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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윤동주
김창식 2017년 08월 15일 (화) 00:02:18

국경일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옛 같지 않습니다. 민족 최대의 경축일인 8·15 광복절도 마찬가지고요. 지난 3·1절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가 예닐곱 집 밖에 안 걸렸어요. 좌우로 곱해보니 140여 가구예요. 옆 아파트도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도 국기를 달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니까요. 공연히 집사람을 타박하며 태극기를 내다 거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올해 광복절엔 전날 저녁 미리 태극기를 챙겨놓았지요.

고등학교 국어 시간 때 선생님이 일러주셨던 개화기 3대 천재(최남선, 이광수, 정인보) 생각이 납니다. 그중 끝까지 지조를 지킨 이는 위당(爲堂) 정인보 (鄭寅普) 한 분이었다네요. 나아가 학계와 예술계를 통틀어 정인보를 비롯해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이육사(李陸史), 월파(月坡) 김상용(金尙鎔) 등 극소수만이 야합하거나 변절치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찌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 그렇게도 사람이 없더란 말인가!

올해가 탄생 100주년인 윤동주(尹東柱, 1917. 12. 30~1945. 2. 16) 시인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입니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시적 세계와 삶의 궤적이 일치한 드문 경우거든요. 시인의 대표작인 <길> <서시> <참회록> <별 헤는 밤> 같은 시를 읽어보면 난해하지 않고 명징한 언어로 쓰여 있으면서도 ‘부끄러움’ 같은 내면적 심리와 근원적 정서를 다루어 보편적 감동을 이끌어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역시 우리에겐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으로 다가오는군요.

어쩐 연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덜 알려진 운동주의 시적 성과와 지사적 면모를 추모하는 이런저런 모임이 있습니다. ‘윤동주시문학상’을 운영하는 단체도 있고요. 지지난해 상영된 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와 일반 대중 사이의 거리를 조금은 좁히는 계기를 마련하였지요. <동주>는 시인과 동갑내기 사촌인 송몽규(宋夢奎) 열사의 삶을 다룬 저예산 흑백영화였습니다. 영화가 채택한 아날로그 촬영 방식과 소박한 화면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더더욱 마음의 현(絃)을 건드렸거든요.

윤동주를 숭모하는 분들 중 김우종 전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현 <창작산맥> 발행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평론가 겸 수필가이기도 한  김 교수는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순례의 길을 걷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 분입니다. <한국대학신문> 주필 시절이던 1995년부터 매년 2월 기일이 되면 일본 후쿠오카(福岡) 니시모모치공원(西百道公園)을 찾아 윤동주를 기리는 추모행사를 개최합니다. 이어 우리나라 청운동에 조성된 윤동주 언덕에서도 조촐한 모임을 갖습니다. 필자도 연전 그 행사에 갔었는데, 참석 인원이 5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중엔 드문드문 등산객도 끼어 있었고요.

지금도 왕성한 저작 활동을 펼치는 김우종 교수가 윤동주를 기리는 일에 헌신하는 이유는 ‘그에게 너무 많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와 닿는 말입니다. 순결한 청년 윤동주는 나라를 앗김이 자신의 잘못도 아니련만 27년 2개월 짧은 일생을 살며 부끄러워했고, 우리는 긴 세월을 살아도 마음의 빚을 다 갚지 못할 것이에요. 다음은 김 교수가 기고한 한국대학신문 신년기획(2017년 1월 5일자) 기사의 끝 부분입니다.

“금년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 오는 2월에는 윤동주 기일이 있다. (…) 바람 부는 영하의 날씨에는 시 낭송하는 사람들의 입이 얼어붙겠지만 후쿠오카 감옥의 독방에서 그날 밤에 죽던 윤동주를 생각하면 (…) 빚은 갚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하니 우리는 그렇게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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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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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 (45.XXX.XXX.44)
시를 읽으면 옅어져 버린 부끄러운 저의 마음에 깜짝 놀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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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23:47:48
0 0
김창식 (61.XXX.XXX.68)
노루님, 윤동주는 '별을 헤다'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습니다.
답변달기
2017-08-19 14:30:2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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