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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는 부른다
정달호 2017년 08월 14일 (월) 00:32:56

제주에 와 산 지 7년 반을 넘기고 있는데도 섬 바깥 주변을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고 하면 한가한 변명에 지나지 않겠지요. 기껏해야, 꽃나무와 블루베리 밭 돌보는 일이 먼 발품을 파는 데 조금 장애가 되었을 뿐이지, 결국은 의지가 부족했던 게지요. 그렇게 미루다가 실행한 이번 추자도(楸子島) 탐방도 실은 서울에서 온 지인의 추동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얼마전 국토 최남단의 마라도 방문 역시 해외에서 온 지인이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마음의 숙제로만 남아 있었을 성싶네요.

그러니 삶에서는 아는 것 못지않게 아는 사람 즉 지인이 있다는 것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추자도가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자리했던 것은 전해오는 입소문과 제주도 권역에 속한다는 친밀감에 더하여 오래전 해군에 몸 담던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진해에서 출항하여 가덕도(加德島)니 매물도(每勿島)니 하는 남해상의 기점(基點)들을 확인하고 제주도를 지나면 곧바로 나타나는 새로운 위치 기점이 추자도였습니다. 제주도에 살면서 새삼 추자도에 정감이 갔으며 이름부터가 왠지 스토리가 있을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한반도 서남단과 제주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추자도는 원래 전남 완도군에 소속돼 있다가 100여 년 전 제주도로 편입됐는데 사람들의 말씨로 보면 여전히 전라도처럼 느껴집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제주도로 유배 가는 길에 유배인들을 태운 배가 식수 등 보급을 위해 경유하던 지점이기도 하지요. 본토에서 출발한 배가 강풍을 만날 때 피난하기에 좋은 위치, 좋은 지형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고려 때인 1374년 탐라에 머물던 몽고군을 격퇴하러 출전한 최영 장군의 300여 선단도 가는 뱃길에 추자도에서 며칠을 머물렀으며 돌아오는 길에도 보름 정도 머물렀다고 하지요. 그런 연고로 옛 부대 주둔지에 아담하게 지은 최영사당(祠堂)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묵묵히 서 있습니다.

상하 추자도에 더하여 횡간도(橫干島)와 추포도(秋浦島) 등 네 개의 유인도와 서른여덟의 작은 무인도들이 추자도를 구성하는데 바다 위에 섬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추자(가래나무의 열매)의 속과 같다고 해서 추자도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는 한편, 섬에 추자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이름지어졌다는 설이 있지요. 어느 설이 맞는지 한갓 여행자로서 말하기는 주제넘은 일이지만 저는 전자에 힘을 실어 주고 싶습니다. 오늘날 추자도에서 추자나무를 거의 볼 수 없기도 하지만 추자의 형상으로 돼 있다는 발상이 더 멋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우리 일행이 방문한 날은 하지 바로 다음 날로 안개가 제법 낀 날씨였습니다. 하추자도에 마련한 숙소가 높은 지대라 그곳에서 엷은 안개 속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섬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담하였습니다. 발 가는 대로 올레길을 걷다가 최영사당에서 멀지 않은 상추자 등대공원에 앉아 쉬면서 희뿌연 안개 너머로 크고 작은 섬들이 퍼져 있는 모습에서 추자 속을 그려 보았습니다. 멀지 않게 보길도가 보일 듯 말 듯, 가물가물한 섬들의 풍광이 아득하였습니다.

   

 

 

 

 

 

 

 

 

 

상하 추자도 해변과 포구 어디를 가도 정말 청정 바다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선착장까지도 쓰레기나 유류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해안 아무 데서나 사람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 또한 특별한 풍경이죠. 추자도는 낚시 천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제주를 왕래하는 배에서 수많은 태공들이 묵직한 장비를 들고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완도에서 오는 배들도 그럴 테지요. 낚시질이 서툰 필자로서는 낚싯대를 사 놓고도 못 잡고 돌아오면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제주에선 좀처럼 낚시하러 가지 않지만 추자도라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도미류와 농어가 많이 잡힌다고 하지요.

사실 추자도의 물고기에 관해 얘기하려면 이런 어종보다는 참조기를 말해야 합니다. 어업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추자도는 조기잡이로 오래 이름을 떨쳐 오다가 근래에 와서 그 명성이 빛을 잃었죠. 회유성인 조기 떼가 남쪽에서 추자도 근해로 몰려와서 흑산도를 거쳐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산란을 위해 연평도로 올라갑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우리나라에서 조기철에는 추자도에서 잡는 참조기들이 영광으로 가서 볕에 잘 말려져 영광굴비란 이름으로 전국 각지로 팔려 나갔다고 합니다. 한창 때인 1980년대에는 인구가 8천명 가까이 되었는데 지금은 점차 줄어들어 1,800여 명 수준이지요. 조기잡이 주 어장이 형편이 더 좋은 제주로 내려간 것이 주된 이유라 합니다.
 
