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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되 자랑하진 말길
고영회 2017년 07월 07일 (금) 00:24:27

나라와 나라 사이에 업무를 논의할 때 어떤 말을 써야 할까요. 각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죠.

우리 기업인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사업을 한다 할 때, 당연히 그 나라 말을 써야 합니다. 현지 행정기관에 가서 한국인이라고 한국말로 안 한다고 투정할 수 없죠. 그 나라 기관이 외국인을 위해 우리말이나 영어로 처리할 수 있게 배려해 주면 고맙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프랑스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와서 국회에서 연설한다면, 프랑스말로 연설하고 우리말로 통역해 들으면 충분합니다. 질문이 있어도 우리말로 질문하면 되고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다시 협상하자는 신호를 자주 내나 봅니다. 만약 국가 간 문제를 협상할 때 어떤 말을 써야 할까요? 실제 어떻게 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우리 대표자가 영어에 능통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말 미국은 미국말로 협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쪽 대표가 우리말로 협상하자고 하면 고맙게 받고요.

예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중국에서 중국어로 연설했을 때 우리 언론은 영어와 중국어뿐 아니라 몇 개국 말을 할 줄 안다면서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을 칭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단둘이 30여 분 산책하며 얘기를 나눴다는 기사를 보고 뜨악했었습니다.

최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주한 미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 대리를 만났을 때,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을 만났을 때 통역 없이 직접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기자들은 우리 장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세워 취재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랬습니다.

국가 간 업무에서는 낱말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외교부는 다른 나라와 협상을 맡아 처리합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도 분야별 협상 책임자는 외교부 직원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외교부 직원은 협상 절차나 형식은 잘 알지 모르나 협상 의제에 깊은 전문 지식을 갖추진 못했습니다. 그러니 각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협상을 끌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외교부 직원이 상대국 언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상대국 말로 진행해 버리면 협상이 어떻게 굴러가겠습니까?

민간단체끼리 회의할 때에도 각자 자기나라 말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대한변리사회와 중국, 일본변리사회가 회의할 때 통역을 둡니다. 세 나라 단체가 같이 회의할 때, 3방향 통역이 복잡할 때는 차라리 영어로 통역하기도 합니다. 불편하더라도 공평해야 하기 때문이죠.

외교관이 제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해도 본토인과 비교하면 잘해야 같거나 그보다 못합니다. 영어 본토박이와 영어로 협상한다면 잘해야 본전입니다. 그런 마당에 영어로 협상하겠다고 나서면 어리석지요. 장관과 같이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외국과 대화할 때 공식으로 대화할 때는 우리말을 써야 합니다. 사사로운 얘기를 나눌 때는 서로에게 편한 말로 해도 됩니다. 사사롭게 인사를 나눌 때에야 영어로 말한들 누가 뭐라 그러겠습니까? 강 장관은 잘해야 본전인 방식으로 공무를 처리했기에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협상에서 우리말을 쓸 수 있으면 언어 문제에서 벗어납니다. 언어에서 자유로우면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협상에서 어떤 말을 쓰느냐는 중요한 무기지요. 중요한 무기를 스스로 버려서는 안 됩니다.

국격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주권국이고, 우리나라에서 논의하는데, 우리말로 하는 게 기본입니다. 외국인을 배려해야 하지만 지나치면 국격을 떨어뜨립니다.

예전 해외 건설현장에서 제3국 인력을 옆에 두고,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것으로 오해하고, 거친 말을 내뱉고 있는데, 그 사람의 "저 한국말 알아요!" 한마디에 무척 민망했었습니다.

영어를 잘합시다. 외국을 상대로 협상해야 하는 사람은 정말 잘합시다. 우리 책임자가 정말 영어 잘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게 합시다. 그렇더라도 공식 일 처리는 통역을 두고 합시다. 말 때문에 엉뚱한 결과를 내지 않게요.

먼저 우리가 우리다움 대한민국다움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쓰는 것도 대한민국다움의 하나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 꼭 새겨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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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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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 (119.XXX.XXX.232)
핵심을 찌르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빈약한 실력으로 연설한 ?는 뻥튀김이 심한 경우이겠지요.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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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9 15:19:39
0 0
길재 (181.XXX.XXX.193)
맞는 말씀입니다. 경험 한 가지를 통해 고 선생님의 주장을 입증해드리고 싶습니다. 1977년 한국의 특사가 파라과이를 공식 방문, 파라과이 외교부 장관을 만났습니다. 그 때 특사를 수행한 사람 중 한 사람이 후에 국회를 주름잡은 이세기 씨가 있었고, 현지에서는 주 아르헨티나 한국대사관의 김상규 참사관이 참가를 했습니다. 주) 대우 직원이던 저는 곁다리, 비공식 단원으로따라가서 배석을 했습니다. 우리 특사가 '어쩌고 저쩌고' 공식적인 발언을 하면 김 참사관이 영어로 통역을 했습니다. 특사의 이야기를 다 들은 파라과이 외교부 장관이 "스페인어 통역은 언제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부터 예정에도 없이 제가 동 특사의 공식 통역이 되어 35년간 파라과이를 통치했던 Stroessner 당시 대통령 면담까지 통역을 했었습니다. 파라과이 같은 작은 나라 외교장관도 그렇게 '언어'에 대한 배짱을 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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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22:29:00
0 0
고영회 (119.XXX.XXX.232)
그렇죠?
우리 외교관도 각 나라를 상대하면 잘 알 텐데... 영어를 잘하는 게 그 무엇보다 자랑스러울까요?
길재 선생님, 댓글 의견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17-07-09 1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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