겠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때-우리도 갈 곳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힘들어 하던 그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저의 가족과 함께 불고기와 쌀밥을 함께 먹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쌀밥을 보더니 어머니가 생각난다면서 한동안 울먹였습니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생사는 알 수가 없고, 교사였던 어머니는 말레이시아 수용소에, 동생은 미국에 머물고 있다면서 눈물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월맹군이 사이공을 점령하자, 약 200만 명의 자유 베트남 사람들이 달러와 금괴를 주고 몰래 목선에 올라 무작정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중 용케 다른 나라에 도착한 사람들은 행운이었고, 나머지는 인간으로서는 말할 수 없는 노략질을 당하거나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참 막막했습니다. 그를 위로할 말은 “곧 만나게 되기를 기도하자”는 것뿐이었습니다. 제가 귀국할 때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환은 “어느 나라도 여행입국을 허가하지 않는다.”면서 몹시 서글퍼했습니다.

최근 국제정세가 참 어수선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북한 동포들이 바다로 내몰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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