지금도 멸치잡이는 성업인데 추자십경(楸子十景) 중 추포어화(秋浦漁火)가 멸치와 관련된 사연을 담고 있지요. 멸치 철 추포도 주위에 멸치 떼가 모이는데 어두운 밤 멸치잡이 뜰망을 내리는 수많은 어선들의 불빛이 장관을 이루곤 한답니다. 어화(漁火)라! 검푸른 밤 바다에 멸치 떼를 유인하려 밝힌 휘황한 불빛들일 뿐이지만 나름 낭만이 밴 멋진 말이죠. 멸치잡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어획 작업은 밤에서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게 보통이어서 어민들의 삶은 참으로 고단할 터입니다. 그래도 추포어화처럼 멋과 여유가 있는 말을 만들어낸 추자인들이 살갑게 느껴 집니다.멸치 떼는 산란기에 추자도로 몰려드는데 통통하게 알이 잘 밴 멸치를 액젓으로 담그면 포도주처럼 붉은 빛이 돈다고 자랑을 하기도 한답니다.

추자십경 중 또 하나는 고도창파(孤島蒼波)로, 관탈섬 부근의 푸른 물결이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 무심히 너울거리며 흐르는 모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관탈섬은 추자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섬으로 그 이름의 유래에 역사가 배어 있습니다. 모자 관(冠)에 벗을 탈(脫), 말 그대로 모자를 벗는다는 뜻인데 유배 오는 고관들이 이 지점을 지나면서 과거의 영화를 잊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관탈섬의 너울거리는 푸른 물결을 보면서 세상과의 인연을 지워버리고 유배 생활을 감내할 각오를 했을 법합니다.

추자도 올레 코스(제주 올레 18-1)를 걷다 보면 바닷가 언덕으로 향하는 길목에 ‘황경한의 묘’라는 안내 팻말을 만나게 됩니다. 황경한(黃景漢)이란 생소한 이름은 다름 아닌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의 아들을 말하죠. 1801년 황사영의 백서(帛書) 사건으로 인한 신유박해(辛酉迫害, 또는 辛酉邪獄) 때 황사영 본인은 순교하고 부인이자 정약현(丁若鉉)의 맏딸인 정난주(丁蘭珠, 마리아)는 제주 대정현 관노로 떠납니다.

정난주는 두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가는데 어미를 따라 노비의 멍에를 질 아들에게만은 양민의 신분을 지켜주려고, 타고 있던 배가 추자도에 머무는 동안 섬에 내려서 이름, 생년월일과 함께 아이를 갯바위 한켠에 놓아두고 옵니다. 배에 돌아와서는 아이가 죽은 것으로 하여 관원들의 이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마침 그 부근을 지나던 어부 오씨 부부가 멀리서 우는 아이 소리를 듣고 와서 젖을 먹여 울음을 달랜 후 데려가서 키웠다고 합니다. (오씨 부인은 아이가 없어 젖이 마른 상태지만 아이를 보고 젖이 나왔다고 전함)

   

 

그 갯바위 자리에 지금은 커다란 철제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눈물의 십자가’로 불립니다. 황경한은 자라면서 어머니를 잊지 못해 제주에서 들어오는 배편마다 어머니의 안부를 전해 듣기도 하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데 이 모든 것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야 했던 모자의 사연은 애절하기만 합니다. 황경한의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 오진 않지만 그는 오씨 부부의 다른 자녀들과 함께 자랐기에 그 이후부터 추자도에서 황씨와 오씨는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자가 겪은 비극이 당시 숨 막힐 만큼 서슬 퍼렇던 기독교 박해로 인한 것이니 굴곡진 우리 역사의 한 가닥이라 할 만합니다. 황경한의 묘는 오늘날 가톨릭인들의 순례지가 돼 있으며 아버지 황사영의 순교를 기리는 제천의 배론(排論) 성지, 제주 대정현의 어머니 정난주의 묘와 함께 황씨 3대 성지로 알려져 있기도 하죠.

   

 

 

 

 

 

 

 

 

 

 

추자도 여기저기서 뜻밖의 사연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무턱대고 걸어다니다가 만난 예초리 마을 해안 둑에서 두 개의 긴 밧줄에 계류되어 등대 쪽을 향해 서 있는 작은 어선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외로워 보였지만 얕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모습이 고즈넉하였습니다. 맑디맑은 바닷물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객선에서 보니 옅은 안개로 덮인 바다에 신비롭게 서 있는 섬들이 우리에게 다시 오라고 무언의 몸짓을 하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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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익수 (76.XXX.XXX.116)
다로대사 - 최근 자유탈럼 회원으로 등록했습니다. 대사의 글에 언급한 漁火를 보고 문득 張繼의 楓橋夜泊이라는 시에 나오는 "漁火"를 잠시 연결해 떠올려보았습니다.

楓橋夜泊 - 풍교에서 밤을 지새며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 달 지자 까마귀 울고 하늘에는 서리가 가득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 강가의 단풍 숲, 어화는 나의 근심스런 잠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鍾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 깊은 밤 종소리 나그네 탄 배에 은은히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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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0 04: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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