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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들다 보니 ‘낡다리’가 되었네!
정숭호 2017년 08월 02일 (수) 01:26:08

나이는 들어가는데 말하고 싶은 충동이 갈수록 더 심해지니 이걸 어쩌지요? 어제만 해도 그랬습니다. 사무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커피 입가심까지 하고 나서 보니까 내가 제일 떠들었더라고요. ‘늙어 존중(존경이 아닙니다!)받으려면 후배 존경(존중 아니고 존경이 맞습니다!)부터 할 것이며, 그 시작은 말은 덜 하고 듣는 척부터 하면서, 사이사이 미소를 띠는 것이려니’라는 환갑 이후 처세훈(處世訓) 제1조를 지키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어제 점심때 모습을 옮겨보겠습니다. 저 포함 다섯 명, 모두 신문기자로 청춘을 보낸 이들입니다. 아는 것 많고 말도 잘 하고 환갑 전후지만 나보다는 아래입니다.

메뉴가 강원도 향토식 곤드레밥이었으니 대화 첫 주제는 강원도 음식이었습니다. 강원도 산골 음식이 대체로 건강식이라는 데에 이야기가 미치자 건강이 주제가 됐습니다. 당연히 다음 주제는 운동이 됐지요. 그다음엔 만인의 운동인 등산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랬더니 누가 서울 서촌-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등-쪽에서 인왕산을 올랐더니 참 좋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상동의 누자가 ‘누각 루(樓)’일 텐데, 거기 무슨 루가 있었나?”라는 질문이 끼어들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한 사람이 대답을 하려는데, 다른 동료가 “옛날에는 기사 쓸 때 동(洞) 이름 같은 지명은 전부 한자로 썼는데, 한자를 안 썼더니 다 까먹었네 …”라고 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다른 이가 “이름도 한자로 썼잖아요. 모르는 한자 나오면 한글로 써놓고 나중에 찾아 적던 기억이 나네요.”라고 했습니다.

점심을 잘 먹고 바로 옆 커피집으로 옮겼습니다. 몸이 좀 굵은 친구가 앉으면서 “너무 먹었네. 배가 왜 이리 부르냐”고 하니까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저녁을 덜 먹으면 되지. 점심은 괜찮다고 하잖아?”라면서 전화기를 테이블에 꺼내놓습니다. 배가 부르다는 친구가 “전화기 손에 꼭 잡고 있으라구. 어제부터 전화를 막 시작했다는데 …”라고 했습니다.

장·차관 인사 끝났으니 기관장, 위원장 인사가 시작됐다는 이 농담을 시작으로 대화는 저마다 주워들은 하마평에서 정치, 경제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어느 순간 그것도 시시껄렁해지자 “자 이제 올라갑시다”라는 사무실 책임자 후배의 말로 끝났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에 모두 끼어든 건 나밖에 없습니다. 강원도 음식 이야기를 할 때는 “옹심이는 맛있지만 올챙이국수는 아니더라”고 품평했으며,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무릎이 망가진 사람 이야기에는 “수영이나 자전거를 하면 ‘도가니’가 좋아진다던데?”라고 아는 척했고, 서촌 쪽 인왕산 이야기가 나올 때는 “자꾸 끼어들어서 미안한데”라며 처세훈을 염두에 둔 전주(前奏)까지 넣은 후 “나 중학교 때, 50년도 전이구만, 거기에 운크라(UNKRA)라고 유엔 원조기구가 쓰던 예쁜 건물이 있었어. 일제 때 친일파 갑부가 지은 고딕식 건물이었지. 언제 철거됐는지 모르겠네”라고 나섰습니다. 기자로 일할 때 어려웠던 한자는 지명에서는 부산 영주동의 ‘바다 영(瀛)’자, 사람 이름에서는 ‘떳떳할 이(彛)’자, ‘아름다울 의(懿)자’ 같은 거였다고 했지요.

저녁을 덜 먹어야 한다는 말에는 “요 며칠은 덥고 해서 해 빠진 뒤 운동 삼아 좀 걸어서 분식집에 가서 어묵, 떡볶이, 순대, 김밥으로 때웠더니 싸고 좋더라, 위에 부담도 안 가고. 와이프도 좋아하고”라고 대꾸했고, 청와대 전화 농담으로 대화가 이어지자 “지난 대선 때 지금 대통령 캠프에서 뛰었던 사람을 아는데 말이야, 잘 안 풀리는지 마음고생이 좀 있는 것 같더군”이라며 동료들이 한 토막씩 꺼내는 하마평에 직접 들은 이야기를 한 자락 얹었습니다.

그런데, 떠들 때는 잘 떠들었는데, 곧 후회가 시작됐습니다. 말을 하려다가 내가 먼저 나서는 바람에 입을 열다 말고 닫아버린 동료들 모습이 떠올라서였지요. 말이 '후배'이지 딴 데서는 존중도 받고 존경도 받을 사람들인데….

어쨌거나 나이 들면 왜 말이 많아지나요? 아시는 분 있습니까? 나는 나이 들수록 ‘아는 것과 경험한 게’ 많아진 데다, ‘좀 떠든들 어때? 평생 조용조용 남의 말 들으면서 살아왔잖아’라는 심리, ‘나도 할 말 좀 하고 살자’는 어쩌면 좀 뻔뻔해진 태도가 이유일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앞으로도 말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시간이 전보다 더 많아지고, 새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도 매일 늘어나는데 그걸 안 뱉어내고는 견디기 힘들 테니까요. 그런데도 모든 젊은이들은 모든 노년들이 말을 덜 하기만 바라니!

마지막으로, 나이 듦에 대한 경구(警句) 몇 개를 뱉어봅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많은 것을 위장할 수 있지만 행복만은 그렇게 할 수 없다.’-보르헤스
‘노년기를 좋게 보내는 비결은 다름이 아니라 고독과 명예로운 조약을 맺는 것이라는 사실을 겨우 깨달았다.’-마르케스
‘새파란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늙다리였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한심한 존재, 즉 '낡다리'가 되어 있었다.’-루슈디
'나일리지(마일리지-Milage-가 아닙니다)를 챙기기 시작하면 이미 낡다리이다.'-신원불상 한국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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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화 (123.XXX.XXX.127)
정승호 국장, 근사한 글이네요. 나도 모임이 있어 가면 늘 말을 많이 하지 않을까봐 걱정합니다. 그대들 모임얘기에서 보면 화제가 많이 바뀌네요. 노인네가 말이 많은 것은 준비된 테이프를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으면서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그것만 돌리는데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결과도 있지 않을 까 합니다. 기자출신들은 그래도 준비된 테이프가 많고 질문능력도 갖추고 있어 말이 많은 인사축에 잘 들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만이어서 한자 적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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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2 12: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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